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쿡의 선과 정토] 한해를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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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쿡의 선과 정토] 한해를 마치며
  • 현안 스님
  • 승인 2021.12.29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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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쿡의 선과 정토 이야기(24)]
청주 보산사 앞에서 현안 스님. 

올해 정말 크고 작은 사건이 많았습니다. 얼마 전 핸드폰 속 사진과 달력을 보고, 그동안 잊고 있었던 일들과 사람들, 그리고 많은 변화가 생각났습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청주의 텅 빈 건물에서 몇 한국 스님과 수행자들과 함께 보산사 공사를 시작한 게 불과 1년 반 전입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 스님들 대부분은 미국 위산사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보산사에서 수행하던 중년 여성 한 분과 젊은 아가씨가 올해 영화 스님을 스승으로 출가하게 됐습니다. 특히 이 젊은 아가씨는 정확히 1년 전 선칠에 3일만 참여해보겠다고 보산사에 찾아왔는데, 벌써 우리 승가의 일원이 됐습니다. 그녀는 이미 많은 이들의 수행을 돕고 있습니다. 참으로 멋진 일입니다.

게다가 올여름 불광미디어와 인연이 닿아서 이렇게 홈페이지에 매주 연재하게 됐습니다. 꽤 많은 사람이 매주 연재하는 게 좀 무리가 될 것 같다고 말하지만, 사실 저는 글을 써서 불광미디어에 보낼 때마다 기분이 좋습니다. 매주 글이 올라갈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저의 인생을 송두리째 변화시킨 영화 스님의 가르침, 위앙종의 가풍, 수행의 경험을 많은 이들과 나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이 글을 읽고 저처럼 인생에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수년 전 공원에서 참선 교실을 시작했을 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내가 한 경험을 나의 노력을 통해 단 한 사람이라도 변화할 수 있게 된다면, 이런 시간과 노력은 그럴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제게 너무 종교에 빠지는 것은 아니냐며 걱정했고, 너무 오로지 한 스승에게만 의지했다가 잘못될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말했습니다. 젊은 사람이 밖에서 연애하고 더 즐겨야 하는데, 무슨 문제가 있길래 이렇게 사는지 의아해하고 이상해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평일 저녁 줌으로 진행되는 법문, 참선 교실 모습. 사진 현안 스님.

하지만 저는 제가 했던 이런 멋진 경험을 다른 이도 해 볼 수 있도록 기회를 준다는 게 참으로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내가 당장 원하는 맛있는 음식, 충분한 수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자유, 고급 옷과 침구를 포기해야 했지만, 나의 편의와 이익에 대한 생각 한 점 없이 다른 이들의 끊임없는 변화와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호사스러운 일입니까? 우리가 대부분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은 마음이 충분히 부유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미래에 대한 걱정, 돈에 대한 걱정, 건강에 대한 걱정으로 늘 바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제대로 삶을 살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거나, 자살 충동이 있거나, 부모와 대화가 단절됐거나, 당장 이혼하고 싶어 하며 늘 싸우는 부부 등 이런 이들이 명상과 불교를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해나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이들이 점점 생각이 정리되고, 자신감이 회복되면서 회사에서 승진하고 사람들과 더 좋은 인간관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저는 예전보다 훨씬 더 행복한 사람이 됐습니다. 진정한 삶의 의미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이들이 더 부자가 되고, 더 성공하고자 발버둥 치고 있을 때, 나 자신보다도 다른 누군가의 삶에 진정한 변화를 줄 수 있는 여유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고통을 끊고,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배울 수 있다면 여러분은 어떤 대가를 치를 수 있으신가요? 오직 불교의 선 수행에서만 이런 걸 배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의 출가자의 삶은 돈을 벌기 위해 매일 투쟁했던 예전의 삶보다 훨씬 더 흥미진진합니다.

분당 보라선원 모습. 사진 현안 스님.

물론 다양한 나이, 문화, 종교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수행하면, 오해, 충돌, 다툼, 시비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보산사에서 최선을 다해서 사람들을 돕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오해받거나 제3자를 통해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러면 저도 모르게 금세 기분이 상하거나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마음속에서 미묘하게 누군가를 탓하기도 했죠. 게다가 영화 스님이 한국에 보내주셨는데, 스승님의 기대에 못 미치는 것 같아서 우울한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돌이켜보니 이런 갈등과 문제야말로 가장 큰 스승입니다. 다른 사람과의 갈등은 맘속 깊숙이 숨겨진 번뇌의 뿌리를 다 끄집어내 줬습니다. 저는 저 자신의 교만, 무지, 질투, 분노, 인색 등을 매일 직면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대승의 법은 참으로 미묘합니다. 혼자서 있으면 평화로울 만한 날에도 여기에선 늘 많은 문제에 시달려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향상과 진전을 멈출 수 없는 이유입니다. 출가 전엔 저만의 공간과 시간이 있어서 이런 모습을 감출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가장 감추고 싶은 추한 모습도 모두 다 직면해야만 합니다. 오늘은 마음속으로 ‘내가 더 옳고 상대방이 잘못한 것이니, 나의 부정적인 생각이 정당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내일 또다시 같은 문제를 비춰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엔 숨기는 데 지쳐서 반드시 직면해야 합니다. 그렇게 조금씩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나의 문제를 직면하고, 더 나은 사람으로 발전해나가는 것이 바로 수행입니다. 어떤 날엔 실패하고, 내일 또 도전해야 합니다. 스승님은 “대승엔 옳고 그름이 중요하지 않고, 더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또 노력합니다.

 

현안(賢安, XianAn) 스님
영화 선사(永化 禪師, Master YongHua)를 만나 참선을 접한 후 정진해왔으며, 2015년부터는 ‘공원에서의 참선(Chan Meditation in the Park)’이라는 모임을 캘리포니아 남부지역 중심으로 이끌었다. 그와 동시에 전 세계를 다니며 많은 이에게 참선법을 소개해왔다.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사업을 정리하고 미국 위산사(潙山寺, Wei Mountain Temple)에서 영화 선사를 은사로 출가했다. 2020년 한국으로 돌아와 현재 분당 보라선원(寶螺禪院, Jeweled Conch Seon Center)의 개원을 도우며, 정진 중이다. 불광미디어 홈페이지 연재를 비롯해 미주현대불교, 브런치 등에서 활발히 집필하며, 청주 BBS불교방송 라디오 ‘4시의 불교산책’에서도 활동 중이다. 국내 저서로 『보물산에 갔다 빈손으로 오다』(어의운하, 2021)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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