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시작과 끝, 경주 남산] 남산 순례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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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시작과 끝, 경주 남산] 남산 순례 가이드
  • 손수협
  • 승인 2022.04.28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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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인의 마음 찾아 떠나는 경주 남산 순례길 셋
남산 서쪽에 세 개의 릉이 있다고 해서 삼릉이라 한다. 신라의 박(朴)씨 왕릉으로 전한다.

5월의 남산은 연꽃으로 피어난다. 봄을 보듬은 자비의 미소에 돈독해지는 신심처럼 산색도 조금씩 짙어간다. 바위는 부처 부처는 바위라, 탑과 절은 별이 되고 새가 되니 경주의 봄은 남산에서 시작된다. 이번 안내 길에는 재단하고 분석하는 일은 접어둔다. 역사책 속의 낱말도 뒤에 둔다. 고독하고 여유롭고 설레는 한 순례자가 된다. 또 가피라든가 지혜라든가 하는 언어들도 잠시 내려놓는다. 그리고 머리나 가슴보다 몸이 먼저다. 호흡과 심장의 박동이 산과 함께한다. 바위와 체온을 교환한다. 지금 여기 불보살님이 바위에서 걸어 나오신다. 탑이 솟아오른다.

 

남산 드는 길 하나,

삼릉에서 용장까지

(삼릉~금오봉~용장골 4.6km 약 4~5시간 소요)

“남산은 어머니 같다. 여느 산들은 산에 드는 길이 몇 곳에 불과하지만 남산은 어느 골짜기로 가도 편안하고 푸근하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남산은 동서남북 예순여 넘는 골과 능선 어디로든 들 수 있다. 그중에 처음은 삼릉에서 시작해 냉골을 올라 468m 금오산 정상을 넘어 용장사를 거쳐 용장마을까지 순례다.

울진 봉화에 금강송 군락이 있다면, 한라산 영실코스에 육송군락이 있다면, 남산에는 삼릉 솔숲이 있다. 울산 언양에서 경주 시내로 들어오는 길. 솔향기 가득 머금은 솔숲 터널이 일주문처럼 방문자를 반겨 맞는다. 춤사위인 듯 경애왕릉과 삼릉을 도래솔로 감싸며 수천 년을 나고 쓰러지고 나고. 포석정에서의 음주가무에 대한 오해 속에서도 저무는 신라와 백성을 위해 엄동의 추위 속에서도 몇 날 밤낮을 남산신께 기도하던 경애왕도 솔숲의 호위와 위로에 영면하고 있다. 화석연료에 의존하던 때에도 이 숲을 지켜준 주민들의 고마움은 빼놓을 수 없다.

5월의 솔바람 소리를 도반으로 능을 지나 천 년의 시간인 듯 천천히 오른다. 바람과 새소리, 숨소리가 나지막이 염불처럼 들려온다. 탑이며 불상 조각들이 놓인 곁을 지나면 곧 첫 번째 머리 없는 석조여래좌상(사진 1)을 만난다. 50여 년 전쯤 계곡에 어깨만 살짝 드러난 채 묻혀 있던 불상을 지금 자리에 올렸다는 사실보다, 원래 이 자리에 계셨으리란 짐작에 더 마음을 둔다. 자연 바위 위, 툭툭 깨뜨려 연잎 없는 연화대좌 그 위에 결가부좌한 원만하고 한없이 부드러운 부처님은 그대로 남산과 하나다. 시간과 역사, 인연 속 숱한 사연에 상호는 대하지 못하나 적정에 드신 상호는 쉬이 마음에 새겨진다. 왼편 바로 위로 사람의 크기와 같게 만든 등신상인 듯한 마애관음보살님(사진 2)이 바위에서 나투시는 중이다. 아직 무릎 아래는 바위 안에 있고 둥그런 바위 자체는 광배로 삼고 뒤쪽 옷깃이 내려 날리는 듯한 바위는 지금 막 하늘에서 남산에 도착한 여운 그대로 순례자를 맞는다. 입술은 붉어 체온이 돌고 그윽한 시선은 우리가 온 길을 굽어본다.

관음보살과 석조여래의 후광을 뒤에 두고 그림인 듯 조각인 듯 여섯 불보살이 조성된 선각육존불(사진 3) 앞에 선다. “신라인들은 바위에 부처님을 조각한 것이 아니라 바위 속 부처님을 찾아냈다”라는 시인의 표현이 꼭 맞는 곳이다. 신라의 석공은 수 날을 이 바위와 마주했으리라. 어느 날 사바세계와 극락세계가 이 자리, 여섯 분의 불보살이 실루엣처럼 나타났을 것이고 이내 힘찬 정질로 순식간에 그 모습을 그리듯 새겨두었다. 여섯 분이 머무실 만치 거대한 바위를 오르다 문득 돌아보면 삼릉 솔숲이 물결치고 형산강 상류 기린천 너머로 남산과 짝인 망산이 주변 산들의 유혹에 아랑곳없이 남산과 순례자를 향해 가르마 탄 고운 얼굴로 인사를 건넨다. 

다시 몸을 돌려 바위길을 오르노라면 호흡이 다소 가빠질 즈음 정면 암벽이 걸음을 멈춰 세운다. 높고 고른 면의 갈라진 틈 아래를 자연스레 연화대로 삼고 두툼히 다문 입술과 풍만하나 골이 난듯한 상호의 여래. 여느 불상과는 다른 모습. 참으로 친근하여 절로 미소와 합장이 따라온다. 행여 원효대사님 모습이 이러셨을까. 근엄하나 자애롭고 소박하나 장엄하다. 간단한 선과 약간의 양감을 준 얼굴로 당당함과 여유를 순례자와 나눈다. 그 우측에는 부부바위가 협시보살을 대신하고 있다. 신라 귀족불교 속 민중불교의 산실이 남산이라고 하더니 삼릉골 선각마애여래좌상(사진 4) 한 체의 불상으로도 그 말을 대변하기에 넉넉하다. 원효대사의 무애춤을 떠올리며 걸음을 옮긴다.

이내 무참한 파괴를 당했던 불상이 지금은 보수와 복원을 거쳐 본래의 표정을 잃었음에도 단정하고 굳센 금강좌에 결가부좌를 튼 석조여래좌상(사진 5)이 순례자의 마음을 아프게도 단단하게도 만든다. 금오봉 정상에 닿은 부처님은 상선암 줄기를 용의 등에 탄 듯 내려오다가 지금의 자리에서 솟아올랐다. 아니 여전히 솟아나고 있는 것이 연화대 아래는 꽃잎을 생략하고 팔각의 모만 주어 산과 하나 되고 먼저 솟은 상대석 앙련은 한껏 피어 부처님을 받치며, 타오르는 화염문과 넝쿨무늬광배는 전성기 신라인의 자신감과 당당함이 피고 있다.

작은 개울을 건너 상선암으로 오르는 길 높고 아득한 느낌의 절벽 면에 어깨까지만 슬쩍 나타난 부처님, 선각마애불(사진 6)이 순례자를 보며 빙긋이 웃는다. 남산 부처님은 아무리 크고 높아도 군림하거나 경배를 강요하지 않는다. 굽어 내려 보지도 않는다. 같은 눈높이시다. 6m 높이의 마애석가여래좌상(사진 7) 앞에 서면 안다. 부조와 선각의 절묘한 조화는 미묘법문의 형상화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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