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안의 문화이야기] 안동 봉정사 영산암과 지조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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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의 문화이야기] 안동 봉정사 영산암과 지조암
  • 노승대
  • 승인 2022.08.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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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봉정사에는 필자에게 잊지 못할 암자가 두 곳이 있다. 영산암과 지조암이다. 지조암 칠성각의 내부 양쪽 벽화에는 인물로 표현된 하늘의 별자리가 가득했고 영산암은 여염집 구조에 조그마한 응진전과 산신각뿐인데 비구니 노스님이 홀로 지키며 살고 계셨다. 1985년도의 추억이다.

영산암은 1989년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 개봉되며 세상에 널리 알려졌고 <동승>, <나랏말싸미> 등도 촬영했다. 봉정사에 바로 붙어 있는 영산암은 절이면서도 민간의 가옥처럼 정겹고 소박하다. 마치 어릴 때 외갓집에 들어가듯이 그저 즐겁고 편안하다. 어디 ‘나 좀 봐달라’고 자랑하는 것도 없다. 열 명만 들어가도 꽉 찰 작은 법당에는 앞쪽에 작은 툇마루가 붙어 있어 건물에 둘러싸인 조그만 뜨락에서 이제는 부쩍 자란 소나무와 함께 흘러가는 계절의 변화를 느껴볼 수 있다. 그러고 보니 동쪽과 서쪽의 요사채 건물에도 마당 쪽으로 모두 툇마루가 달려 있고 입구는 누각 형태이니 이것도 영산암의 특징이다.

특히 응진전 안팎에 그려진 민화 벽화는 그린 솜씨도 놀랍거니와 화제로 쓴 한문 글씨도 달필이어서 매우 귀중한 유물이다. 1800년대 말 민화가 한창 절집에 들어와 유행할 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100여 년이 지났지만 제 모습을 지키고 있는 법당은 그리 흔하지 않다. 다시 채색하면서 그림의 소재도 바꾸고 물감 재료도 바꾸기에 십상이다. 그래서 갈 때마다. 마음속으로는 항상 “벽화가 그대로 있어야 할 텐데” 하면서 조바심을 낸다.

 

봉정사 동쪽 골짜기를 내려갔다가 경사진 오솔길을 오르면 영산암의 운치 어린 자연스러운 돌담이 나타났었다. 이제 계곡을 메워 넓고 평범한 길이 됐다.

 

바깥쪽에서 바라본 영산암. 누각 건물은 원래 봉정사 극락전 앞에 있던 건물이다. 1800년대 후반 영산암을 지으며 옮겨 세우고 창고와 방을 들였다.

 

우화루(雨花樓) 현판 글씨도 매우 능숙한 필치다. 석가모니가 영취산(靈鷲山)에서 설법할 때 꽃비가 내렸으니 암자와 누각의 이름은 여기에서 비롯됐다.

 

누각 아래를 겸손히 들어가면 소나무와 배롱나무가 자리한 작은 마당에 여러 가지 화초가 서로 다투지 않고 자라고 있다. 정면은 응진전, 오른쪽은 관심당.

 

왼쪽 송암당 건물과 우화루는 원래 별개 건물이지만 이렇게 나무 복도로 서로 연결해 오갈 수 있게 했다. 우화루 2층의 열린 공간은 차실로도 쓰인다.

 

작은 화단 뒤로 자연석 돌을 자유롭게 쌓고 그 위에 응진전을 앉혔다. 나한전, 영산전이라고도 한다. 곧 부처님 제자들을 모신 곳이다. 툇마루가 다정하다.

 

응진전 동쪽 벽에는 특이한 용 그림이 있다. 두 신인(神人)이 용의 두 수염을 각각 잡고 옥신각신하는 중이다. 속초 신흥사 극락전 외벽에도 있다.

 

동쪽에 용 그림이 있으면 서쪽에는 백호 그림이 있다. 까치도 두 마리고 소나무도 있다. 외벽에 좌청룡 우백호를 그린 법당도 여럿 남아 있다. 옛 법식이다.

 

응진전 서쪽 풍판 안쪽 깊은 곳에는 달에 사는 두 마리 옥토끼가 열심히 방아를 찧고 있다. 곧 물이 있어 달이 비친다는 의미다. 전부 화재방지용 그림.

 

응진전 안에는 작은 법당에 비해 큰 체구의 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가운데가 석가모니 부처님이고 제화갈라보살과 미륵보살이 양쪽에 있다. 소조불이다.

 

응진전 내부의 벽에 그린 민화는 그 솜씨가 만만치 않다. 봉황 그림의 화제는 봉명조양(鳳鳴朝陽)이다. 아침 해가 뜨고 봉황이 운다. 상서로움이 넘친다.

 

정수리가 붉은 두루미 두 마리가 둥근 달이 뜬 매화꽃 그늘에 다정히 서 있다. 불로초도 무리 지어 피었고 덩굴식물도 꽃이 한창이다. 누가 그렸을까?

 

극락의 연화화생도도 그려져 있다. 극락에 태어날 때는 연꽃 위에 화생(化生, 부모에 의탁함이 없이 영식靈識으로 태어나는 것)하는데 그 모습을 그렸다.

 

중국 전설의 상산사호(商山四皓) 그림도 있다. 상산에 숨어 살던 네 신선을 그린 것이다. 1800년대 말 조선의 백성들은 모두가 힘든 시절을 보냈다.

 

인도에서 건너온 달마대사가 숭산 소림사에 들어가 9년 동안 면벽한 고사를 그린 벽화도 있다. 화제는 ‘달마조사 9재면벽(達摩祖師 九載面壁)’이다.

 

달마대사는 중국 양나라 무제를 만나 문답을 했지만 아직 인연이 익지 않음을 알고 양자강을 건너 소림사로 간다. 이를 달마도강(達摩渡江)이라 한다.

 

어부의 일상도 언제나 그림의 소재가 된다. 아무 일 없는 일상이 바로 평안한 도의 세계다. 해 저물어 돌아오는 길 비가 옷깃을 적신다(日暮歸來雨習衣).

 

송암당 툇마루 천장에는 용맹스러운 두 마리 용이 여의주를 다투고 있다. 또 방문 위 토벽에는 청룡과 황룡의 정면 얼굴을 양쪽 끝에 그려 넣었다.

 

연꽃밭에 물살이 일렁이고 아침 해는 뜨는데 물 위로 뛰어오르는 물고기의 얼굴이 용으로 바뀌고 있다. 어변성룡(魚變成龍)이다. 출세나 깨달음을 상징한다.

 

영산암은 작은 암자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볼만한 것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독수리 그림, 사슴 그림도 있다. 다시 우화루 밖으로 나오니 수국이 한창이다.

 

사진. 노승대

(필자의 카카오스토리에도 실린 글입니다.)

 

노승대
‘우리 문화’에 대한 열정으로 조자용 에밀레박물관장에게 사사하며, 18년간 공부했다. 인사동 문화학교장(2000~2007)을 지냈고, 졸업생 모임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인사모)’, 문화답사모임 ‘바라밀 문화기행(1993년 설립)’과 전국 문화답사를 다닌다. 『바위로 배우는 우리 문화』, 『사찰에는 도깨비도 살고 삼신할미도 산다』(2020년 올해의 불서 대상), 『잊혔거나 알려지지 않은 사찰 속 숨은 조연들』(2022)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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