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쿡의 선과 정토] 선종의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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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쿡의 선과 정토] 선종의 조사
  • 현안 스님
  • 승인 2022.01.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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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쿡의 선과 정토 이야기(26)]
Chan Patriarchs
그림 서주 스님.

한국에 도량을 열자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보통 절에 많이 다닌 사람들에게 명상이나 수행을 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당연히 수행해야죠”, “성불해야하니까요”라고 말합니다. 저는 처음 명상을 배우러 노산사에 갔을 때, 그렇게 화려하고 큰 뜻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영화 스님이 옛 조사 스님들이나 선화 상인의 이야기를 해주실 때 관심도 없었고,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불교에 대한 사전 지식이 별로 없었던 데다, 영화 스님은 조사 스님의 법명을 중국어 발음으로 하셔서 알아듣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영화 스님은 불교나 동양 문화에 대해서 잘 모르는 미국 학생들에게 꽤 자주 조사 스님의 가르침과 그들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잘 알아듣지 못하는 미국 제자들인데도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했죠. 세월이 지나 이제 이런 스승님의 노력에 더 큰 고마움을 느끼게 됩니다. 예전에 이런 가르침과 지식이 얼마나 큰 가치가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수년 동안 들어온 이야기가 조각조각 모여서 불교에 대한 좀 더 큰 그림을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영화 스님은 저를 출가할 수 있게 허락한 후 6개월 만에 한국으로 보냈습니다. 출가자로서 뭘 해야 하는지 아는 것도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루하루 어렵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겉으로는 예의를 차려서 대했지만 출가자로서 갖춰야 할 위의(威儀, 자세, 태도, 예법 등)가 없는 저를 마음속으로는 은근히 무시하고 낮게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영화 스님의 출가 생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는 영화 스님의 보호와 가르침을 받으며, 체계적인 교육과 수행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 스님이 출가했을 때는 이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선화 상인께서 영화 스님이 출가하도록 허락한 후 얼마 되지 않아서 돌아가셨습니다. 사실 선화 상인께서 살아계실 때 영화 스님이 그를 직접 만난 것이 몇 번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선화 상인이 떠난 후 영화 스님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명확한 지침을 받지 못했고, 심지어 명상하는 방법도 제대로 몰랐다고 합니다. 그 후 4년간 그는 사미승으로 선화 상인의 도량에서 지내면서, 다른 제자들에게 명상하는 방법을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대답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제자 중 선 수행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만 자기가 가르쳐줄 수 있다고 앞으로 나섰다고 합니다.

그렇게 4년을 선화 상인의 도량에서 지낸 후 그는 그곳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그는 다음 지침을 줄 수 있는 선지식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수년간 많은 곳을 다니면서 중국어와 계율을 배우면서 계속 스승을 찾았습니다. 책도 수없이 많이 읽었습니다. 베트남 불교, 중국 불교, 한국 불교, 소승, 대승 등 가리지 않고 다 읽었습니다. 여러 조사 스님의 가르침도 읽었습니다. 하지만 선화 상인의 가르침을 이미 접했기 때문에 다른 스승의 가르침과 자연스럽게 비교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늘 실망했습니다. 선화 상인은 모든 걸 아주 아주 쉬운 단어를 통해, 직접적이고 곧게 가르쳤습니다. 모든 게 매우 단순하고 명료했습니다. 돌려서 말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의 것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선(禪)이 가진 매력입니다. 아무리 유명하고 권위 있는 학자이든, 스님이든 그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려운 질문에 화려하고 어려운 용어로 치장해서 대답해서 사람들에게 인상을 남길 수는 있지만, 선의 세계에서는 속일 수 없습니다. 선의 가르침은 모호하면 안 됩니다. 진정한 스승이라면 내가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해야 다음으로 갈 수 있는지, 어디에서 정체하고 있고, 어떻게 하면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스승은 우리가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는 지침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지침은 배우는 사람의 단계에 적절해야만 합니다.

 

영화 스님은 늘 “어떤 수행법이든 3년 동안 변화가 없으면 버리고 다른 것을 찾아야 한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이 절에서 기도, 절, 참선, 봉사 등으로 변화가 있었다면 그건 매우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 후 어느 순간부터 계속 정체하고 있다면 즉 마음의 기복, 부정적인 생각, 건강 문제가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그 이상의 도약과 향상이 없었다면, 포기하지 말고 끊임없이 선지식을 찾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저는 사람들에게 참선을 가르치면서, 한국의 많은 수행자와 만나면서, 스승에 대한 더 큰 감사의 마음이 생겼습니다. 왜냐하면 한 번도 정체할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참선을 소개하면서, 영화 스님은 처음부터 제가 멀리까지 갈 수 있도록 준비했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옛 조사 스님은 제자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계셨다고 합니다. 각 제자가 어떤 단계에서 정체하는 걸 벗어나는 데 필요한 특정한 법을 실행할 수 있게 해줬습니다. 좋은 스승이라면 절대로 여러분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선 수행자에게는 선지식이 가장 중요합니다. 여러분의 선지식은 전체적인 그림이 있어야 하고, 제자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에 맞춰서 적절하게 지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들은 제자들이 순조롭게 수행할 수 있도록 보호와 후원을 해줘야 합니다. 훌륭한 선지식이라면 이런 걸 이해합니다. 우리가 어느 정도 힘과 지혜가 갖춰질 때까지는 이런 게 반드시 필요합니다. 밖의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유혹과 방해가 있고, 우리가 볼 수 없는 안 보이는 세상의 도움도 있어야 합니다.

명상이나 수행을 진지하게 여긴다면 조사 스님의 가르침부터 숙지해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따르거나 언론에서 칭송하는 자의 말이라고 무조건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그래야만 여러분이 믿고 의지할만한 가르침인지, 그 가르침이 여러분을 바른길로 이끌어줄 수 있는지, 아니면 겉으로만 그럴싸하게 보일 뿐인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보다 선정의 단계가 높은 사람은 알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마하가섭을 첫 조사로 하여 조사 시스템을 마련해놓은 것입니다. 모든 단계의 수행자들은 선종의 조사 스님을 찾아가면 바른 법을 배우고 수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참고법문: 영화 선사의 ‘선종의 조사(Chan Patriarchs)’ 법문(2013년 1월 5일)
 

현안(賢安, XianAn) 스님
미국에서 영화 선사(永化 禪師, Master YongHua)를 만나 참선을 접한 후 정진해왔으며, 2015년부터는 ‘공원에서의 참선(Chan Meditation in the Park)’이라는 모임을 캘리포니아 지역을 중심으로 이끌었다. 그후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사업을 정리하고 미국 위산사(潙山寺, Wei Mountain Temple)에서 그를 은사로 출가했다. 2020년 한국으로 돌아와 청주 보산사를 거쳐 현재 분당 보라선원(寶螺禪院, Jeweled Conch Seon Center)의 개원을 도우며, 정진 중이다. 현재 문화일보, 불광미디어, 미주현대불교 등에서 활발히 집필하며, BBS불교방송 라디오에서도 활동 중이다. 국내 저서로 『보물산에 갔다 빈손으로 오다』(어의운하, 2021)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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