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로 체크인, 템플스테이] 절에서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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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로 체크인, 템플스테이] 절에서 만났습니다
  • 최은미
  • 승인 2022.06.28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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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스테이 체험기 2. 강화 전등사
그림. 김진이

아이와 함께 떠난 첫 템플스테이

아이가 열한 살이던 몇 해 전이었다. 여름이 막 끝나가던 9월 첫 주말에 아이와 둘이 백팩 하나씩을 메고 집을 나섰다. 가족여행 중에 아이와 절에 들렀던 적은 많았지만 템플스테이라는 이름의 공식 프로그램으로 접수하고 아이와 둘이 절로 갔던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왜 아이와 가는 첫 템플스테이 사찰로 강화도 전등사를 택했던 걸까. 아마도 집에서 너무 멀지 않으면서도 도심은 아니고 템플스테이 후기와 시설이 좋은 곳을 찾다가 택했을 것이다. 이유를 대자면 더 댈 수도 있겠다. 전등사는 내가 좋아하는 신중도가 있는 곳이고, 가는 김에 아이와 초지진이나 고인돌에 들러보기도 좋고, 강화 보문사는 이미 많이 가봤고…

사실 큰 이유가 없었다. 나는 아이의 여름방학이 끝났다는 것과 여름내 매달렸던 원고 마감을 마쳤다는 것, 무엇보다 딸아이와 둘이 단출하게 절에 간다는 사실 자체에 좀 설렌 상태였다. 안내 문자대로 내비에 ‘전등사 남문’을 찍고 출발할 때까지도 알지 못했다. 그 주말에 내가 아이와 함께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어떤 순간들을 선물 받게 될지. 전등사라는 장소가 내게 어떤 의미로 남게 될지. 아이가 그 후로도 계속 전등사 템플스테이에 가자고 하게 될 줄도 몰랐다. 아이도 몰랐을 것이다. 

 

윤이와 찬이의 만남

체험형 템플스테이를 하면 참가자들과 1박 2일 동안 프로그램을 함께하게 된다. 이전에도 본 적이 없고 템플스테이가 끝나면 더 볼일이 없는 사람들. 나이와 성별과 지역과 하는 일이 다 다른 사람들이 템플스테이라는 공통점 하나로 특정 장소에서 하루를 함께 보낸다. 서로 한 마디를 안 나눠도 이상할 게 없고, 스님과 둘러앉은 시간에 불쑥 낯선 이의 속 깊은 고민을 듣게 돼도 부담스러울 일이 없다. 연등행렬 거리에서 모르는 이들끼리 스스럼없이 손을 흔들며 지나치는 것처럼 템플스테이 자리에는 적당한 거리감이 주는 묘한 편안함과 조건 없는 호의가 있다. 그래서인지 템플스테이에서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은 내게 광장의 축제 현장에 잠깐 몸을 맡기고 올 때처럼 익명 속에 나를 숨긴 채로도 타인과의 유대감을 맛볼 수 있는 일종의 해방구 같은 느낌을 주곤 한다. 

그 주말의 전등사 템플스테이 참가자 중엔 어린아이가 둘이었다. 열한 살인 내 아이 윤 외에 엄마 아빠와 함께 온 아홉 살 남자아이, 찬이 있었다. 수련복을 맵시 있게 입은 오십대 여성분들이 있었고 한국인 지인과 함께 온 외국 여성분도 있었다. 남녀 연인도 있었고 푸근한 인상을 주는 찬이의 엄마 아빠도 있었다. 

담당 스님과 함께 사찰을 둘러보고, 사물 타종을 해보고, 참선을 하고 단주를 만들고, 첫날은 프로그램 일정표대로 무난히 흘러갔다. 아이가 지루해할지 모른다는 걱정만 아니었다면 휴식형 템플스테이를 신청했을 거라는 생각을 한쪽으로 계속하면서, 사람들과 함께 움직이는 시간보다 중간중간 꿀처럼 끼워진 아이와의 자유시간이 더 좋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윤이와 둘이 우리의 방사인 적묵당 3호의 이불 위를 뒹굴다가, 다원에 가서 냉녹차와 빙수를 시켜 먹고, 기와에 소원을 쓰는 윤이의 모습을 찍으며 프로그램과 자유시간 사이를 오갔다. 경내에서 찬이네 가족을 마주치기도 했지만 절에 와서까지 사교 에너지를 끌어올릴 의욕도 이유도 없었기에 희미한 미소만 띠며 지나쳤다. 하지만 아이들의 마음은 좀 달랐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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