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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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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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9.13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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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주 장편소설 - 이 시대 최고의 선지식 수불 스님의 삶과 수행

 

시간이 없다
저작·역자 정찬주 정가 18,000원
출간일 2022-09-15 분야 문학(소설)
책정보

ISBN 979-11-92476-43-8 (03810) | 판형_147*215mm 두께_2.4cm

416쪽 | 1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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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위로

“온몸으로 의심하라! 7일 안에 체험하리라!”

 

수행자의 삶과 정신세계를 탐구해 온 정찬주 작가가

10여 년의 세월을 응축해 써 내린 또 한 편의 역작

 

간화선(看話禪) 현대화의 선구자, 이 시대 최고의 선지식

안국선원장 수불 스님의 삶과 수행을 소설로 만나다

 

“만일 한정된 날짜에 공을 이루려면 마치 천 길 우물에 빠졌을 때 아침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아침까지, 밤이나 낮이나 천 생각 만 생각이 오로지 다만 한낱 우물에서 나오려는 마음뿐이고 끝끝내 결코 다른 생각이 없는 것과 같이하여라. 진실로 이렇게 공부하기를 3일 혹은 5일 혹은 7일 하고도 깨치지 못한다면 서봉은 오늘 큰 망어를 범했으므로 영원히 혀를 뽑아 밭을 가는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_ 고봉원묘 선사

고봉원묘 선사의 말은 간화선 수행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동시에 간화선이 얼마나 신속하고 핵심을 파고드는 수행법인지를 설명한다. 간화선은 달마 대사로부터 시작된 선(禪) 불교에 뿌리를 둔 한국불교의 정통 수행법이자 최상승의 수행법이라 불린다. 하지만 지도 방식과 수행 과정의 난해함으로 인해 보통 사람은 접근하기 힘든 것, 평생 참선에 몰두한 스님조차 쉽사리 하지 못하는 수행이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다녔다. 이러한 선입관을 180도 뒤바꾸어 놓은 선지식이 안국선원 선원장 수불 스님이다. 현대 간화선의 선구자라 불리는 수불 스님은 출가자든 재가자든 마음을 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수행, 7일이면 체험할 수 있는 수행으로서 간화선을 지도하고 알려 왔다. 지난 30여 년간 수만 명의 사람이 스님의 가르침 아래 돈오(頓悟)를 체험했다.

이 책 《시간이 없다》는 수불 스님의 출가 전 이야기부터 출가 후 의심을 타파하는 과정, 그리고 간화선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해 진력해 온 과정을 주요 일화를 중심으로 묘사한다. 전체 이야기를 관통하는 줄기는 간화선이 어떤 수행법이며, 왜 이것을 세상에 알려야 하는지에 맞춰져 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수불’이라는 한 출가 수행자의 삶을 읽어 나가면서, 또 간화선이라는 한국불교 전통 수행법에 대해 알아가면서, 점점 더 강하게 내면 깊은 곳에서 샘솟는 의문과 마주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스스로 묻게 될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왔는가?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이 책은 그 물음의 답을 찾아가는 길을 보여준다.

저자소개 위로

정찬주

자기만의 꽃을 피워낸 역사적 인물과 수행자들의 정신세계를 탐구해 온 작가 정찬주는 1983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작가가 된 이래, 자신의 고유한 작품세계를 변함없이 천착하고 있다. 수불 스님으로부터 중국 황벽 선사 묘탑에서 받은 호는 벽록(檗綠). 1953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했으며 국어 교사로 교단에 잠시 섰고, 샘터사 편집자로 법정 스님 책을 만들면서 스님의 각별한 재가제자가 되었다. 법정 스님에게서 ‘세속에 있되 물들지 말라’는 뜻으로 무염(無染)이란 법명을 받았다. 2002년 전남 화순 계당산 산자락에 산방 이불재(耳佛齋)를 지어 현재까지 집필에만 전념 중이다.

장편소설로는 《굿바이 붓다》, 《산은 산 물은 물》(전 2권), 《소설 무소유》, 《다산의 사랑》, 《이순신의 7년》(전 7권), 《천강에 비친 달》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는 《스님 바랑 속의 동화 》, 《암자로 가는 길》(전 3권), 《법정스님 무소유, 산에서 만나다》, 《행복한 무소유》, 《자기를 속이지 말라》, 《선방 가는 길》, 《정찬주의 茶人기행》, 《법정스님 인생응원가》, 《불국기행》 등이 있다. 동화로는 《마음을 담는 그릇》, 《바보 동자》 등이 있고, 역서로는 《굿모닝 관세음보살》이 있다. 행원문학상, 동국문학상, 화쟁문화대상, 류주현문학상을 수상했다.

목차 위로

프롤로그 나는 누구인가?
첫 대중강연

1장 영혼의 노래
머리 깎을 생각이 없느냐?
천도교 주문

2장 범어사 내원암
복의 힘으로 불도를 이루리
철조망 사건

3장 송광사 스님들
해인사 동안거
능가 스님의 설법
흰 구름의 시간

4장 보살 머리카락이 몇 개인가?
무량심 보살
금정포교당
가야동 안국사
지리산 벽송사

5장 간화선 국제학술대회
중국 선종 사찰 순례
간화선의 대중화, 세계화

6장 명상가 차드 멍 탄의 질문1
명상가 차드 멍 탄의 질문2
인도인 베누 스리니바산1
인도인 베누 스리니바산2

에필로그 벽송사 하안거
소백산 안국사

작가 후기 《나에게 시간이 없다》는 무엇인가?

상세소개 위로

잘 모르면 아무리 노력해도 답을 구하기 어렵다

그 모름을 알게 해주는 것이 선지식의 역할이다

보배가 있어도 그 귀함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가치가 없고, 훌륭한 도구가 있어도 그 쓸모를 알지 못하면 맨손으로 하는 것만 못 하다. 얼마 전까지 한국 불자들의 상황이 그랬다. 전 세계 불교 전통에 전해지는 여러 가지 수행법 가운데 최고로 손꼽히는 방법, 깨달음에 단도직입하는 최상승 수행법이라는 간화선(看話禪)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원리를 이해하고 제대로 활용하는 사람이 드물었다. 아무나 시도할 수 없는 고난도 수행이라서일까? 아니면 타고난 근기의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신묘한 수행이어서일까? 모두 아니다. 간화선이 어려운 수행으로 오해받고 점차 사람들한테서 멀어진 이유는 다름 아닌 수행을 지도해 줄 선지식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불교는 불자들에게 간화선의 탁월함을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수행은 조사선(祖師禪)의 방식으로 지도해 왔다. 그러다 보니 어디 가서 배워도 간화선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지 않고, 아무리 열심히 수행해도 원하는 결과에 도달할 수 없었다. 이 책의 주인공 수불 스님 역시 처음 사람들에게 수행을 지도할 때 같은 실수를 저질렀다. 수행하러 온 이들에게 ‘부모한테 몸 받기 전에 나의 본래면목은 무엇인가?’ ‘송장을 끌고 다니는 놈이 누군가?’와 같은 조사들의 유명한 화두를 던져주었지만 사람들은 답을 찾지 못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집중력과 흥미를 잃어갔다. 이에 스님은 스스로를 성찰하여 문제를 직시하고 단호하게 결심했다.

수불은 단호하게 결심했다. 일상생활이 바쁜 신도들에게 일주일 안으로 화두 체험을 시키지 못할 실력이라면 포교당을 접어야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신도를 속이고 자신도 속이는 포교당 운영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수불은 옛 조사들의 공안에 집착하기보다는 자신만의 활구를 제시해야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_ 본문 중에서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수불 스님이 찾은 답은 ‘활구(活句)로써 체험케 하기’였다. 의심만을 지속하게 하는 조사선의 방식을 버리고, 의심을 바깥의 벽으로 여기고 이를 타파해 자신의 본성을 깨달을 수 있도록 살아 있는 화두를 던져주는 것이다. 방편으로 삼은 것은 이른바 탄지(彈指) 화두였다.

수불은 집게손가락을 튕기면서 신도들에게 말했다. “무엇이 이렇게 하는 것인가?” (중략) 새롭게 제시한 화두는 신도들에게 작년과 달리 집중력을 불러일으켰다. 수불은 이때다 싶어 신도들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_ 본문 중에서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흐느끼는 사람, 비명을 지르는 사람, 눈에 핏발이 터진 사람 등 반응은 제각각이었지만 다들 온몸으로 화두를 들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자, 하나둘 자신의 본성을 깨닫고 체험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소문은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이내 ‘수불 스님’, ‘안국선원’은 현대 간화선의 대명사처럼 한국불교계에 회자되었다.

나를 알게 해주고

세상을 알게 해주는

간화선의 힘

이 책에는 간화선을 대중화하고 세계화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해 온 수불 스님의 행보가 다채롭게 그려진다. 그 과정에서 여러 이름난 이들과 만난 사연도 등장하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혜민 스님, 로버트 버스웰 교수(미국 예술 과학 아카데미 회원, 전 동국대 불교학술원장), 차드 멍 탄(구글 엔지니어), 베누 스리니바산(TVS모터스그룹 회장)이다. 혜민 스님과 로버트 버스웰 교수는 수불 스님의 지도 아래 안국선원에서 직접 간화선 체험을 했고, 차드 멍 탄과 스리니바산 회장은 수불 스님을 만난 뒤 스님을 스승으로 삼았다. 수불 스님에게 간화선에 대해 듣고 배운 이들은 하나같이 한국불교 간화선이 가진 힘에 놀라워했다.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간화선의 대중화와 세계화에 대한 수불 스님의 의지 역시 더욱 견고해졌다.

선은 인간 속의 이기적 배타주의를 돌려 자기의 본래면목에 사무치게 하고 세계와 역사를 자기 생명 속에서 합일하는 대승의 눈을 열어준다. 그래서 선은 궁극적으로 자기와 남을 둘로 보지 않는 절대 평등의 세계를 열어 더불어 사는 자비문과 원융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재단법인 대한불교조계종 안국선원은 조계종의 종지종풍에 의거하여 인류의 마음에 진리의 외침이 울리게 하고, 세계만방에 지혜의 눈을 밝히는 선의 범세계화로 만민평등의 세계일화를 우주법계에 가득 꽃피우고자 한다.

_ 본문 중에서

수불 스님이 부산 금정구 남산동에 안국선원을 개원하면서 제시한 선원의 이념이다. 여기에는 상호존재하는 생명의 본질을 바로 보게 해주는 선으로써 현대 사회가 겪는 여러 가지 병폐의 근본 원인이 자타의 구별과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서리란 결의가 담겨 있다. 그런 마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온 세월이 이 책에 오롯이 새겨져 있다. 2,600여 년 전 석가모니 붓다로부터 시작된 불교는 이제 국가와 인종을 넘어 많은 사람의 내적·영적 성장 지침이 되어 가고 있다. 선의 가치도 날로 높아지고 있다. 수불 스님의 바람처럼 선(禪)의 선한 영향력이 서서히 전 세계에 퍼지고 있다.

10여 년의 인연, 8개월간의 집필 과정

글 짓는 수행자 정찬주 작가의 내공이 빚은 작품

‘시간이 없다’는 간곡한 당부의 말을 담아 전하다

“본래의 자기 자신으로 돌아와 살기를 바란다.” 대쪽 같은 삶을 살아간 인물과 수행자들의 정신세계를 탐구해 온 정찬주 작가가 밝힌 이 책의 집필 의도다. 10여 년 전 처음 수불 스님을 만난 작가는 아내와 자녀의 변화를 목격한 이후 간화선에 대한 확신이 생겼고, 수불 스님과 간화선을 주제로 책을 쓰리라 다짐했다. 이후 2019년 스님과 함께한 부처님 성지순례 길에서 자신의 뜻을 전하고 2021년 겨울부터 올해 7월까지 집필에 몰두했다. 긴 시간을 거쳐 탄생한 이 책은, 오랜 시간 글 짓는 수행자로 살면서 선지식들을 만나고, 그들의 가르침을 깊이 배우고, 그들의 삶과 가르침을 이야기로 전해온 정찬주 작가가 자신의 삶에서 체험하고 길어 올린 또 한 편의 역작이다.

부처님께서 방일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 가만히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되겠어요? 수행은 안 하고 시간을 흘려보내서야 되겠냐는 거지요. 어차피 한정된 시간을 살다가 가는데 어떻게 보내야 하겠느냐는 겁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접할 기회가 왔을 때 공부해야지요. 이런 의미에서 시간이 없다는 거지요. 내 입장에서도 신도들한테 가르쳐줄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시간이 없는 거지요. 앞으로 내가 몇 번이나 가르치겠어요?_ 본문 중에서

작가의 말에 따르면, 수불 스님은 법문 때마다 이런 취지의 말을 자주 한다고 한다. 이것이 소설의 제목이 ‘시간이 없다’로 정해진 연유다. 소설가로서, 선지식의 삶과 가르침을 널리 알리는 데 뜻을 둔 전법사(傳法師)로서, 어쩌면 정찬주 작가 역시 수불 스님과 같은 마음일 것이다. 선지식의 삶과 가르침을 글과 이야기로 전함으로써 우리 역사와 전통과 문화에 존재하는 뛰어난 스승과 가르침을 드러내는 일을 업(業)으로 삼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보면 이 책은 소설 속 주인공인 수불 스님과 정찬주 작가의 간곡한 마음이 겹겹이 담긴 따듯한 당부와도 같은 책이다.

책속으로 위로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는가?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이런 근원적인 문제에 한번 정직하게 부딪쳐야 합니다. 생사 문제를 풀지 못하면 허무한 인생을 면할 수가 없습니다. 시간은 흘러갈 뿐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한번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모두가 부모로부터 태어났다고 생각하지만, 부모 이전에는 도대체 어디서 왔는지 까맣게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한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러고도 태연히 살아가는 모습을 돌아보면 자신의 어리석음에 가슴이 섬뜩해지지 않습니까? _ 13쪽

“스님, 스님께서 깨치신 것에 대해서는 추호도 의심이 없습니다. 다만 인간적으로 묻겠습니다. 법으로 묻는 것이 아닙니다. 스님께서는 깨치셨지만 남을 깨치게 해준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수불은 솔직한 대답만 듣는다면 걸망을 내려놓고 그 어른스님의 지도를 받고자 했다. 그러나 그 어른스님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끝내 대답하지 않으니 별수 없었다. 결국 수불은 어른스님에게 인사를 드리고 그 절을 떠나고 말았다. 만행은 4개월 만에 끝났다. _ 56쪽

“스님, 하나만 묻겠습니다.” “묻거라.” “스님, 돈오돈수냐 돈오점수냐 하는 논쟁이 교계의 큰 화제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옳습니까?” “무수(無修)다.” 돈오했으면 돈수건 점수건 닦을 바가 없다는 답변이었다. 무수란 말을 듣는 순간 수불은 어둑한 방 안이 확 밝아지는 경험을 했다. 물을 빨아들이는 스펀지처럼 무수란 말이 온몸으로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수불은 인사를 하고 일어났다. 그러자 지유 스님이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무수를 잊지 말게.” “명심하겠습니다.” _ 62쪽

능가 스님에게 배우는 외전이란 주로 인문학과 법학 서적들이었다. 해방 전에 일본 와세다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능가 스님이 유학 시절에 사숙했던 서적들이었는데, 외전을 알아야만 불경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능가 스님의 지론이었다. 처음에는 수불에게 인문학 개론서들을 사다 주면서 읽게 했다. 그날 새벽에도 수불은 능가 스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중도 역사를 알아야 해. 역사를 알려면 개론서들을 먼저 섭렵해야 통찰하는 눈이 생기지. 윤리학, 논리학, 심리학을 하나로 꿸 수 있을 정도로 공부해야 해. 젊은 나이에 바로 사상을 배우는 것은 독(毒)이 될 수 있어.” 수불은 능가 스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_ 87쪽

방문 밖은 허공이었다. 허공으로 날아간 날벌레는 자유를 되찾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날벌레에게는 문밖으로 나가면 빛이 있는 허공이고, 문 안에 있으면 벽으로 막아진 방인 것이었다. 눈부신 빛이 있고 없음은 문 하나의 차이였다. 열린 문과 닫힌 문의 차이가 그렇게 컸다. 그러고 보면 수행자는 산문 안에 들어왔다가 광대무변한 세상 속으로 ‘문 없는 문’을 열고 가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다. _ 173쪽

무량심 보살은 반석 위에서 삼배를 하려고 섰다. 그런데 갑자기 독사가 나타났다. 머리는 세모나고 몸뚱이는 검은빛인 독사 한 마리가 무량심 보살 앞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보통 뱀들은 아직 보이지 않는 시기인데 이상한 일이었다. 독사는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무량심 보살 앞으로 스르르 다가왔다. 독사는 겨우내 먹이를 먹지 않았는지 독이 잔뜩 오른 모습이었다. 머리를 무섭게 쳐들고 혀를 날름거렸다. 무량심 보살은 망설였다. 절하려고 머리를 굽히면 뱀이 자신을 공격하는 줄 알고 달려들 것만 같았다. 두려운 생각에 등골이 오싹했다. _ 201쪽

신도들의 반응은 작년처럼 잠잠했다. 수불에 대한 믿음이 약해지는 신도들도 나타났다. 칠팔 명이 우르르 몰려왔다가 슬그머니 사라졌다. 애를 태우는 사람은 무량심 보살이었다. 수불은 단호하게 결심했다. 일상생활이 바쁜 신도들에게 일주일 안으로 화두 체험을 시키지 못할 실력이라면 포교당을 접어야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신도를 속이고 자신도 속이는 포교당 운영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수불은 옛 조사들의 공안에 집착하기보다는 자신만의 활구를 제시해야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_ 226쪽

수불은 장군송을 등진 채 칠선계곡 너머의 지리산 산자락을 바라보았다.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25년 전 꿈에서 본 풍경과 똑같았다. 수불은 자신도 모르게 장군송을 돌아보면서 중얼거렸다. ‘저 장군송이 하늘로 솟구쳤던 용이었던가?’ 그제야 벽송사 아래쪽의 추성마을이 꿈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위치에 있음을 알아차렸다. 은사 지명 스님의 법화사를 다니면서 마음속으로 계속 찾았던 꿈속의 마을이 틀림없었다. 그 순간 수불은 문득 자신이 전생에 수행했던 절은 벽송사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_ 250쪽

지금 한국은 세계적인 수준의 명품을 생산해 낼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한류라는 이름으로 아시아를 넘어 멀리 유럽에까지 인기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한국은 먼저 IT(Information Technology) 기술을 발전시켰고, 이어 CT(Culture Technology) 기술을 개발해 한류 문화상품을 수출하고 있습니다. 이제 바야흐로 한국의 전통 정신문화에 잠재되어 있는 ST(Spirit Technology) 기술을 개발하여 세계에 알려 정신적 가치를 나눌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_ 309쪽

“또 하나 덕담이랄까, 해주고 싶은 말은 IQ가 200이든 300이든 머리는 몸보다 둔해요. 바늘을 가지고 찌르면 몸이 먼저 느끼지 머리가 먼저 느끼지 않아요. 몸이 빨라요. 물론 몸이나 머리나 거의 동시에 느낀다고 할 수 있지만. 그러니 몸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해요. 함부로 쓰지 말라는 겁니다. 그래서 승려들은 계율을 지키고 삼학을 닦지요. 선에서는 머리를 하루 종일 써도 쓴 바가 없다고 해요. 그러나 몸은 안 그래요.” _ 345쪽

수불이 상좌 회산에게 말했다. “선객들이 참선하는 선방을 개설했으니 이제는 여기 공터에 재가선원을 지어 ‘국제간화선센터’ 간판을 걸었으면 좋겠다. 회산 생각은 어떤가?” “안국사의 미래를 보는 것 같습니다.” 회산은 스승 수불의 한마디에 세계의 젊은이들이 백두대간의 기운이 뻗치는 안국사를 찾아와 간화선을 수행하며 ‘후 엠 아이(Who am I)’를 반조하는 날이 올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2030세대의 K컬처에서 이제는 한 단계 심오해진 K정신문화가 세계 미래를 선도하는 시절인연이 도래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_ 4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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