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안의 문화이야기] 이매창과 개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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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의 문화이야기] 이매창과 개암사
  • 노승대
  • 승인 2022.06.02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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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3대 여류시인을 꼽자면 황진이, 이매창, 허난설헌이다. 다 알다시피 황진이, 이매창은 기생이었고 허난설헌은 허균의 누나로 양반가의 규수였다. 그러나 세 사람의 시 세계는 서로 판이하다. 황진이가 열정과 낭만이었다면 이매창은 그리움과 애잔함이었고 허난설헌은 고독과 쓸쓸함이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 둘러내어
춘풍 이불 밑에 서리서리 넣었다가
정든 임 오신 날 굽이굽이 펴리라

역시 황진이는 화끈하다.

이매창은 기다림 속에 애가 끓는다.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잡고 이별한 임
추풍 낙엽에 저도 나를 생각는가
천 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하여라

남편과의 애틋한 사랑도 없고 자식도 다 잃은 허난설헌은 홀로 절대의 고독을 읊조린다.

서쪽 연못에 봄비가 자욱이 내리니
가벼운 한기 비단 휘장으로 스민다.
시름에 겨워 병풍에 몸을 기대니
담 모퉁이에서 살구꽃이 지는구나.

부안은 기름진 들녘과 빼어난 변산, 칠산 앞바다의 풍요로움이 있어 일찍부터 시와 풍류를 즐기던 전통이 있다. 이매창과 그녀의 연인 유희경이 있었으며 근래에는 신석정 시인이 있었다. 내소사와 개암사 등 내력 있는 사찰도 있다.

1993년에는 나의 스승이신 에밀레박물관 조자용 박사님이 끊어져 가던 부안 내요리 돌모산 당산제를 살려야 한다며 온 힘을 쏟으셨기에 나도 부지런히 따라다녔다. 마을 축제를 살리자는 박사님의 뜻은 김포 대명리포구 풍어제, 인사동 거리축제, 속리산 구병리 서낭당 복원으로 이어졌다. 그러니 부안으로 가는 행로는 옛 추억과 함께 항상 마음이 들뜬다.

이매창의 묘. 매창을 아끼는 이 고장 사람들은 기생이라 부르는 것을 꺼려 명원(名媛)이라 적었다. ‘이름이 알려진 재주 있는 미인’이라는 뜻이다.

 

내요리 돌모산 당산. 이 동네 사람들은 짐대할머니라 부른다. 마을의 수호신이다. 정월에 줄다리기한 새끼줄을 새로 감는 것을 새 옷 입혀드린다고 한다.

 

부안 읍내 서문 안 당산. 조선시대 부안 읍성 서문에 배치했던 것으로 숙종 15년(1689)에 세웠다. 물론 남문과 동문에도 세웠다. 전염병이 문제였다.

 

동문 안 당산도 장승 한 쌍과 솟대 하나로 구성되어 있다. 숙종 때 1688년 1만 명, 1698년, 2만 3,128명, 1699년 25만 명이 전염병으로 죽었다.

 

전염병을 막을 방법이 없으니 액막이 장승이 등장한 것이다. 벅수라고 불렀으나 일제가 장승으로 강제 통합시켰다. 원래 장승은 길거리 표시 장승이었다.

 

개암사 대웅보전은 임진왜란이 끝난 뒤 1636년에 계호 선사가 중건했다. 울금바위를 배경으로 장중하고도 화려해 조선 후기 건물로는 가장 뛰어난 건물이다.

 

1597년의 정유재란으로 전라도 사찰은 거의 전소됐다. 중건하며 법당 지킴이로 방위신이 등장했다. 동쪽 추녀 밑에 사신(四神) 중에 청룡을 모셨다.

 

따라서 서쪽 추녀 아래에는 당연히 백호를 모셨다. 법당을 중심으로 보면 좌청룡 우백호가 된다. 법당 좌우 벽에 청룡, 백호 그림도 많이 그리게 됐다.

 

오방룡 중에서 총대장은 중앙의 황룡이다. 용은 또한 수신이기 때문에 법당 지킴이로 안성맞춤이다. 현판 위에 청룡, 황룡 정면상 조각을 설치했다.

 

기둥 위에 놓는 주두(柱頭)는 공포를 받치는 용도이지만 개암사 주두는 연잎 모양으로 다듬어서 올렸다. 또 연잎 주두의 모양이 조금씩 다르다. 정성이 느껴진다.

 

대웅전 안 한쪽 구석에 놓여있는 큰북이다. 옛날의 큰북은 통나무를 통째로 안을 파내고 양면을 암소와 수소 가죽으로 마무리했다. 보기 힘든 북이다.

 

대웅전 천장에는 용이 9마리 배치돼 있다. 충량에 두 마리, 사방 귀퉁이에 네 마리, 불상 정면 위에 세 마리다. 9룡은 가장 상서로운 수이기도 하다.

 

용의 머리만 조각해 놓는 것이 조금 미진하다고 생각했을까? 한 구석에는 비죽이 튀어나온 용의 꼬리가 보인다. 선조들의 해학이 숨어있다.

 

조선 후기 나라는 어지럽고 민생은 어려웠을 때 사찰들 역시 얼마나 힘들었을까? 천장 꼭대기 벽화에 유람온 사람들의 낙서가 그대로 남아있다.

 

그만큼 스님들이 지키기 힘든 시절도 있었다. 그런 낙서들이 여러 법당에 아직 남아있다. 용 위의 봉황은 연꽃 줄기를 물고 있다. 날개를 편 봉황도 있다.

 

능가산 편액은 김석천(金石川)이라는 아이가 9세에 쓴 글씨다.

 

개암사(開巖寺) 편액은 8세 김예산(金禮山)이 썼다. 개암사는 이매창이 죽었을 때 부안의 문우들과 아전들이 함께 ‘매창집’을 엮어 출간한 사찰이다.

 

개암사 동종은 숙종 15년(1689)에 주조한 것이다. 용머리 용뉴와 사각 틀 안의 솟아난 9개 유두는 신라양식이고 보살상이나 범어 글자는 조선 양식이다.

 

2년 전 내가 쓴 『사찰에는 도깨비도 살고 삼신할미도 산다』는 장승과 용에 대해 자세히 실었다. 세종도서에 선정됐으며 블교출판문화상 대상을 받았다.

 

새로운 신간 『사찰 속 숨은 조연들』은 금강역사, 사천왕, 저승사자, 동자 등 다양한 조연들을 조명했다. 휙 스쳐 지나가던 인물들의 연원을 탐구한 책이다.

 

사진. 노승대

(필자의 카카오스토리에도 실린 글입니다.)

 

노승대
‘우리 문화’에 대한 열정으로 조자용 에밀레박물관장에게 사사하며, 18년간 공부했다. 인사동 문화학교장(2000~2007)을 지냈고, 졸업생 모임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인사모)’, 문화답사모임 ‘바라밀 문화기행(1993년 설립)’과 전국 문화답사를 다닌다. 『바위로 배우는 우리 문화』, 『사찰에는 도깨비도 살고 삼신할미도 산다』(2020년 올해의 불서 대상), 『잊혔거나 알려지지 않은 사찰 속 숨은 조연들』(2022)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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