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붓다] 예술에 비친 중중무진(重重無盡)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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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붓다] 예술에 비친 중중무진(重重無盡)의 세계
  • 마인드디자인(김해다)
  • 승인 2021.12.27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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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2월 27일까지 ‘생태’를 주제로 한 기획전 《대지의 시간》이 열린다. 이번 전시는 인간 중심적 사고와 관점에서 벗어나 ‘공생’, ‘연결’, ‘균형의 회복’을 성찰하기 위해 마련됐다. 사진, 조각, 설치, 영상, 건축, 디자인 등 분야를 넘나드는 작품 35점을 전시한다. 김주리, 나현, 백정기, 서동주, 장민승, 정규동, 정소영의 신작과 더불어 올라퍼 엘리아슨, 장 뤽 밀렌, 주세페 페노네,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히로시 스기모토 등 국내외 작가 16명의 출품작은 동물과 인간의 관계, 자연과의 교감, 상호존중을 바탕으로 한 균형의 회복 등의 키워드를 탐구한다. 

 

박제된 자연에서 불인의 자연으로

전시된 작품들은 그야말로 다양한 측면에서의 ‘생태적 사고’를 제안한다. 히로시 스기모토(1948~)가 80년대와 90년대에 작업한 ‘디오라마’ 시리즈는 자연을 바라보는 인간의 관점을 잘 보여준다. 어떻게 이렇게 가까이서 이국적 동물들의 오묘한 모습을 완벽한 각도로 찍어낼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이 동물 사진들은 사실 자연사 박물관의 디오라마(diolama)를 촬영한 결과물들이다. 

디오라마란 특정 역사적 장면이나 쉽게 볼 수 없는 자연환경을 재연해 박물관 관람자들의 이해를 높이는 교육적 기능을 위해 탄생한 전시 형식이다. 본래 삶의 맥락에서 떨어져 나와 인간에게 가장 잘 보이도록 박제된 자연을 담은 히로시 스기모토의 사진은 자연을 분석과 이해가 가능한, 인간의 필요에 따라 활용할 수 있는 대상으로 파악하는 인간 중심적 세계관을 그대로 드러낸다. 

한편, 전시장 한가운데에는 촉촉하게 물기를 머금은 거대한 흙덩어리가 놓여 있다. 김주리 작가의 <모습 某濕 Wet Matter_005>이다. 생명을 환기하는 물과 오랜 시간을 거쳐 고운 흙 입자가 되어 습지를 구성하는 흙은 무슨 형상인지 단언할 수 없지만 ‘어떤 젖은 상태’ 자체를 보여줌으로써 인간이 살기 이전의 모든 생명이 시작된 긴 시간의 흐름 속으로 관람객을 초대한다. 

그런가 하면 작가 백정기(1981~)의 <이즈오브 시리즈 ISOF Series>는 인간이 제작하고 소비하는 ‘풍경사진’으로 자연을 향한 인간의 시선을 탐구한다. 자연물에서 추출한 색소로 프린트된 작가의 풍경사진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색변을 일으킨다. 멋진 풍경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한 일반적인 풍경사진에 담긴 자연이 인간의 시선으로 해석되고 학습된 이미지로서의 자연이라면, 백정기 작가의 풍경사진에서 자연은 인간의 손아귀를 벗어난 천지불인(天地不仁)의 자연으로 재탄생한다. 

 

미술관의 생태실험

미술관에서 폐기될 예정이었던 진열장을 이용해 신작을 구성한 정소영(1979~) 작가의 작품 역시 흥미롭다. 인간은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자연을 측량하고 연구했지만 이 과정에서 자연은 타자화돼왔다. 미술관의 진열장은 그러한 사고의 체계화, 대상화, 박제화의 산물이며, 분류체계에 대한 강박적 서사의 증거물이다. 작가는 진열장 내부에 소금의 주성분이자 제설제로 쓰이는 염화나트륨을 채워 인간의 시선으로 분절된 바다의 풍경을 형상화하는 동시에 미술관과 전시회라는 형식 자체에 대한 생태적 물음을 던진다.

전시의 기획은 전시가 끝난 후 산업폐기물로 비용을 지불하며 처리해야 하는 가벽 조성을 최소화한 전시디자인으로 응답한다. 작품들은 맥락이 삭제된 채 단독 공간에서 보여지기 보다는 커다란 공간에 서로 연결되고 소통하며 노닐고 있다. 가벽 대신, 전시장 중간중간에는 말캉한 공들이 배치되어 있다. 물질의 입자나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의 형태를 떠올리게 하는 이 공들은 관람자의 시야를 막기도 하고 전시장 전체를 비추는 어안(魚眼)형 거울이 되기도 하며 공간과 작품을 분석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이성(魚眼)의 흐름에 영향을 미친다. 전시가 끝나면 공기를 빼내어 보관, 재사용이 가능하도록 제작된 이 공들은 생태라는 주제를 전시회라는 구조 안에서 실험하기 위한 시도이며, 작품-관람자-공간의 상호의존성과 연결성을 강조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인드라의 그물이 장엄한 세계를 상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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