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주는 행복, 기쁘게 유쾌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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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주는 행복, 기쁘게 유쾌하게
  • 보경 지음 | 스노우캣 그림
  • 승인 2022.06.15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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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남들만큼 특별한 산중냥이의 사계

 

고양이가 주는 행복, 기쁘게 유쾌하게
저작·역자 보경 지음 | 스노우캣 그림 정가 18,000원
출간일 2022-05-31 분야 문학>에세이
책정보

판형_147*215mm 두께_2.45cm

320쪽 | 4도 

ISBN 978-89-7479-703-4(0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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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위로

2022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나눔 선정도서

선방 10년, 주지 12년, 집사 6년!

보경 스님의 고양이 에세이 마지막 3편

‘냥이’와 함께한 봄과 가을 이야기

몇 해 전 어느 겨울날, 길고양이 한 마리(냥이)가 산중암자에 사는 스님 앞에 불쑥 나타났다. 그날 이후 낯선 고양이와 어색한 동거를 시작한 스님은 사람과 닮은 듯 다른 고양이의 생활을 지켜보며 존재와 삶을 생각하고 그로부터 얻은 교훈을 글로 적어 왔다. 그 첫 기록이 《어느 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고, ‘바라보기’와 ‘기다리기’가 중심 이야기였다. 이어서 《고양이를 읽는 시간》이란 제목으로 출간된 두 번째 책에는 고양이와 무더운 여름을 함께 나며 터득한 ‘느리게’ 그리고 ‘느긋하게’ 살아가는 지혜를 담았다. 이번에 출간된 《고양이가 주는 행복, 기쁘게 유쾌하게》는 앞선 두 책을 잇는 보경 스님의 고양이 에세이 시리즈 마지막 편이자, 매 순간을 기쁘고 유쾌하게 살아가는 법을 성찰한 글이다.

“내가 고양이를 파악하는 그 이상으로 이 조그만 털북숭이 친구도 나를 읽는다. 말을 않고 있을 뿐이지 이 동물들은 바보가 아니다. 극히 예민한 청각과 후각을 동원하면 그들은 어떤 세상에 던져지더라도 거뜬하게 살아갈 수 있다.” (본문 중에서)

저자소개 위로

저자_ 보경 스님

송광사가 출가본사다. 선방에서 10년을 살았고 서울 법련사 주지, 조계종사회복지재단 상임이사, 보조사상연구원장을 역임했다. 동국대 대학원에서 <수선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겸임교원으로 강의를 했다. 일생 만권독서의 꿈, 불교의 인문학적 해석을 평생의 일로 삼고 정진하고 있다. 현재는 보조사상연구원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탑전에서 독서와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사는 즐거움》《이야기 숲을 거닐다》《행복한 기원》《인생을 바꾸는 하루 명상》 등의 에세이와 《기도하는 즐거움》《한 권으로 읽는 법화경》《슬픔에 더 깊숙이 젖어라》《숫타니파타를 읽는 즐거움》《선문염송 강설》《원하고 행하니 이루어지더라》《아함경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수선사 연구》 등의 경전류와 논서가 있다.

이 책 《고양이가 주는 행복, 기쁘게 유쾌하게》는 전작 《어느 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고양이를 읽는 시간》을 잇는 연작으로써 탑전 냥이의 사계를 채우는 가을과 봄의 이야기다.

목차 위로

여는 글 – 고양이와 함께한 사계

첫 번째 이야기: 좋은 삶은 좋은 관계를 만든다

오르기 위해 가라앉다

슬픔은 한결같은 사람에게 흔들림을 가르쳐 준다

높은 바람은 높은 산에 분다

지혜와 사랑이 내게 말해주는 것

가을엔 초목만 물들어가지 않는다

어둠은 말을 재촉하고 빛은 침묵을 요구한다

나를 위한 영혼의 집

 냥이의 장미정원

까짓것 정원쯤이야

심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지

숨이 터질 때까지

꽃향기와 함께 온 것

두 번째 이야기: 삶은 언제나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의 아픔을 남긴다

사랑은 소경이지만 멀리서도 보인다

경이로움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모든 시작은 끝을 내포한다

바다 같은 마음에도 이별을 담기엔 벅차다

세상일이 항상 여름일 수만은 없다

부르긴 쉬우나 보내긴 어렵다

살다 보면 돌아가 눕고 싶은 방 한 칸이 생각난다

 냥이의 단풍나무학교

단풍나무의 전설

가르친다는 것

첫 수업

세 번째 이야기: 단순한 바라봄만으로도 삶은 깊어진다

내 집은 반쯤 귀먹은 곳에 있으니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베개는 말 없는 예언자

가장 좋은 것은 좋은 것의 적이다

자신의 방식대로 승부를 걸라

어디서든 살아가는 이들에게 축복을

만남도 머무름도 헤어짐도 귀한 인연이다

혁명은 변방에서부터 시작된다

바가바드기타를 읽는 오후

고양이가 울 때

사랑은 사라져도 친절은 남는다

두 해가 한 봄 속에 있다

닫는 글 –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상세소개 위로

어쩔 수 없는 것들과

사이좋게 사는 법

보경 스님과 냥이가 함께 지낸 지 햇수로 6년째에 접어들었다. 스님이 십수 년간의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산중암자로 돌아온 2017년 겨울 저녁,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은 굶주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꼬리 없는 누런 고양이에게 우유와 토스트를 건넨 것이 이 특별한 인연의 시작이었다. 산중암자에 불쑥 찾아든 야지의 고양이는 이제 스님의 거처인 송광사 탑전을 자신의 왕국으로 삼아 그 주위를 거의 벗어나지 않고 안온하게 지내고 있다. 도 한번 닦아보겠다는 출가도 아니면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아버린 그 태도가 너무나 태연하여 스님은 꼼짝없이 고양이를 보살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스님과 냥이가 알콩달콩 지내는 사이, 계절이 오가듯 많은 인연이 오고 갔다. 엄마 이쁜이와 주니어 이쁜이, 주니어 이쁜이가 낳은 여러 마리의 새끼 고양이들… 여러 차례 생명의 탄생과 죽음을 목격하는 와중에 스님 마음속에는 잊지 못할 추억과 이야깃거리가 수북이 쌓여 갔다. 단풍이 무르익듯 깊어진 스님과 고양이들의 나날을 담은 이 책은, 어찌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과 어찌할 수 없는 인연의 오고 감과 어찌할 수 없는 존재의 본질에 대한 성찰이다. 인적 드문 산중암자에서 ‘냥이선사’로부터 터득한 농밀한 삶의 지혜다.

놀라움의 크기만큼

행복도 커진다

사람에게는 각자의 일이 있고 각자의 농사가 있다. 그 일에 집중하고 그 속에서 기쁨과 보람을 찾아야 한다. 보경 스님은 50대에 접어들어 책 읽고 글 쓰며 불교를 인문학적으로 해설하는 일로 인생의 후반부 계획을 세웠다. ‘반짝이는 번개 속에서 글을 읽더라도 읽는 값을 치러야 한다’는 말을 모토로 삼아 삶과 수행에서 얻은 통찰을 세상 사람들과 나누려 애쓰고 있다. 지식이든 지혜든, 자신이 아는 것을 남들과 나누지 않고 홀로 삭이는 것만큼 비참한 일도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책에 담긴 스님의 메시지는 ‘경이롭게 바라보기’다. 평생 혼자 사는 데 익숙한 스님에게 찾아온 낯설고 신비로운 존재, 사람의 상식으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고양이의 하루하루를 지켜보면서 알게 된 행복의 비결이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는 놀라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별 볼 일 없다는 듯 바라보면 모든 게 다 시시하다. 그런 삶에는 즐거움이 적다. 작은 것 하나도 경이롭게 바라보면,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소한 것들 안에 있는 특별함을 볼 줄 아는 안목을 가지면 매 순간이 놀랍고 흥미로워진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옛 선사와 현자 들이 하나같이 행복을 좇지 말라고 가르친 까닭이다. 행복은 외적 발견이 아닌 내적 경험이기 때문이다.

“하루는 어느 하루와도 같다”

흔들림 없는 삶을 위한 평정의 지혜

고양이들은 어디서든 잘 산다. 고양이들이 낯선 곳이라도 태연하게 자리를 잡고 살아갈 수 있는 건 그들의 생각이 바람과 같아서 불현듯 옮겨가고 지난 과거는 머릿속에 남기지 않아서다. 그리고 매사 ‘알맞게’, ‘지나치지 않게’ 살기 때문이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잔다는 선종의 가르침을 가장 잘 실천하는 존재가 바로 고양이들이다. 마땅히 사람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지나간 것에 대한 집착은 삶을 옥죈다. 내일은 오늘과 다를 거라는 헛된 기대와 환상도 마찬가지다. 집착과 욕망은 삶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공범이다. 지치거나 치이지 않고 자신만의 삶을 온전히 살아가려면 세상을 조금 더 냉정하게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욕망은 마르지 않는 샘과 같아서 또 다른 욕망을 낳는다. 좋은 삶이란 생각을 좇아 이리저리 방황하는 일 없이 지금 순간을 충만하게 살아가는 데 있다. 어제처럼 오늘을 사는 것, 곧 평정심을 잃지 않는 자세야말로 삶을 든든하게 지탱해 주는 힘이다.

하루하루가 다르면 지쳐서 살아남기 어렵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다름없는 내일이 그려지지 않으면 평정심을 잃는다. 그래서 나는 시골의 들판을 보거나 물이 모여있는 수로를 지날 때면 한자 ‘平(평)’의 의미를 생각한다. _ (본문 중에서)

책속으로 위로

냥이를 보고 있으면 시간이 지나가는 것을 느낀다. 엄밀히 말해 냥이에 대한 사랑이 시간을 잊게 한다. 시간이 사랑마저도 지나가게 한다는 것은 시간이 사랑을 변하게 한다는 뜻이다. 사랑이 위대한가 시간이 위대한가. 세상은 사랑이 있어야 하고 시간은 공평하게 망각을 준다. 그래서 사랑은 외치지만 시간은 침묵한다. 세상의 그 무엇도 시간 밖의 것은 없다. 시간이 지나면 본질은 저절로 드러난다. 기다리는 것이 어렵지 알지 못하는 것이 두려울 건 없다. 우리는 삶을 지나치게 과장할 필요도 없지만 무의미하게 흘려보내서도 안 될 일이다. (22-23쪽)

내가 냥이를 돌보면서 달라졌다고 하는 말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동물을 보면 기쁘기도 하지만 감당해야 할 슬픔도 있다. 그 슬픔이 나를 흔들기도 하면서 배움으로 이끈다. 내가 궁극에 이르려고 하는 피안의 세계가 저 대양이라면 거기에 이르는 많은 길이 있다. 나는 가능하다면 비가 되어 단박에 바다에 똑 떨어지기보다는 더 낮게 지면을 타고 흐르면서 세상 구경도 하고, 사람들이 뭘 하며 살아가는지 귀동냥도 해가면서 바다로 흘러드는 강물의 느슨한 흐름을 따르려 한다. (35쪽)

나는 선명하게 깨어있으려고 한 번씩 밖으로 나가 햇살을 살피고 들어오기를 반복한다. 냥이는 잠에서 잠으로 이어지는 속에서 또 한 세계를 보고 있는지 오후 햇살이 넘어가도록 콧등도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오늘따라 밀키와 쵸코도 웬일인지 방에서 늘어지게 잔다. 각자 자신의 시간을 만끽하는 이 느슨함은 도리어 팽팽한 긴장감을 드리운다. 평화는 긴장의 균형 속에서 찾아진다. 고요하다. (64쪽)

내가 냥이를 돌보면서 얻은 공덕이라면 기쁘게(Happy), 유쾌하게(Pleasant) 살겠다는 각성을 하게 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책상 앞에 ‘나는 기쁘게 오늘 하루를 살 것이다’라고 붙여놓았다. (중략) 심신의 유쾌하고 경쾌함은 햇살처럼 번지며 깃털처럼 가볍다. 냥이의 경우, 양탄자도 필요 없고 보석으로 치장한 집이라 해도 별 관심이 없다. 그저 종이상자라도 하나 구석에 놓아준다면 행복하게 한나절을 깊은 잠에 빠져 보낼 수 있다. 기쁨이 있는 가난은 훌륭하다고 하는데, 냥이는 이런 철학에 아주 충실한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75-76쪽)

지금 누리는 이 여유가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항상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볼 생각을 하는 것이고 사람이 아닌 저 털북숭이 친구인 냥이에게도 말을 건네고 마음을 주고 뭐라도 재미있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 냥이가 실제 즐겁고 행복할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냥이를 애틋하게 생각하고 소중히 대하며 소홀하지 않는 자세에서 나의 마음이 익어가는 게 유쾌하다. 그렇다면 뭘 못해? 까짓것 정원쯤이야. 그렇게 해서 화단을 만들었고 어설프지만 ‘냥이의 장미정원’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 과정은 생각보다 일이 많았다. (81-82쪽)

엄마가 아기를 키우며 경험하는 감정을 남자들이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더욱이 산중에 살아가는 나로서는 인간사야말로 책을 통해 이해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조그만 녀석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한 생명이 살아가는 과정을 알아간다는 사실이 신비롭게 다가왔다. (중략) 가장 본질의 자리, 그 내면은 활기차고 놀라운 것이다. 인간에게는 마음자리가 바로 그렇다. 진리를 보는 순수한 마음이 없으면 삶의 본질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순수하게 보면 이해하기 쉽다. 나에게 냥이와 이쁜이는 모든 것이 신비로웠다. 한 공간에서 더불어 살아가지만 결코 손에 들어오지 않는 야지의 이쁜이는 모든 것이 조심스럽다. (120쪽)

고양이는 사람 같다. 어쩌면 사람보다 더 진한 감정을 남긴다. 사람과 차이가 없다. 정원을 가꾸건 자연을 돌보건 사람이 주는 교훈을 조약돌 같은 이 조그만 동물도 준다. 사물을 통한 감정의 훈육은 나 자신에게 있다. 어떤 대상 어떤 조건을 통해 나의 내면이 드러난다. 따라서 외물은 나의 내면에 비치는 거울과 같아 내가 나를 만나는 비밀의 공간을 연다. 사랑스럽지 않은가. 당연히 사랑스럽고 고마워야 한다. (122쪽)

나는 거친 풀밭 속을 다니고 그대는 마을 깊숙이 들어간다는 선종의 법문이 있다. 거친 풀밭은 오염되지 않는 고독한 수행자의 길이다. 반면 마을 깊은 곳은 세속의 중심이다. 삶의 요령이 없으면 살아가기 어렵다. 그래도 누군가는 누군가의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 이쁜이가 숲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끝까지 바라보고 있자니 저 녀석은 본래 없는데 환영으로 만났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152쪽)

내가 잠결에 냥이의 단풍나무학교라는 말을 발견해낸 것은 뜻밖이었다. 냥이와 둘이 단풍나무학교라 이름을 짓고 냥이와 쵸코와 밀키를 앉히고 (이쁜이는 들어오지 않겠지) 얘기를 들려준다는 상상을 잠깐 했더니 잠결에도 그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던가 보다. 냥이는 고양이를 잘 아니까 여기저기 불러 모으고 난 이야기를 하면 된다. 그렇게 해서 정말 냥이와 내가 단풍나무학교를 만들어서 수업을 한다면, 그 첫 수업은 기쁘게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한 강의가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77쪽)

고양이, 특히 야지의 고양이와 지내려면 대략 정해진 서로의 패턴을 어기지 말아야 한다. 고양이는 서둘지도 않고 초조함을 드러내지도 않는 동물이라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이려 하지 않는다. 고양이와 사람의 관계에서 누가 더 좋아하고 그리워할까. 그리고 관계가 어긋나면 누가 더 괴로워할까. 고양이는 안다. 아쉬운 쪽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213쪽)

내가 냥이와 뜻밖에도 오랜 시간을 함께 잘 지낼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냥이의 존재가 방해라고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냥이를 절대 존중한다. 이 친구가 뭘 원하는지 경청하는 마음을 갖추고 나니 더 많이 이해되었다. 물론 냥이도 나를 수순하며 필요 이상으로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런 상대에 대한 절제의 자세가 공존을 어렵지 않게 해줬을 것이다. (274쪽)

사람들은 야지의 고양이를 보면서 저리 가라고 소리를 지르거나 보기 싫다고 미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 고양이는 누가 자신을 싫어하면 왜 진작 얘기하지 그랬어, 하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동물이다. 이 지나칠 정도로 예민하고 자존심 강한 동물에게 가혹하게 대하지 말라. 두 번 세 번까지 눈치 주지 않아도 고양이는 알아차리고 떠난다. 그렇게 떠난 길이라면 두 번 다시 자신을 반겨주지 않는 공간으로의 BACK은 없다고 봐도 된다. (292쪽)

내가 지금까지 본 문학적 수사 중에서 유년기를 표현한 말 중에 ‘숨이 차도록’만큼 탁월하다고 느낀 것은 처음이다. 유년기에는 그날의 에너지를 그날 모두 소진하려 든다. 아이들은 모든 것이 전속력이다. 그래서 아침에 눈을 뜨면 항상 새롭고 들뜬 기분이 된다. 냥이와 함께하는 나날은 말 수 없는 사람과 지내듯 침묵에 가까운 시간이지만 훗날 돌아보면 모든 순간순간이 숨이 차도록 가슴 벅찬 일로 기억될 듯하다. (2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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