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안의 문화이야기] 예천 삼강주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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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의 문화이야기] 예천 삼강주막
  • 노승대
  • 승인 2022.09.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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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흠뻑 내린 다음 날, 예천 삼강주막으로 간다. 낙동강 700리길, 마지막까지 길손을 맞이했던 주막이 삼강나루에 있어서다. 봉화에서 발원한 내성천이 소백산 남쪽 물줄기를 끌어모아 이곳에 당도했고 문경 황장산에서 발원한 금천이 또 이곳으로 흘러와 낙동강 본류와 어우러지니 세 강이 합쳐진다 하여 삼강(三江)이라는 지명이 생겼다. 이 삼강나루는 대구와 서울을 잇는 단거리 뱃길로 한때는 소금과 해산물을 실은 배들이 낙동강 끝자락 김해에서 물 많은 여름에 여기까지 올라왔고 장터를 오가는 장사치와 길손이 버글거렸다.

삼강나루가 북적이던 시절, 소를 6마리 실을 수 있는 큰 배와 작은 배 2척이 있었다 했으니 자연히 주막들도 양쪽 나루에 있었다. 그러나 1934년 갑술년 물난리에 27채 집들이 떠내려갈 때 주막 2채도 휩쓸려 가버렸고 지금 남아있는 주막도 물에 잠겼었다. 이 마지막 주막을 지키던 유옥연 할머니도 2005년 90세로 세상을 떠났다.

흐르는 강물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삼강나루의 옛 풍취도 다시 돌아오지는 않는다. 모든 만물의 생과 중생들의 삶도 그러하다. 이런 곳에 오면 쓸쓸하고 허전한 감회가 우러나지만 어쩌랴, 그것이 우리의 인생인 것을. 그래도 우리에게는 소중한 인연들이 있고 웃음과 눈물이 있다. 웃음과 눈물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이자 선물이니 오늘도 크게 한번 ‘허허허’ 웃고 내일을 향해 가자.

삼강주막 초입의 길. 이 일대가 관광지화되면서 만들어진 길이지만 초가를 얹은 돌담 사이 흙길이 여유롭다. 빗물이 다 마르지 않아 댓잎이 더 싱그럽다.

 

깨끗이 단장을 했지만 뼈대는 옛집 그대로다. 1900년 초에 지었다 했으니 이제 120년 된 집이다. 작은 방 두 개에 쪽마루와 부엌이 있는 구조다.

 

마지막 주모 유옥연 할머니는 16살에 혼인해 19살에 주막의 주모가 된 후 70여 년을 주막을 지켰다. 남편이 일찍 죽어 5남매를 홀로 키웠다.

 

뒤쪽 고목에서 바라본 삼강주막. 쪽마루가 보인다. 거대한 회화나무는 동네의 당산나무로 정월에 제를 모신다. 수령 200년이 넘어 지정 보호수가 됐다.

 

주막의 작은 부엌에는 아궁이가 2개다. 음식을 빨리하기 위해서다. 부엌에는 모두 4개의 문이 있다. 쪽마루, 작은 방과 바깥으로 통하는 두 문이다.

 

할머니는 글을 모르니 막걸리 외상의 양에 따라 세로로 긴 줄, 짧은 줄을 벽에 긋고, 갚으면 가로로 줄을 그어 지웠다. 외상 긋는다는 말이 바로 이말.

 

뒷담 곁 들돌은 ‘드는 돌’이다. 예전에는 장정들을 부릴 때 품삯을 정하기 위해서 이러한 들돌을 들어보게 했다. 어려도 어른 몫을 받을 수도 있다.

 

제방에 올라서서 옛 삼강나루를 추억해 본다. 2004년 4월 다리가 완공되며 옛 정취는 사라졌다. 오른쪽이 낙동강, 가운데가 내성천, 왼쪽이 금천이다.

 

삼강주막이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관광지로 활성화되자 옛 풍치를 살리기 위해 옛 화초들도 많이 심었다. 어머니가 심고 가꾸던 백일홍도 보인다.

 

얼마 만에 보는 꽃인가? 바로 과꽃이다. 어린 시절 흔히 보던 과꽃이 서양 꽃에 밀려 서서히 자취가 사라진 줄 알았더니 이곳에 심어 놓았네요. 반갑다.

 

봉숭아꽃도 있다. 여름이면 한 차례씩은 봉숭아 물을 손톱에 들인다고 손가락을 줄줄이 싸매고 다니던 여동생들이 생각난다. 이제는 네일아트라나?

 

코스모스가 무리 지어 피어나는 걸 보니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코스모스, 가을, 고향 역, 추석! 추석이 보름 남았다. 또 한 해가 잘도 가고 있구나.

 

내성천을 거슬러 비룡산 장안사 위 회룡포전망대로 간다. 무섬마을을 돌아온 물이 이곳에서 다시 한번 360도 회전을 하니 그 풍광이 기이한 절경이다.

 

장안사라는 절 이름은 금강산에도 있고 경상도 양산에도 있다.다 고찰들이다. 예천 장안사는 신라 경덕왕 때인 759년에 운명 조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회룡포마을로 건너가는 뿅뿅다리는 나무다리를 교체하며 구멍 뚫린 철판으로 만들었다. 구멍으로 물이 퐁퐁 솟는다 해서 퐁퐁다리였으나 와전돼 바뀌었다.

 

내성천을 다시 거슬러 선몽대로 간다. 기러기 떼가 넓은 모래사장에서 쉬는 평사낙안의 명승지다. 퇴계의 둘째 형인 이하의 아들 이굉이 이 마을 입향조다.

 

선몽대는 서애 유성룡, 학봉 김성일, 청음 김상헌, 다산 정약용이 다녀간 명소지만 울창한 솔숲도 압권이다. 방풍림이자 마을의 단점을 보완하는 풍수림이다.

 

다시 영주 쪽으로 내성천을 따라가면 석탑교를 만난다. 다리 양쪽에 줄줄이 세운 것은 참깨단이다. 참깨는 추석 전에 걷어서 말린 다음 털어서 수확한다.

 

내성천 무섬마을 외나무다리다. ‘물 위에 떠 있는 섬마을’이란 뜻이다. 수도리(水島里)로 쓰는데 반남 박씨와 선성 김씨 집성촌으로 고가도 많다.

 

사진. 노승대

(필자의 카카오스토리에도 실린 글입니다.)

 

노승대
‘우리 문화’에 대한 열정으로 조자용 에밀레박물관장에게 사사하며, 18년간 공부했다. 인사동 문화학교장(2000~2007)을 지냈고, 졸업생 모임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인사모)’, 문화답사모임 ‘바라밀 문화기행(1993년 설립)’과 전국 문화답사를 다닌다. 『바위로 배우는 우리 문화』, 『사찰에는 도깨비도 살고 삼신할미도 산다』(2020년 올해의 불서 대상), 『잊혔거나 알려지지 않은 사찰 속 숨은 조연들』(2022)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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