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든 스님] 전쟁 참여와 불살생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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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든 스님] 전쟁 참여와 불살생계
  • 한수진
  • 승인 2022.03.29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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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과 살생,
불교에 던지는 화두

살생에 대한 두 가지 계율

붓다는 비폭력을 강조하며 전쟁과 살생을 반대했다. 그의 전쟁 반대론은 경전 곳곳에서 나타난다. 붓다는 전쟁이나 싸움이 나면 중재해 폭력을 저지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한 예로 율장에는 꼬삼비에서 일어났던 승가 규율을 둘러싼 승가 내 싸움 중재를 위해 붓다가 비유한 디가부 이야기가 있다. 붓다는 디가부와 그의 아버지를 통해 ‘원한은 원한에 의해 사라지지 않는다. 원한은 원한을 여읨으로써 사라진다’라고 말하며,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불러오는 악순환을 거듭한다는 악업의 연속성에 관해 설한다. 또한 붓다는 석가족을 침략하는 비류왕을 두 번이나 설득했지만, 중재는 실패로 끝나고 비류왕은 석가족을 침략한다. 『증일아함경』에서는 처참히 살육당하는 석가족의 멸망을 묘사했다. 석가족은 적군이 원한을 품지 않도록 했다. 화살이 적군의 몸에 맞되 최소한의 상처만 입게 하고, 상투를 맞추되 머리를 다치지 않게 쐈다. 붓다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살생의 악업을 피한 것이다. 

석가족과는 달리 임진왜란에서 조선승군은 호국을 위해 적과 싸우며 살생을 했다. 어떤 이들은 이런 승군의 출정이 불살생계를 어긴 ‘파계’라고 말한다. 『아비달마순정리론』에서는 전시 상황이라고 해도 살생은 불살생계를 어기는 것으로 보고 예외 상황을 인정하지 않는다. 만약 ‘나는 오직 전쟁 따위의 인연을 제외하고만 능히 살생을 떠날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계율을 지키는 것은 계율과 유사한 묘행을 얻는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유정을 차별해 계율이 차별되는 일은 없기 때문이란 것이다. 

반면에 『유가사지론』에서는 보살이 무간업(無間業)을 짓는 도둑을 보고 자신이 지옥에 떨어지더라도 그가 무간고(無間苦)를 받지 않기를 바라며, 선심(善心)·무기심(無記心)·참괴(慚愧)로 도둑을 살생하는 것은 보살계를 범하는 게 아니라고 한다. 그 이유는 보살은 이타를 행함에 있어 싫어하고, 한스럽고, 성내고, 괴롭히려는 마음을 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계율을 지키는 마음가짐을 바탕으로 상황적 예외를 적용하는 것이 대승보살계의 지범개차(持犯開遮) 논리다. 이에 비추면 승군은 백성을 지키고, 적군이 조선 백성을 살육하지 못하게 막으려는 자비심으로 스스로 계율을 버리고 살생했으니 ‘파계가 아니다’라고도 할 수 있다. 이렇게 우리는 승군의 전쟁 참여 문제에 대해 각기 반대되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전쟁과 관련된 계율

우리가 오계를 지키지 않으면 때에 따라서는 세속법으로 처벌을 받기도 하지만, 불교 내에서 그에 상응하는 표면적인 처벌은 없다. 하지만 승가는 다수의 출가자가 공동체 생활을 영위하기 때문에 출가자나 승가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 행동이 발생할 때 이를 제지할 수 있는 규제가 필요하다. 출가자의 선행과 위의(威儀)는 청정하고 화합하는 승가를 만들고, 이런 승가의 모습은 재가자에게 신심을 굳건히 하게 하고, 불교를 발전시키는 밑거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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