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걸, 불교에 빠지다] 청춘을 불사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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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걸, 불교에 빠지다] 청춘을 불사르고
  • 김우영
  • 승인 2022.02.28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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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잎 하나[一葉],
확고한 자아의 확립
김일엽(金一葉, 1896~1971 본명은 원주元周)의 출가 전 모습, 수원시립미술관 소장. 

신여성에서 비구니로, 다시 비구니 문인으로

한 비구니가 1960년 『어느 수도인의 회상』을 시작으로 1962년 에세이집 『청춘을 불사르고』를 펴내자 대중의 반응은 뜨거웠다. 저자가 다름 아닌 소위 신여성 문인으로 ‘자유연애’와 ‘여성해방’을 몸소 실천하다가 1933년 이후 출가해 세속과 절연하고 철저히 승려로서의 삶을 살고 있었던 김일엽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김일엽은 1971년 입적하기 전까지 다시금 활발히 문필생활을 이어가며 한국 문학사, 사상사에서 승려 문인의 한 계보를 새롭게 남겨놓게 됐다. 

한국 근대 여성 문학, 그리고 한국 여성 불교를 논할 때 김일엽의 위치는 각별하다. 김일엽은 그 당시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일본에 유학도 다녀온 데다가 「신여자」의 편집인까지 역임하며 (여류)문인이자 사회운동가로 활발히 활동했다. 그리고 그간 자신에게 부여됐던 모든 이름을 뒤로하고 불교에 귀의해 비구니로 생을 마쳤다. 

‘자유연애’와 ‘신정조론’을 이야기하고, 누구보다 활발하게 사회의 일원으로 제 목소리를 내던 김일엽이 불교에 귀의해 승려가 된 사실은 그 드라마틱함 때문에 오래도록 세간의 이야깃거리가 됐다. 그러나 그런 저널리즘적 관심은 김일엽과 불교의 인연을 편의적으로 해석할 뿐 그의 일생에서 불교가 갖는 의미를 섬세히 살펴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김일엽의 일생을 불교적 관점에서 재발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근원적 고독과 자아의 문제

김일엽(일엽一葉은 법명, 본명은 원주元周)은 1896년 평안남도 용강에서 출생했다. 당시 평안도는 한반도 내 기독교 문명에 일찌감치 노출돼 기독교 세가 강한 지역이었다. 일엽의 아버지인 김용겸은 평안남도 지부장까지 지낸 목사였다고 한다. 이후 김일엽이 기독교계 교육기관인 이화학당과 도쿄 영화학교에 수학한 사실까지 포함하면 출생과 성장에 있어 기독교의 영향이 지대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내밀한 고백과 계몽적 성격이 두드러지는 김일엽의 글의 경향 또한 기독교적 글쓰기 전통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이후 김일엽의 전격적인 불교 귀의가 더욱 이채롭게 느껴지는 것 또한 그의 이런 성장 과정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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