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쿡의 선과 정토] 소지장(所知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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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쿡의 선과 정토] 소지장(所知章)
  • 현안 스님
  • 승인 2022.04.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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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쿡의 선과 정토 이야기(41)]
소지장(所知章): 아는 것에 대한 집착이 우리의 앞을 가로막는다
출처 셔터스톡

한국에 왔을 때 청주 보산사에서 지내면서 어려운 일이 많았습니다. 보산사에서 미국 위산사와 같은 가풍과 프로그램으로 수행 생활을 하면서도, 저에겐 한국 스님들이 법랍이 높으니 따르라고 하셔서 혼란스러운 일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명상을 배우러 오거나, 수행하고 싶어서 온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영화 스님의 제자인 제게 해결책을 물었습니다. 그런데 제겐 결정권도 없었고, 승가로써 경험도 부족했습니다. 결정권은 없는데 서로 의견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괴로움이 많았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화가 치밀어 오르는 때도 많았습니다. 그때를 돌이켜보니 ‘나에게 영화 스님이 이렇게 이렇게 말해줬었으니까, 내가 맞아! 그리고 너는 틀려’라는 생각이 제 마음속에서 번뇌와 분노를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불교에서는 이런 것을 일컬어 ‘소지장(所知章)’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아는 것이 바로 우릴 가로막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이 오히려 우리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이렇게 가장 무서운 것이 바로 지식입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지식과 경험이 앞으로 나아가는 데 방해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수행의 단계가 아주 높은 사람에게도 해당하는 문제입니다. 사실 수행하면서 단계가 상승할수록 아는 것에 대한 확신도 강해집니다. 자기 자신이 옳다고 믿기 쉽습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것이 옳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여러분의 진전을 방해한다면 어떤가요? 그렇다면 그런 지식은 여러분에게 좋은가요? 나쁜가요?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이 아는 것이 오히려 여러분을 함정에 빠뜨립니다. 여러분 자신의 성공, 자신의 지식과 지혜의 희생자가 돼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을 소지장이라고 합니다.

부처님의 지혜는 불가사의합니다. 하지만 이미 아는 것이 일으키는 장애, 여러분이 알기 때문에, 그것이 여러분을 멈추게 합니다. 그게 함정입니다. 지식이 여러분을 막습니다. 여러분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느끼게 합니다. 자기 자신을 확신하게 만들어서 다른 이의 말을 더는 듣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긴장을 푸십시오. 여러분이 고집을 부릴 때, 스스로 자랑스럽게 느낄 때, 그 지식은 문제가 돼버립니다. “이것은 내가 아는 문제이다. 내가 옳다”라고 말하면서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긴다면, 고집부리는 걸 멈추십시오. 그러니 지식에 대해서 걱정하거나, 좋은 지식인지, 나쁜 지식인지, 성공인지 실패인지, 원하는 걸 얻을지, 얻지 못할지, 뭘 걱정합니까?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지혜입니다. 여러분이 걱정하면, 스스로 옳다는 함정에 빠져버립니다.

소지장은 인류의 가장 큰 질병 중 하나입니다. 인류의 가장 큰 병은 암도 아니고, 우울증도 아닙니다. 여러분을 함정에 빠뜨리는 여러분이 갖고 있는 바로 그 지식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을 인생에 대해서, 현실에 대해서 눈멀게 합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지금 나한테 내가 틀렸다고 말하는 건가요?”, “아니요. 당신이 옳아요. 하지만 혼란스러울 뿐이죠!” 부처님의 지혜가 놀랍지 않나요? 우리는 모두 소지장이라고 불리는 이 문제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 그 지식이 우리의 장애가 돼버립니다. 그 지식이 우리의 눈을 멀게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정체하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가둬버리는 꼴입니다. 스스로에게 너무 확신하면 아무도 여러분에게 손을 뻗을 수 없게 돼버립니다.

출처 셔터스톡

그러니 긴장을 푸십시오. 릴랙스(relax)! 그러니 고집부리지 마십시오. 알고 있는 지식에 매달리지 마십시오. 그런 지식은 필요치 않습니다. 명상할 때, 때가 되면 여러분이 꼭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그것이 알아서 올 겁니다. 그건 여러분의 불성에서 비롯됩니다. 그건 여러분이 알고 있는 지식, 그 장애를 뛰어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복이 있으면 저절로 알아야 하는 정보가 여러분에게 저절로 올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복이 있다면 수만겁년 전에 팔식에 저장되어 있던 정보도 여러분에게 알아서 올 것입니다. 복이 무르익으면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니 ‘왜 성공하지 못하는 것일까’, ‘내가 원하는 걸 왜 얻지 못할까’라고 말하면서 자책하지 마십시오. 그런 걱정하는 대신 차라리 복을 더 지으십시오. 법문을 들을 때에도 긴장을 풀고, 한쪽 귀로 듣고, 다른 쪽 귀로 흘러가게 두십시오. 배운 내용을 기억하려고 너무 노력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에게 복이 있으면, 필요할 때 자연스럽게 떠오를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바른 것을 여러분의 의식, 즉 팔식에 심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복이 그 정보가 필요할 때 꺼내줄 것입니다.

긴장을 풀고, 걱정을 멈추세요.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돼야 한다는 생각을 멈추세요. 그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뿐입니다. 일어나야 할 일은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 자신을 혹사시키지 마십시오. 주변의 사람과 상황을 통제하려고 하지 마세요. 긴장을 푸십시오. 차라리 해야 할 일, 옳은 일을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들에게 좋은 일이 생길 것입니다.

 

현안(賢安, XianAn) 스님
출가 전 2012년부터 영화(永化, YongHua) 스님을 스승으로 선과 대승법을 수행했으며, 매년 선칠에 참여했다. 2015년부터 명상 모임을 이끌며 명상을 지도했으며, 2019년 미국 위산사에서 출가했다. 스승의 지침에 따라서 2020년부터 한국 내 위앙종 도량 불사를 도우며 정진 중이다. 현재 분당 보라선원(寶螺禪院)에서 상주하며, 문화일보, 불광미디어, 미주현대불교 등에서 활발히 집필 중이다. 국내 저서로 『보물산에 갔다 빈손으로 오다』(어의운하, 2021)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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