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함에 봄바람 불면 꽃 피지요…답이 시원찮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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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함에 봄바람 불면 꽃 피지요…답이 시원찮제?”
  • 최호승
  • 승인 2022.03.25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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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탈했던 조계종 제15대 종정 성파 스님
조계종 제15대 종정 성파 스님
조계종 제15대 종정 성파 스님

“코로나보다 악랄한 게 뭔지 압니까? 인간 마음을 악하게 물들이는 악심(惡心)이에요. 요즘 춘풍(春風, 봄바람)이 불어. 선심(善心, 선한 마음) 품고 살면 봄바람 불어 꽃이 피는 거지. 내가 말 안 해도 다 알고 있어. 한 발짝 더 양보하고 악한 마음 품지 말고 선한 마음으로 살면 좋겠다고만 할 뿐이라.”

불보사찰(佛寶寺刹, 불법승 세 가지 보물 중 부처님 사리를 모신 도량) 영축총림 통도사 방장 성파 스님의 말씀이다. 대통령 선거 후 갈등과 분열 양상을 보이는 사회에 필요한 가르침을 청하자 나온 대답이었다. 스님들 교육기관인 승가대학(구 강원), 선을 가르치는 선원, 계율을 배우는 율원 등을 모두 갖춘 총림(叢林) 어른의 답이 다소 심심했을까? 3월 24일 통도사 해장보각에 모인 기자들이 질문을 이어가니, 성파 스님의 진면목이 드러났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준비하는 새 정부에 당부 말씀을 청하는 대목이었다. 성파 스님은 당나라의 뛰어난 시인 백거이(白居易, 772~846)와 선사 도림(道林, 741~824) 스님의 일화를 꺼냈다.

“부처님 뜻이 무엇입니까?”(백거이)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모든 선을 받으러 행하며 자신의 뜻을 맑히는 것, 이것이 불교의 모든 것이다.”(도림)
“세 살 먹은 어린아이도 아는 것 아닙니까?”(백거이)
“세 살 먹은 어린아이도 알지만 여든 먹은 노인도 행하기 어려운 것이다.”(도림)

“세 살 아도 알지만, 팔십도 행하긴 어렵다 하는 기라. 얼마나 말대로 잘 행하나 두고 볼 일이지.”

백 마디 말보단 한 번의 실천 그리고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읽혔다. 새 정부뿐 아니라 삶을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에게 던진 메시지였다. 누구나 알아도 누구나 실천하긴 어려운, 가볍지만 묵직했다. 큰스님들이 쉽게 하는 듯한 말 한마디 행간의 의미는 그랬다. 왜일까. 성파 스님이 걸어온 길이 행간의 의미를 짐작게 했다.

1939년생인 성파 스님은 초등학교 시절 한국전쟁을 겪었다. 사람이 죽는, 학교가 불타는 전쟁의 참화를 기억한다. 서당에서 『명심보감』 등 사서삼경 한학을 배웠다. ‘명심보감(明心寶鑑)’, ‘마음을 밝히는 보배로운 거울’에 마음이 걸렸다. 1960년 월하 스님을 은사로 파르라니 머리카락 깎고 통도사로 출가했다. 36안거를 났다. 여름에 하안거든, 겨울에 동안거든 선방에 방부 들여 한철을 나면, 1안거다. 1년에 하안거, 동안거를 공부했다면 적어도 18년은 꼬박 일대사 해결에 골몰했다.

당대 선지식인 경봉 스님이 통도사 극락암에 주석하던 시절인연도 성파 스님의 살림살이를 채웠다. 작년 <중앙일보> 인터뷰에 따르면, 30대 초반의 성파 스님은 80대 경봉 스님에게 ‘마음이 무엇인가’를 게송으로 던졌다. ‘아심여명경 조진불염진(我心如明鏡 照塵不染塵)’. “내 마음은 맑은 거울과 같아서, 티끌이 비치긴 비치되 티끌에 물들지 않는다.” 경봉 스님은 “입 닫고 가만히 있어라” 답하며 어떤 견처를 인가했단다. 성파 스님은 웃으며 “대단한 깨달음 있었다고 말할 게 못 된다”라고 경계했다. 

성파 스님의 살림살이에 은사스님 자리도 있다. 2002년 은사 월하 스님에게 환성지안 문하 13세손으로 인가받은 성파 스님이 은사에게 받은 가르침은 뭘까?

“우리스님께서는 항상 ‘평상심이 도다, 이것을 벗어나지 않으면 중노릇 잘하는 거다’ 하셨어요. 평생 지키고 있습니다.”

누구나 안다는 ‘동요하지 않는 일상의 마음’ 평상심(平常心)을 배우려고 왜 좌선했을까. 대체 평상심은 어떻게 해야 하나, 혹 우리가 평상심을 오해하는 측면은 없을까?

“누구나 평상심 있고 부처 될 소지 있으니 알아서 해라 이겁니다. 손에 쥐여 줘도 모르면 우짭니까? 할 수 없는 거지.”

간담회 내내 농담인 듯 가볍게 답하는 말씀에 뼈가 있었다. 평상심은 봄바람 불면 향기로운 꽃 피우는 씨앗, 선심으로 읽혔다. “악심 품으면 코로나보다 남에게 더 피해를 줄 수 있어”라는 성파 스님의 말씀을 곱씹으면 그랬다.

성파 스님은 3월 30일 서울 조계사에서 종정으로 취임한다. 종정은 조계종의 종통을 승계하는 최고 권위와 지위를 가진 종단의 정신적 지도자다. 성파 스님은 조계종 법의 상징이라는 이름표를 가볍게 여기진 않았지만, 내세우지도 않았다. ‘불교계 큰어른’이라는 타이틀로 사회에, 새 정부에, 조계종에, 코로나 시국의 아픔을 겪는 국민에게, 가르침과 위로를 청하는 질문에 소탈하고 재치 있는 대답으로 간담회 분위기를 밝게 만들었다. 키포인트는 “답이 시원찮제?” 였다.

“내게 큰 부담을 주는 말인데? 산승이 (코로나를) 막을 방법은 없는데…. 어떤 고난이 있더라도 포기하지 않으면 되지 않겠나 싶다. 답이 시원찮제? 허허.”
(코로나 시국의 사부대중을 보듬고 위로하기 위한 희망 메시지를 청하는 질문)
“지금 방향은 설정해놓고 있지 않습니다. 종단 여러 소임자 스님들도 계시고, 혼자 이래라저래라하는 게 아니니까. 대답이 시원찮습니까? 허허.”
(역대 종정과 다른 모습을 기대하며 앞으로 기대할 종정의 모습을 묻는 질문)
“우리 불교도 새 정신으로 자정하고 새 마음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고…. 남 탓만 하는 시대에 내가 잘해야겠다 하는 거지. 새 정부에 특별히 바라는 게 없어요. 답이 시원찮습니까? 하하.”
(불교계 큰어른으로서 불교계 입장에서 새 정부에 바라는 점을 묻는 질문)

벼는 익을 수록 고개를 숙인다. 성파 스님은 낮출 줄 아는 어른이었다. 2021년 12월 조계종 제15대 종정으로 추대된 지 4개월 만에 기자들을 만났다. 그동안 인터뷰를 한사코 사양해왔다. 3월 25일 임기가 만료되는 제14대 종정 진제 스님을 향한 예의였다. 당신의 종정 임기 땐 의전 방침으로 운영하던 종정 예경실도 사실상 없다.

“다른 곳에 거처하면 몰라도 통도사에 살고 본사가 있는데, 본사 주지가 예경실장 하면 되고. 통도사 대중은 전부 우리 식구라. 상좌도 내 상좌, 니 상좌 생각 안 합니다. 옥상옥처럼 예경실을 두고 이래라저래라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예술하는 스님’, ‘예술가’라는 세간의 평가에도 겸손했다. 천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다는 옻칠로 한국의 전통 민화를 되살리고, 고려와 조선의 불화를 옻칠로 제작하고, 10년에 걸쳐 650t에 이르는 도자기를 구워 ‘도자대장경(陶瓷大藏經)’을 만든 성파 스님의 태도였다. 예술하는 종정? 예술가? 그렇지 않다는 거다.

“예술가도 아니고, 조예도 없는데 언론에서 부풀려서 말 한 게 아닌가 싶은데, 하하하. 혹 나무도 하고 혹 글씨도 쓰고 혹 좌선도 하는 그저 스님으로서 일상에서 하는 거라. 종정과 결부 안 시켰으면 좋겠습니다. ‘니 뭐하노?’ 하지 말고 일상인데 놔뒀으면 싶어요. 허허.”

그러면서도 한국불교와 전통에 애정을 드러냈다. “바퀴가 튼튼하면 어떤 길을 가든 중심을 잡을 수 있다. 한국 정신문화의 주축이 되어 온 한국불교가 중심이 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을 바라보는 안타까움은 숨기지 않았다. 여기서 성파 스님이 꺼낸 상불경 보살은 동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건네는 메시지의 핵심과 같았다. 상불경 보살(常不輕 菩薩)은 어떤 사람이든 불성을 지녔기에 소중히 여기는 보살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먼저 절하고, 어느 누가 욕하더라도 “당신들을 공경하고 감히 가벼이 여기지 않으니, 마땅히 보살도를 수행해 반드시 성불하게 되리라”는 말을 하고 다니는 보살이다.

“자기 잘났다고 남은 틀렸다고 서로 각을 세우는 상(相)을 무너뜨리고, 공덕림(功德林, 공덕의 숲)을 키워야 합니다. 숲이 우거지면 곤충, 새, 짐승 등 생명이 사는 복전(福田)이라. 이 살림살이로 지도자가 잘살아야겠다는 게 염원이고…. 반목과 질시, 입도끼 등 소리 안 나는 총으로 쏘는 게 지양돼야 백성도 편하지 않겠나. 전쟁으로 많은 사람 죽이는 거는 진짜 이거는 나쁜데…. 상불경 보살이 지금 필요한 거라.”

성파 스님은 60여년 수행자의 여정 중 3월 26일부터 5년간 조계종의 법을 상징한다. 스님은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 처음부터 지금까지랬다. 기자간담회 있던 날, 통도사 영산전 옆 오불매와 홍매, 백매가 봄바람에 활짝 피었다.
 

영산전 옆 홍매와 멀리 보이는 백매, 오향매
영산전 옆 홍매와 멀리 보이는 백매, 오향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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