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든 스님] 서산대사, 한국불교 이정표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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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든 스님] 서산대사, 한국불교 이정표 되다
  • 송희원
  • 승인 2022.03.29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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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대사의 일생

서산대사는 1520년 평안남도 안주(安州)에서 태어났다. 스님이 되기 전 이름은 여신(汝信), 성은 최(崔)씨였다. 9세에 어머니를, 10세에 아버지를 여읜 서산대사는 안주 고을에 사또로 부임한 이사증(李思曾)의 양자가 됐다. 글재주가 뛰어나고 총명했기에 이사증이 그를 거둔 것이다. 이후 서산대사는 12세에 성균관에 입학, 15세에 과거에 응시하나 낙방했다. 그리고 친구들과 두류산(현 지리산)으로 유람을 떠나 일생일대의 인연인 숭인(崇仁)대사를 만나게 됐다. 

숭인대사가 말했다. 

“그대의 기골을 보니 빼어나게 청수하여 평범하지 않다. 마음을 심공급제(心空及第)에 돌려서 세간의 명리심(名利心)을 끊음이 마땅하다. 서생의 업은 비록 종일 역역(役役)하기 1백 년을 할지라도, 그 얻는 바는 다만 하나의 허명(虛名)일 뿐이니, 실로 가석한 일이다.” 

“무엇이 심공급제(心空及第)입니까?”라고 묻는 서산대사에게 숭인대사는 “그것은 말로 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이른 뒤 수십 권의 불경을 건넸다. 이후 3년간 영관(靈觀)대사에게 지도를 받으며 불경을 탐구한 서산대사는 물을 길어오던 중 부처님 가르침의 이치를 깨닫고는 게송을 읊었다. “물을 길어오다 홀연 머리를 돌리니(汲水歸來忽回首) 무수한 청산이 흰 구름 속에 솟아 있네(淸山無數白雲中).” 

다음 날 아침, 서산대사는 원통암에서 정식으로 머리를 깎고 계를 받아 스님이 됐다. 21세 때 일이다. 서산대사는 ‘차라리 일생 동안 어리석은 사람이 될지언정, 문자에만 얽매여 수행하지 않는 문자법사(文字法師)는 되지 않으리라’라고 다짐한 뒤 수행에 전념했다. 

수행 정진하던 서산대사는 어느 날 한낮의 닭 우는 소리를 듣고 크게 깨닫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머리는 희었어도 마음은 늙지 않는다고(髮白非白心) 

옛사람 일찍이 이르더니(古人曾漏洩) 

이제 닭 우는 한 소리 듣고(今廳一聲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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