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절_지리산 천은사 상생의 길] 가을 문턱에 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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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절_지리산 천은사 상생의 길] 가을 문턱에 서성
  • 최호승
  • 승인 2022.09.28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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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道]은 여러 갈래입니다. 행복을 찾는 길, 즐거움을 좇는 길, 나아가 깨달음을 구하는 길 등등. 어찌 보면 여행이고 수행이자 순례이겠습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산 둘러 길 걸으면서 절에 들러보는 여행이자 순례길을 걷습니다. 발이 젖으려면 물가에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불광미디어가 아름다운 길 찾아 절로 함께 걷습니다.

상생의 길 들머리는 천은사 주차장
지리산 천은사 상생의 길 들머리는 주차장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채널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있었다. 문화재관람료다. 해마다 가을이면 불거지는 이슈가 문화재관람료인 만큼 파장도 적지 않았다. 실제 지리산 천은사 입장료 문제를 소재로 했고, 제주 관음사를 촬영지로 삼아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앞서 <불교 이슈 있수다_‘우영우 법정’에 선 문화재관람료>에서 소개한 뒤, 마음은 그곳에 머물렀다. 가을 단풍이 물들기 전 채비해서 길을 나섰다.

천은저수지 제방
천은저수지 제방
물비늘 이는 천은저수지
물비늘 이는 천은저수지

| 문화재관람료 폐지와 ‘상생의 길’
천은사에는 ‘상생의 길’이 있다. 2019년 부처님오신날 즈음 문화재관람료를 폐지하면서 생긴 길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도 봤는데, 머뭇거릴 필요가 없었다. ‘상생의 길’을 걸어야 했다.

‘상생의 길’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지리산 성삼재로 오르는 길은 천은사 매표소가 있었다. 문화재를 보지 않는데 왜 요금을 받느냐는 탐방객들과 잦은 갈등이 빚어진 곳이었다. 군사정부가 일방적으로 천은사의 땅을 국립공원으로 편입시키고, 도로를 지었다. 자연과 생명 그리고 문화를 지키는 최소한의 울타리가 입장료였지만, 불현듯 국립공원입장료는 폐지됐다. 정부가 국립공원입장료에 포함시켜 받던 문화재관람료만 덩그러니 남았고, 정부는 뒷전으로 빠진 채 국민과 천은사 사이의 골만 깊어갔다.

끊어졌다 이어지는 나무데크
끊어졌다 이어지는 나무데크

천은사와 환경부, 국립공원공단 등 8개 관계 기관이 마음을 모았고, 2019년 4월 29일 문화재관람료가 폐지됐다. 매표소는 철거됐고, 이를 기념하는 길을 조성했으며, 2020년 12월에 ‘상생의 길’이 개방됐다.

3.3km의 ‘상생의 길’은 연재 <길 둘러 절 들러> 짬으로는 가벼운 산책이었다. 총 3개 코스를 모아 ‘상생의 길’이라고 부른다. 코스는 이렇다. 나눔길(1km)은 소나무 숲 입구~천은사, 보듬길(1.2km)은 천은저수지 입구~수류관 축대, 누림길(1.1km)은 수홍루~제방이다. 천은사 주차장에 차를 대고, 누림길~보듬길~나눔길로 걸었다.

뒤늦게 알았다. 사람들은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그러니까 천은사 주차장에서 일주문을 거쳐 보듬길~누림길~나눔길로 걷는 게 더 좋을 뻔했다. 뻔뻔하게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천은사 산문의 현판을 뒤에서 먼저 만나는 것만 빼곤 반대로 걷기는 흠(?)이 없었다. 더구나 ‘상생의 길’의 아름다움은 퇴색하지 않았기에.

심원암
심원암
감로암
감로암

물을 곁에 두고 걷는 맛은 다르다. 발걸음에 심박수가 오르지만, 물에서 왠지 모를 안정감을 느낀다. ‘상생의 길’ 중 보듬길이 그랬다. 1983년 농어촌공사에서 조성한 천은저수지를 오른쪽에 두고 제방에 올랐다. 예전 이 자리에는 식당, 여관 등이 있었단다. 지금은 수달과 원앙 등 많은 야생동물의 보금자리가 됐다. 간혹 불어오는 바람에 이는 잔물결은 지나간 시간을 쓸어내렸다.

풀냄새가 진했다. 8월에 많은 비가 와서인지 흙길이 부드러웠다. 간혹 등장하는 나무데크는 주변에 먼저 자리 잡은 나무들과 이질감 없이 조화로웠고, 오르내리는 경사는 걷기에 부담을 주지 않았다. 보듬길 끝에 다다르자, 숲 사이로 새로 지은 듯 보이는 심원암(深源庵)이 드러났고, 옆으로 난 길 따라 오르면 작은 언덕에 감로암(甘露庵)이 고요히 앉았다. 걷다 서다 저수지의 물비늘을 감상하다 어느새 수홍루에 다다랐다.

상생의 길 조형물
상생의 길 조형물
일주문에 쏟아질 듯한 소나무
일주문으로 쏟아질 듯한 소나무

| 수홍루 그리고 <미스터 션샤인>
반칙이었다. 일주문이 일품이었다. 물 흐르듯 흘림체로 쓰인 편액이 발을 붙잡았다. 몇몇 연인들이 멈춰서 추억을 찍어두는 모습이 당연해 보였다. 여기에 일주문 옆으로 머리 숙인 소나무들이 장관이었다. 일주문 뒤편 오른쪽으로는 ‘상생의 길’ 중 나눔길이 보였고, 정면으로는 수홍루가 자리했다. 수홍루는 천은사 옆을 흐르는 계곡 위 아치형 다리에 놓여 있었다.

수홍루는 이미 천은사의 포토존이었다. 연인들이 걸음을 멈추고 서로의 인생샷 남기는 인기 스팟이었다. 왜? 가만히 둬도 ‘예쁘다’ ‘멋지다’ ‘고졸하다’라는 느낌을 주기에 <미스터 션샤인>도 여기서 명장면을 찍지 않았을까. 수홍루는 많은 사람이 인생의 띵작이라 꼽는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메모리에서 꺼냈다. 드라마로 돌아가자면 수홍루는 애기씨 고애신(김태리)과 약혼자였던 조선의 갑부집 아들 김희성(변요한)과 마지막으로 작별하던 곳이었다.

다리 건너 나눔길로 들어섰다. 여기서부터는 소나무 숲이 이어졌다. 가만가만 곁눈질로 천은사 경내를 살폈는데, 주불전인 극락보전이 불사 중이었다. 요란한 공사 소음이 마음을 어지럽게 했다. 나눔길을 다 걷는 대로 천은사를 참배할 요량으로, 걸었다.

조금 가파른 길을 잠시 걷자 우람한 소나무 한 그루가 버티고 섰다. 일명 ‘천은사를 지키는 소나무’였다. 1950년대까지는 천은사 주변에 많은 소나무가 있어 하늘을 가릴 정도였다는데…. 다 잘려 나갔고 지금은 그 이후에 자란 소나무들이란다. ‘천은사를 지키는 소나무’는 몇백 년 동안 도량을 지켰다고 하니, 천은사를 찾는 많은 이의 간절한 마음을 굽어보셨으리라.

천은사를 지키는 소나무
천은사를 지키는 소나무
견성암
견성암
견성암 갈림길에서 나타나는 대나무 숲길
견성암 갈림길에서 나타나는 대나무 숲길

문득, 공사 소음이 사라졌고 물소리만 엄청나게 들려왔다. 나눔길에 등장한 대나무숲을 거쳐 들리는 물소리는 천은사 곁을 흐르는 청류계곡이 내는 소리였다. 대나무숲을 통과해 들려오는 계곡 물소리는 청량한 바람을 타고 와서인지 정신을 맑게 했다. 바로 왼쪽에 견성암으로 향하는 오솔길이 보였지만, 밀짚모자 쓰고 울력하는 스님이 보여 눈인사만 하고 돌아섰다.

한참, 소나무 울창한 숲길을 걸었다. 되새겨보니 나눔길은 천은사를 한 바퀴 빙 돌아 다시 천은사 입구로 오는 길이었다. 소나무에 취해 걷다 길 끝에 다다르니, 수홍루가 배웅을 나왔다.

천은사 전경, 불광DB
천은사 전경, 불광DB

| 지리산의 3대 사찰 천은사
사실 천은사는 ‘어머니산’ 지리산에 깃든 화엄사, 쌍계사와 함께 3대 사찰 중 하나다. 조계종 화엄사의 말사인데, 역사가 만만찮다. 신라 흥덕왕 3년, 그러니까 828년에 인도의 덕운 스님이 창건했단다. 그런데 천은사 중건 당시인 조선시대에 지어진 극락보전 상량문에 남은 기록은 다르다고 한다.

“당 희종 건부 2년(875년)에 연기(도선국사)가 가람을 창건했고 후에 덕운이 증수했다(唐 僖宗 乾符二載 緣起相形而建設 德雲因勢而增修).”

창건과 유래 관련 내용이 다르니, 확신할 순 없지만 남겨진 기록만으로 보면 천은사는 1,000년이 훌쩍 지났다는 데 큰 이견이 없을 것 같다.

천은사 일주문 현판
천은사 일주문 현판

천은사 이름에는 물과 관련한 유래가 있다. 병든 사람을 샘물[甘露]로 치료했다고 해서 감로사(甘露寺)로 불렸단다. 이름에 바뀐 이유로 이런 이야기가 전한다. 단유 스님이 절을 중수할 무렵 절의 샘가에 큰 구렁이가 자주 나타났는데, 사람들이 무서워해 한 스님이 구렁이를 잡았다. 그 이후로 샘에서 물이 솟지 않았고, 그래서 ‘샘이 숨었다’는 ‘천은사(泉隱寺)’가 절 이름이 됐다.

절 이름도 바꾸고 가람은 크게 중창했지만, 화재가 여러 차례 발생하는 등 불상사는 끊이지 않았다고. 사람들은 절의 물기운[수기(水氣)]을 지키던 이무기가 죽은 탓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 대목에서 일주문에 품격을 더하는 설이 있다. 얼마 뒤 이 사연을 들은 조선의 4대 명필 원교 이광사(李匡師, 1705~1777)가 붓을 들었다. 마치 물이 흘러 떨어질 듯한 필체로 ‘지리산 천은사’라는 글씨를 써서 “현판으로 일주문에 걸면 다시는 화재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했단다. 믿거나 말거나 이후 화재는 없었다고 한다.

수홍루
수홍루

수홍루에서 발길을 돌렸다. 불사 중인 도량을 기억에 남기고 싶지 않았다. 들이닥친 일본군들이 고애신의 식솔들을 괴롭힐 때 등장한 의병들과 천은사 보제루 위에서 검은 실루엣으로 나타난 고애신... <미스터 션샤인>을 추억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1673년 제작한 천은사 괘불탱(보물)과 목조 대세지보살좌상 등도 친견하지 못했다. 훗날 인연이 닿는다면 꼭 다시 참배하러 오겠다는 마음만 두고 도량을 빠져나왔다.

9월 1일에 찾았던 지리산 천은사 ‘상생의 길’은 아직 늦여름과 가을 문턱 앞을 서성였다. 10월쯤이면 천은사와 ‘상생의 길’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구례 천은사 상생의 길(원점회귀)
코스 : 주차장~제방~수류관측대(천은저수지)~심원암~감로암~수홍루~소나무숲길~천은사~주차장
거리 : 약 3.3km
시간 : 1시간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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