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쿡의 선禪] 인욕 바라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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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쿡의 선禪] 인욕 바라밀
  • 현안 스님
  • 승인 2021.11.17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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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쿡 스님의 선禪 이야기(18)]
Patience Paramita
사진 셔터스톡.

대승에서는 육바라밀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바라밀(波羅蜜)이란 산스크리트어로 파라미타(Paramita)라고 부르며, 이는 “피안에 도달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하는 일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완료하다” 또는 “완전히 끝내다”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부처가 되겠다고 결심했다면, 그땐 성불이 바라밀입니다. 특정 회사에 취업하겠다고 결심했다면, 그 회사에 취직하는 것도 바라밀입니다. 이 파라미타 또는 바라밀은 중국어로 ‘보루미’라고 발음합니다. ‘보루’는 파인애플이란 뜻이고, ‘미’는 꿀입니다. 바라밀의 과실은 파인애플보다 달콤하기 때문입니다.

보살의 육바라밀 중 세 번째가 인욕(忍辱, Patience)입니다. 인욕이란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에 따라 그 대상과 정도가 다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결가부좌 자세로 3시간을 앉아도 좀 아프긴 한데 할만하다고 말합니다. 이에 반해서 어떤 사람은 결가부좌 자세로 2분 또는 5분만 앉아도 아픈 게 심해서 지옥 같다고 말합니다. 만약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한다면 그건 인욕이 아닙니다. 결가부좌로 2분만 앉아도 지옥 같다고 하는 사람이 조금씩 시간을 늘려서, 4분, 5분, 10분 이렇게 한다면 그것이 바로 인욕입니다. 참을 수 없는 것을 참아야 인욕입니다. 참을만한 일을 한다면 그건 인욕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선의 훈련은 더는 참을 수 없는 지점까지 도달했을 때, 그것보다 더 많이 해내는 과정입니다. 쉬운 일을 해내는 것은 그게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대단해 보이든 인욕이 아닙니다. ‘이건 참을 수 없어. 말도 안 돼!’, ‘이런 것을 왜 해야 하는 거지? 더는 못 참아!’라고 하면서 참아내는 것을 인욕이라고 부릅니다.

인욕바라밀은 수행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불교에서 인내를 키우는 수행은 필수입니다. 우리가 선을 하든, 염불하든, 참회하든 진전하고 싶다면 인내심이 있어야 합니다. 반대로 수행해서 진전이 생기면, 인내심도 자연스레 늘어납니다.

사진 셔터스톡.

 

생인, 법인, 무생법인

인내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크게 세 가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먼저, 생인(生忍, Patience of production)이 있습니다. 여기서 ‘생(生)’이란 생각이 일어남을 뜻합니다. 가만히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여러 생각이 일어납니다. 생각이 하나 일어나면, 그다음 또 다른 생각이 일어납니다. 생각이 끊임없이 생깁니다. 그래서 생인, 즉 “생기는 것을 참는다”라고 부릅니다. 앉아 있을 때 우리에게 많은 생각이 일어나지만, 인내심을 갖고 참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다리가 아프다’라는 한 생각이 일어나면, 그다음 생각은 ‘다리를 풀자’, 세 번째 생각은 ‘다리를 안 풀면 다칠지 몰라’, 또 ‘이게 뭐 하는 짓이지’라고 생각합니다. 이후에도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납니다, ‘이건 말도 안 돼’, ‘그냥 그만두자.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말도 안 돼’ 이렇게 계속 생각이 일어납니다.

수년 전 미국 노산사에서 선칠 수행에 참여했는데, 머릿속에 잡념이 너무 많이 생겨서 명상할 수 없었습니다. 수많은 생각이 절 괴롭혔습니다. 그때 전 ‘이건 그냥 잡생각일 뿐이야. 닥쳐! 난 내가 원하는 명상을 해내고 말겠어’라고 마음속으로 외쳤습니다. 그러면 일시적으로 소리가 줄었지만 이내 생각이 다시 끊임없이 일어났습니다. 계속 그런 생각들과 싸워야 했습니다. 명상하려면 이런 것을 먼저 견뎌내야 합니다. 더 많이 앉고, 더 많이 참을수록 인내심도 키워집니다.

사실 이건 매우 중요한 과정입니다. 그러나 많은 명상 지도자들이 이런 건 설명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명상하려고 앉으면, 자연스레 생각이 하나 일어납니다. 그때 아무것도 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생인, 즉 일어나는 것을 인내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생각이 일어나도 아무것도 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생기는 것에 대해 더 많은 인내가 찾아옵니다. 그렇게 계속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이기에, 더 많이 인내해야 합니다. 이것이 첫 단계입니다.

2020년 미국 위산사 법당에서 아이가 결가부좌를 하고 있다. 

그다음은 법인(法忍 Patience of dharmas)입니다. 명상하려고 자리를 잡고 앉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방귀를 “뿡”하고 뀝니다. 참선하는 곳에선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법인이라고 합니다. 보통 우린 그런 일이 생기면 ‘아이고, 웬일이래!’ 또는 ‘누구지?’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는 인내가 없습니다. 무슨 일이 생기든 그것에 반응을 만들게 하는 원인을 법(法)이라고 부릅니다. 더 쉬운 법인의 예시는 모욕을 참는 것입니다.

미국 위산사에서 선칠 수행을 시작하면, 전 세계의 많은 이들이 모여듭니다. 흔히 동양인들은 장엄하고 조용한 법당을 기대합니다. 법당에서 명상하려고 앉으면 곧 여러 가지 소음을 듣기 시작합니다. 갑작스럽게 뛰어 들어오는 아이들, 코 골면서 잠자는 사람, 명상할 시간 중간에 갑자기 문을 열어서 큰 소리를 내는 사람, 법당에 앉아서 전화 받는 할머니, 비닐봉지를 들고 들어와서 부스럭거리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우리의 인내를 시험합니다. 보통 우리의 첫 반응은 ‘뭐야? 참선하는 데 아닌가? 법당이 뭐 이래?’, ‘이 사람은 다른 이들에 대한 배려심이 없나?’, ‘여기 스님들은 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 일부러 시간 내서 여기까지 왔는데, 방문객에 대한 예의도 없나?’ 등 많은 생각이 일어납니다. 그건 인내가 없는 것입니다. 이럴 때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그것을 인욕이라고 부릅니다.

2020년 미국 위산사 저녁예불 모습. 

전통적 불교에 익숙한 우리에게 이런 법당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선칠 수행 중 영화 스님이 법당에 안 계시면 사람들은 더욱 시끄럽게 합니다. 그러면 마음이 번뇌롭습니다. ‘이 정도 수준이면 스님께 말씀을 드려야 하지 않을까?’하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일부러 내버려 두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법인(法忍)을 훈련하는 과정입니다. 글로 읽으면 별로 어렵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이건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 모두 각자 참기 힘든 것이 달리 있습니다. 나 자신에게 참기 어려운 것을 참아야 인욕입니다.

마지막으로 무생법인(無生法忍, Patience of non-production of dharmas)이 있습니다. 무생법인이란 생(生)과 법(法) 둘 다 인내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린 졸업해서 무생법인으로 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생인, 즉 일어나는 생각에 대한 인내심이 있어야 하고, 그다음 법인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무생법인으로 졸업합니다.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게 졸업입니다. 생(生)은 생각이 일어나는 것이고, 무생(無生)은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무생법(無生法)이란 누군가가 나에게 풀 수 없는 문제를 던지거나, 모욕, 모함, 칭찬, 비방 등을 해도 아무런 생각도 법도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2021년 화엄사에서 참선하는 현안 스님. 

 

*참고법문: 영화 선사의 법문(2014년 12월 30일) ‘인욕과 정진 바라밀’

https://youtu.be/kWqGuSAyuto

 

사진. 현안 스님 

 

현안(賢安, XianAn) 스님
영화 선사(永化 禪師, Master YongHua)를 만나 참선을 접한 후 정진해왔으며, 2015년부터는 ‘공원에서의 참선(Chan Meditation in the Park)’이라는 모임을 캘리포니아 남부지역 중심으로 이끌었다. 그와 동시에 전 세계를 다니며 많은 이에게 참선법을 소개해왔다.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사업을 정리하고 미국 위산사(潙山寺, Wei Mountain Temple)에서 영화 선사를 은사로 출가했다. 2020년 한국으로 돌아와 현재 분당 보라선원(寶螺禪院, Jeweled Conch Seon Center)의 개원을 도우며, 정진 중이다. 불광미디어 홈페이지 연재를 비롯해 미주현대불교, 브런치 등에서 활발히 집필하며, 청주 BBS불교방송 라디오 ‘4시의 불교산책’에서도 활동 중이다. 국내 저서로 『보물산에 갔다 빈손으로 오다』(2021, 어의운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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