[농사를 짓습니다] 영혼과 육체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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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짓습니다] 영혼과 육체에 대한 단상
  • 윤남진
  • 승인 2022.11.28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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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 필연인 듯, 우연인 듯 밝아옵니다. 어제도 새벽이 열렸으니 오늘 또 열린다고 하는 것은 필연입니다. 새벽이 또 올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가 맞는 새벽은 우연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의 새벽은 어제의 새벽과 같지 않습니다. 어쩌면 필연인 새벽보다 가끔 우연인 새벽이 더욱 신비롭습니다. 

 

자연히 돌아가는 것과 어긋남

새벽에 동이 트기 시작하면 온갖 풀벌레와 짐승들이 깨어납니다. 정말로 정확합니다. 자연 그대로입니다. 자연히 되어가는 것과 한 몸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가랑비만 내려도 작은 것들은 소리 없이 고요합니다. 모두 어딘가 숨어서 조용히 내리는 비를 피하며 견디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순간 비가 잠깐이라도 그칠라치면 언제 그랬냐는 양 너도나도 세차게 울어댑니다.

산지와 가까이 있는 농토에 고추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모두 겪는 일이 있습니다. 고라니가 내려와 연한 고추 순을 싹싹 따먹고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고추는 밑에서부터 새로 순을 내야 하고 결국 제대로 고추가 달리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밭을 이른바 ‘노루망’으로 38선처럼 둘러칩니다. 어느 날 밭을 출입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쪽문을 깜박하고 닫지 않고 내려왔습니다. 다음 날 가보니 쪽문이 열려 있었는데도 고추밭은 안전했습니다. 고라니가 들어오지 않은 것입니다. 고라니는 그 쪽문으로 들어가면 큰 그물망에 갇히는 신세가 될 것으로 염려하여 들어가지 않은 것입니다. 고라니의 동물적인 육감이었을 것입니다.

사람은 이런 생물들과 좀, 한편으로는 매우 다릅니다. 새벽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 예불을 올리고 기도를 하며 새벽을 깨웁니다. 잠자던 온갖 생물들에겐 산사에서 울리는 사물소리와 낭랑한 예불소리가 기분 좋은 새벽 음악소리였을까요, 아니면 엄청나게 스트레스받는 군대 기상나팔 소리 같은 것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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