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절로 소확행#] 봄 부르는 매화와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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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절로 소확행#] 봄 부르는 매화와 고찰
  • 최호승
  • 승인 2022.03.0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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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여세요, 봄의 향기가 핍니다”
천연기념물 중 유일한 홍매이자 국내 4대 매화, 장성 백양사 고불매 ⓒ백양사

봄은 어디서 왔을까? 어느 시인은 “봄은 ‘본다’에서 온 계절 이름”이라고 했다. 봄에는 만물소생을 볼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사실 불확실한 어원이다. 그러나 계절은 확실하다. 겨우내 극성이던 찬바람도 어느 순간 얼굴색을 바꾼다. 때가 됐다는 뜻이다. 봄을 부르는 것이다. 

2월이면 한반도 남쪽에서부터 봄소식이 들린다. ‘봄의 전령’이 봄을 알리고, 3월이면 곳곳에서 만개한다. 매화다. 예부터 매화는 일찍 꽃을 피운다고 해서 조매(早梅), 한매(寒梅), 설중매(雪中梅) 등 별칭으로 불렸다. 홍매, 백매, 청매 등 색에 따라 구분해 부르기도 한다. 봄이 오기도 전에 성급하게 첫 꽃을 피우는 매화도 있다. 그러다 날이 추워지면 금세 움츠러드니, 헛걸음하는 상춘객(賞春客, 봄의 경치를 즐기러 나온 사람)이 적지 않다. 오고야 마는 봄처럼 확실한 ‘봄의 전령’ 매화를 어디서 볼 수 있을까?

무풍한송로 끝에 피는 자장매

거제에는 구조라 초등학교 교정에 4그루 매화가 있다. 시기적으로는 매년 1월 10일경 꽃망울을 맺고, 입춘(2월 4일) 전후에 만개하는 거제 춘당매는 비교적 빨리 피는 매화로 알려졌다. 비슷한 시기에 ‘봄의 전령’을 자처하는 매화가 있다. 통도사 자장매다. 통도사를 창건한 스님인 자장 율사의 지계 정신을 기려 자장매(慈臧梅)라고 했단다. 1643년에 심었다 하니 올해 379살이다. 

영축총림 양산 통도사에 금강계단과 자장매만 있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자장매를 보려거든 통과의례가 있다. ‘소나무들이 춤추듯 구불거리는 길’ 무풍한송로(舞風寒松路)를 거쳐야 한다. ‘아름드리 노송들이 춤추듯 구불거리고 항상 푸르름으로 서늘함을 느끼게 하는 길’인데, 누군가 화폭에 붓으로 소나무들을 휙휙 그어놓았다. 나이를 100~200살 먹은 소나무 사이로 바람마저 구불구불 흐를 것만 같다. 전국의 좋은 소나무를 베어가기에 혈안이었던 일제 강점기, 구하 스님과 경봉 스님의 지혜를 떠올려도 좋다. “다 베어갈 거면 통도사 저 안쪽부터 해라.” 영축산 중턱부터 소나무를 베어갔으니, 통도사 입구 소나무는 살아남았다. 2018년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길로 선정됐고, 통도사 8경 중 제1경이고, 매표소에서 부도전까지 1.6km 거리라서 걷기 좋으니 거를 이유가 없다. 자장매는 이름만큼 유명한 홍매다. ‘우리나라 홍매의 표준’이라 불린다. 만첩홍매나 분홍매 보다 크고 화려하다. 초행길이라면 흔히 극락전 옆에 나란히 피는 홍매와 청매를 자장매와 헷갈리기도 한다. 하지만 자장매는 단 한 그루뿐이다. 옛 스님들 진영 60여 점이 봉안된 특별한 공간인 영각(影閣) 앞에 있다. 일주문 지나 영산전과 극락전, 약사전을 천천히 돌다 보면 자장매가 홀로 서 있다. 2월 10일 찾았을 땐, 성급한 상춘객에게 조금 이르다며 한두 송이만 피웠다. 2월 말이나 3월 초면 그 자태와 진한 향기를 만날 수 있겠다.

4대 매화와 호남오매湖南五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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