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이야기] 봉화 '춘양목'과 울진 '처진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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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이야기] 봉화 '춘양목'과 울진 '처진소나무'
  • 노승대
  • 승인 2022.01.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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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에 다녀왔다. 울진은 소나무가 많은 고장이다. 우리 소나무는 묵을수록 색깔이 붉고 거북등처럼 갈라져 한문으로는 적송(赤松)이라 했다. 사계절을 겪고 자라기 때문에 목질이 단단해 금강송이라고도 부른다.

문경 황장산의 금강송은 나라에서 쓰기 위해 함부로 벨 수 없게 금표(禁標)를 세우고 관리했기 때문에 황장목이라 불렀으나, 여러 산에 이식하면서 보통명사가 됐다. 황장목은 실제로도 나무껍질을 벗겨 놓으면 누런색 속살이 드러나기 때문에 누를 ‘황’, 창자 ‘장’ 자를 써서 황장목(黃腸木)이란 이름이 붙었다.

봉화군 춘양면은 이 지역 소나무의 집산지로 한옥을 짓는 데 으뜸가는 목재였기에 춘양산 소나무라 하여 ‘춘양목’으로 불렀다. 목재상들이 다른 지역 소나무를 춘양목으로 속여 팔았기에 ‘억지춘양’이라는 말도 여기에서 나왔다. 결국 적송, 금강송, 황장목, 춘양목은 다 같은 우리 소나무다.

봉화에서 울진으로 넘어가면 온 산들이 모두 적송 소나무다. 골이 깊고 산이 높아 베어도 옮기기가 쉽지 않았던 탓에 오랫동안 잘 보전된 지역이다. 남대문이 불타고 중건할 때도 울진지역 주민들이 좋은 소나무를 많이 기증했다. 예전에는 울진군 서면이었으나 지역 지명도를 높이기 위해 금강송면으로 이름을 바꿨다.

일제강점기 전까지는 울진지역의 해산물을 진 보부상들이 200여 리에 걸쳐있는 12령 고개를 2~3일에 만에 넘은 후 봉화, 영주, 안동지역에 물산을 공급했다. 험한 산길이어서 50여 년 전 울진에서 영주 가는 버스를 탔을 때도 비포장도로를 하루종일 달렸고 중간에는 운전기사의 점심시간도 있었다. 승객들은 기사가 언제 돌아올지 몰라 차창 밖으로 아이들이 파는 옥수수를 사 먹으며 기다렸다. 그래도 스치는 불영계곡의 아름다움과 산골마을의 소박함, 빼어난 산의 풍광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아, 아련한 추억이여!

 

금강송면 소광리는 금강송 군락지 중 최고로 꼽는 곳이다. 골 깊은 오지마을이어도 소광국민학교가 있어 졸업생 479명을 배출했건만 결국 폐교했다.

 

울진 현령 김봉년의 선정불망비. 그는 1868년에서 1871년까지 근무했다. 노역을 덜어줘 백성들이 비를 세웠다. 울진읍에도 그의 선정비가 있다.

 

소광국민학교 교정에 있었던 조각상. 소광리는 500년이 넘은 보호수 두 그루, 200년 이상 된 8만 그루 등 총 1,284만 그루의 금강송이 있다.

 

밤에도 여전한 파도는 구애하듯 해안가 바위를 껴안고 교교한 달빛은 밤바다로 내려온다. 은은한 빛 길은 아득한 수평선까지 이어졌다. 고적한 밤이다.

 

죽변 후정리 향나무. 수령 500년으로 압도적 크기를 자랑한다. 울릉도 향나무가 이곳으로 떠내려와 자랐다 한다. 당연히 동네 신목이며 성황사가 있다.

 

봉평 신라비 전시관 입구의 비석군. 철로 만든 철비는 드문 편인데 2기가 있다. 조선 말기 관리들은 자기의 선정비를 세운다고 백성들을 등치기도 했었다.

 

고구려가 관할하던 이 지역을 신라가 점령하자 불복한 주민들이 항거했고 신라조정에서 이를 진압하며 세운 비가 바로 봉평 신라비(국보)다.

 

전시관 안에도 중요한 비석들의 재현품이 있고 뒤뜰에도 비석들의 실물 크기 재현품이 공원으로 형성돼 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비도 7m로 실물에 가깝다.

 

이 공원에는 중요 비석 25기가 세워졌다. 북한에 있는 황초령 신라 진흥왕순수비도 있다. 한국의 첫 비석박물관이다. 한 번에 중요 비석을 다 볼 수 있다.

 

관동 8경의 한 곳인 망양정(望洋亭)이다. 정자 이름 그대로 망망한 큰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정자다. 울진군에는 또 하나의 관동팔경인 월송정도 있다.

 

망양정 아래 해수욕장에서 바라본 동해. 맑은 왕피천 내린 물이 바다로 흘러든 탓일까? 유난히도 푸른 에메랄드빛 바다가 우리의 시선을 잡아끈다.

 

울진 구산리 삼층석탑(보물)은 울진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신라 말기의 석탑이다. 산 중턱 외길도로를 3km 넘게 들어가야 만날 수 있다.

 

석탑 앞의 석등도 하대석과 기둥 돌만 일부 남아있다. 옆에 석등 하대석이 또 한 기 있다. 청암사지로 알려져 있는데 언제 폐사되었는지는 확실히 모른다.

 

절터에서 주운 기왓조각이다. 연잎이 네 개로 돼 있는 문양은 신라시대에도 있었다. 오랜만에 주운 보물이다. 요즘에는 발굴조사가 많아 줍기가 쉽지 않다.

 

구산리 석탑으로 가기 전에 만나는 작은 들판에는 고려시대 당간지주가 한 기 서 있다. 높이가 177cm. 들판이라 높은 깃대가 필요치 않았으리라.

 

울진 행곡교회는 침례교회로 1917년경 울진 읍성 병사 숙소로 쓰던 건물을 이곳에 옮겨 세웠다. 긴 사각형으로 남쪽에 출입구를 낸 한옥형 교회다.

 

한옥교회는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됐고 1983년 옆에다 새로 교회를 지었다. 소박하고 정겹다. 국민일보가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교회’다.

 

수령 300년의 행곡리 처진 소나무. 천연기념물 제409호. 앞은 주명기의 효자각이다. 전신불수가 된 부친을 끝까지 봉양하고 3년 시묘살이도 했다.

 

처진 소나무는 높이 14m로 지상 8m에서 나뭇가지가 사방으로 퍼지며 밑으로 처져 땅에 닿을 정도로 내려왔다.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우산 모양이다.

 

행곡리 천연동 성황당. 나무와 돌담이 둘러싼 당집은 처녀성황을 모신다. 강원도에는 아직도 살아있는 서낭당이 많다. 산과 바다에 의지해 살기 때문이다.

 

사진. 노승대

(필자의 카카오스토리에도 실린 글입니다.)

 

노승대
‘우리 문화’에 대한 열정으로 조자용 에밀레박물관장에게 사사하며, 18년간 공부했다. 인사동 문화학교장(2000~2007)을 지냈고, 졸업생 모임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인사모)’, 문화답사모임 ‘바라밀 문화기행(1993년 설립)’과 전국 문화답사를 다닌다. 『바위로 배우는 우리 문화』, 『사찰에는 도깨비도 살고 삼신할미도 산다』(2020년 올해의 불서 대상)를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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