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물에는 흔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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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물에는 흔적이 없다
  • 마인드디자인(김해다)
  • 승인 2021.10.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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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붓다] '마인드붐: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전시 소개
서용선 <붓다 B3> 2015
317×51×40cm, 삼나무.

<마인드붐: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전이 오는 11월 20일까지 황학동 로얄빌딩 지하 1층에서 개최된다. ‘마인드붐’은 동시대 미술을 세계가 주목하는 명상 산업의 동향과 적극적으로 연계한 예술 행사다. 그 첫 번째 순서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는 『금강경』 「야부송」의 “대나무 그림자가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고,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물에는 흔적이 없다[竹影掃階塵不動, 月穿潭底水無痕]”는 경구에서 영감을 받아 기획됐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세계에서 인식의 경계란, 느낄 수 있되 그 흔적은 찾을 수 없는 달빛과 같다는 생각에서 전시는 출발한다. 그리고 머물러 있지 않은 인식 그 자체를 향한 노력을 5명 작가의 작품을 통해 공유한다. 결국, 불분명한 곳에 머무르며 끊임없이 세계를 다시 보려는 예술가들의 은유와 추상이야말로 인간을 변화시킬 가능성임을 알게 한다. 전시는 오랫동안 ‘마음’을 주제로 작업해 온 설치미술가 김신일이 예술감독을 맡아 문서진, 박관택, 서용선, 유승호, 조현선 작가의 작품을 선보인다.

사이에서 탄생하는 새로운 인식의 가능성

초청된 5명의 작가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인식의 경계를 흐린다. 특유의 묵직한 필선과 강렬한 색감으로 한국 화단을 이끌어온 서용선 작가는 이번 전시에 대형 자화상과 불상 조각, 그리고 역사화를 선보인다. 액자처럼 걸려 있는 창문 밖을 향해 앉은 <시드니 자화상>(2020~2021)과 난간처럼 보이는 곳의 자신 혹은 타자의 분열된 신체 속에 서 있는 작가의 모습이 담긴 <자화상NJ>(2021)에서 작가의 시선은 뜨겁게 불타오른다. 평소 자화상 그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할 정도로 자화상을 즐겨 그리는 작가는 자신의 형상을 통해 외부 세계, 더 나아가 역사와 사회 현상에 대한 인식의 경계까지 ‘다시 쓰기’를 거듭하고 있다. 한편 유승호 작가는 언어가 가진 본래의 의미들을 변형·해체하는 작업을 해왔다. 그는 하나의 커다란 이미지로 보이지만 사실은 작은 글자들로 구성된, 이제는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일련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그의 화폭에서 글자들은 형상의 일부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가 될 뿐 본래 의미는 놓아버린다. ‘뇌출혈’과 ‘natural’, ‘아이고’와 ‘I go’를 뒤섞는 유머는 글자와 의미, 내용과 이미지 사이에 축축한 균열을 일으킨다. 그 틈새에서 고정관념은 힘을 잃고 새로운 인식의 가능성이 탄생한다.

끊임없이 다시 보려는 강단과 소신

조현선 작가는 자신의 전작 <Camouflaged Orange>(2015)의 화면을 계속해서 재구성·재해석해나가는 <반달색인> 시리즈를 선보인다. 전작을 하나의 사전으로 상정하고 ‘다시 보기’를 반복하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완결을 거부하는 일이다. 작가는 “사전처럼 한 문장 안에 명료하게 정의 내리는 것”의 불가능성을 사유하기 위해, 캔버스를 덮고 또 덮기보다는 새로운 화면을 생산하고 끊임없이 증식시킴으로써 원본의 위계마저 흔든다. 원본을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독자적으로 자생하는 <반달색인>들은 미완의 상태이자 그 자체로 완전하게 관람자를 맞이하며, 명확한 정의 내림과 경계 짓기란 환상에 불과함을 일깨운다. 한편 선풍기 바람에 나부끼는 박관택 작가의 ‘연약한’ 드로잉들은 작품을 ‘보는 방법’에 질문을 던진다. 여러 레이어로 겹쳐지거나 잘려 나간 종이의 표면들은 선풍기 바람에 의해 공간 속을 펄럭이며 관람자의 망막을 어지럽힌다. 드로잉들은 자신의 모습을 최대한 명확하게 보여주기 위해, 얌전히 멈춰 있기보다는 2차원의 가상세계에서 3차원의 현실 세계로 어떻게든 한 발짝 나아가 보려 애쓰는 듯하다. 선풍기 펜이 일으키는 요란한 소음과 공기의 흐름을 피부로 느끼며 연약한 드로잉 앞에 섰을 때, 고정되어 멈춰 있지 않으려는 연약한 노력이 내뿜는 그 강단과 소신에 사로잡히게 된다.

온몸으로 느끼는 지금 이 순간

문서진 작가는 얼어붙은 호수 위에 매일 눈을 쌓아 올리는 퍼포먼스 <살아있는 섬>(2020), 자신의 몸을 컴퍼스 삼아 커다란 원을 그리는 퍼포먼스 <내가 그린 가장 큰 원>(2016) 등 신체를 통해 세계와 교감하는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을 선보인다. ‘삽으로 눈을 쌓는다’, ‘몸으로 원을 그린다’와 같이 최소한의 계획만을 가지고 시작하는 작가의 퍼포먼스는 불확실성 속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감각들로 채워진다. 언 호수 위를 오가며 작가가 느낀 “지면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잠재된 죽음에 대한 두려움, 자연에 대한 경외, 연약하고 유한한 존재로서의 인간과 누군가의 응원으로부터 받는 위안에 대한 여러 단상”은 전시장에 놓인 작품들을 통해 지금 이 순간에 대한 관람자의 직접적인 감각을 일깨운다.

명상과 예술, 예술과 명상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가 소개하는 작품들은 한눈에 ‘명상’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지는 않는다. 서양과 구별되는 ‘동양적’ 정서의 상징으로서 명상을 브랜딩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보다는 지금, 바로, 여기에 깨어 바로 보기를 요건으로 하는 예술 행위 그 자체를 주목하고, 그것과 명상의 유사성을 느슨하게 연결하며 명상에 대한 확장된 이해를 제공하는 데 중점을 둔다. 본 전시는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해 사전예약을 통해 운영되며, 예약은 마인드그라운드 웹사이트를 통해 진행된다. 

 

<마인드붐: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  장소: 황학동 로얄빌딩 B1(서울 중구 난계로11길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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