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쿡의 선禪] 불칠(佛七)과 선칠(禪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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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쿡의 선禪] 불칠(佛七)과 선칠(禪七)
  • 현안 스님
  • 승인 2021.10.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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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쿡 스님의 선禪 이야기(15)]
2019년 겨울 미국 위산사의 불칠 모습. 

영화 스님의 미국과 한국 도량에서 11월 둘째 주부터 일제히 불칠과 선칠 수행을 시작합니다. 불칠(佛七)은 하루 종일 염불을 집중적으로 하는 정토법문(淨土法門)이고, 선칠(禪七)은 새벽부터 밤까지 참선을 집중적으로 하는 선법문(禪法門)입니다. 한국에서는 이를 보통 안거(安居)라고 부르는데, 전통적인 동안거와 마찬가지로 영화 선사의 도량에서도 음력 10월 16일부터 다음 해 1월 15일까지 선칠 수행을 합니다. 사실 동안거는 여러 나라에서 스님들이 한곳에서 도업을 수행하는 아주 중요한 행사입니다. 전통적으로 스님들은 이 기간에 외출하지 않고, 좌선 수련에 온 힘과 노력을 쏟습니다.

예전에 영화 스님의 첫 미국 도량인 노산사에서는 선칠 수행을 짧게 했습니다. 이런 행사를 하려면 많은 사람의 희생과 지원이 있어야 하는데, 당시엔 도량에 오는 사람도 많지 않았고 규모도 작았기 때문에 행사를 100일이나 할 수 없었습니다. 미국 불교는 역사가 짧기에 이런 행사를 주최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영화 스님이 제자들과 함께 100일간의 선칠 수행을 할 수 있게 된 겁니다.

1975년 미국 오리건주 ‘붓다 루트 팜(Buddha Root Farm)’에서 위앙종 9대 조사인 선화 상인(宣化 上人, 1918~1995)이 미국인 제자들과 불칠 수행하는 모습. 출처 선화 상인 만불성 홈페이지.

이런 용어가 한국에서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불칠이란 염불 수행법으로 능엄신주와 대비주(신묘장구대다라니), 십소주, 약사불 염불 등을 아침 예불로 시작해서 아미타경 독송과 아미타불 염불, 저녁 예불, 회향의 순서로 7일간 하루 종일 염불하는 정토의 법문입니다. 이 염불 집중 수행법은 정토종의 조사 스님이 고안해서 전해왔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흔히 접하는 염불 방법과는 조금 다릅니다.

불칠 수행 염불은 서서 시작해서 법당을 돌기도 하고, 염불의 속도도 변합니다. 소리를 내지 않고 앉아서 염불하는 묵염도 있습니다. 특히 불칠 수행은 선칠과 달리 초심자에게도 확연한 진전과 변화를 얻을 수 있는 특별한 법의 문(法門, Dharma door)입니다. 염불하는 대중 속 누군가가 나보다 삼매의 힘이 더 크면, 혼자선 들어갈 수 없는 높은 단계의 삼매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염불삼매에 들어갈 수 있는 확률도 더 커집니다. 이처럼 불칠은 더 쉽고 수월하게 장애를 줄이고 문제를 풀 수 있는 대승의 수행법입니다.

1975년 미국 오리건주 ‘붓다 루트 팜’ 불칠 모습. 출처 선화 상인 만불성 홈페이지.
1975년 미국 오리건주 ‘붓다 루트 팜’에서 선화 상인과 미국인 제자들의 단체 기념사진. 출처 선화 상인 만불성 홈페이지.<br>
1975년 미국 오리건주 ‘붓다 루트 팜’에서 선화 상인과 미국인 제자들의 단체 기념사진. 출처 선화 상인 만불성 홈페이지.

선칠이란 우리나라 안거와 매우 비슷합니다. 새벽 3시부터 밤 12시까지 1시간 좌선, 20분 걷기를 반복하는 집중적인 참선 수행입니다. 불칠과 달리 선칠에 참여하려면 사전에 준비를 좀 해두는 게 좋습니다. 평소 꾸준한 연습과 노력이 있어야 심적, 육체적 부담이 덜하고, 큰 두려움 없이 참여하기 수월합니다.

영화 스님이 주관하는 선칠은 전통적인 안거와 조금 다른 점이 있습니다. 첫째로 선칠 수행기간 동안 재가자는 자유롭게 도량을 드나들 수 있습니다. 일반인들이 외출 없이 도량 내에서만 100일간 정진한다는 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영화 스님은 일반인이 자유롭게 도량을 드나들면서 선칠에 참여할 수 있는 만큼 배려해 줍니다. 예를 들어 선칠 중 누구나 아무 때나 들어와서 앉을 수도 있고, 법문 시간에만 와서 참여할 수도 있습니다. 원하면 수행하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만 해도 괜찮습니다. 저도 출가 전 사업으로 항상 바쁜 일정에 시달렸는데, 영화 스님의 이런 배려가 고마웠습니다. 심지어 좌선 시간 중간에 도량에 도착한다면, 자율적으로 조용히 법당으로 들어와 참선을 시작해도 괜찮습니다. 여러분이 수행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을 낭비하지 않길 바랍니다.

2019년 미국 위산사 선칠 중 영화 선사의 법문 모습. 

두 번째로 영화 스님은 불칠과 선칠 수행기간 동안 매일 법문을 합니다. 법문 시간 중엔 누구나 질문할 수 있습니다. 어떤 질문이라도 괜찮습니다. 영화 스님은 영어로 법문하는데, 스님들과 봉사자들이 한국어, 베트남어, 중국어로 동시통역을 해줍니다. 주말엔 3일간 하루 2시간씩 법문 대신 대승경 강설이 있습니다. 영화 스님의 도량에 오면, 화상회의 시스템을 통해 실시간으로 법문을 들을 수 있고, 직접 질문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합니다. 집중적으로 수행하면 어떤 수행법이든 상관없이 늘 문제에 부딪히기 마련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그게 더 큰 문제입니다. 정체의 증거이기 때문이죠.

여러분이 이해할 수 없는 경계에 부닥치거나, 예상하지 못한 경험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때 경험이 풍부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여러분에게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 있다면, 수행은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진전할 것입니다. 그러니 언제든 물어볼 수 있다는 건 진지한 수행자에게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생각해보세요. 큰 칼을 제련하기 위해 뜨겁게 달궈놓았습니다. 어떤 도구로 두들겨야 하는지, 어떻게 제련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울 때, 당장 물어볼 선생님이 없습니다. 그러면 달궈놓은 칼이 다 식어버리기 때문에,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서 처음부터 다시 달궈야 합니다.

2019 국제선센터 영화 선사의 불칠과 선칠.

불칠과 선칠은 일 년 동안 열심히 공부하고 갈고 닦았던 수행의 결실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예부터 선칠 수행하는 선당이나 선방을 선불당(選佛堂), 즉 부처가 뽑히는 곳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마음을 갈고 닦으려 해도 일상에서는 항상 방해와 장애가 생깁니다. 그래서 일상에서 벗어나 새벽부터 밤까지 완전히 수행에 몰입해볼 수 있는 이런 특별한 장소와 기간이 필요합니다.

개인적으로 불칠과 선칠 중 가장 기다려지는 부분이 영화 스님의 법문 시간입니다. 본래 불칠과 선칠 중 설법 시간은 저녁 늦게 있습니다. 염불과 참선으로 머리의 잡념을 줄이고, 삼매에 들어가기 가장 좋은 상태가 됐을 때 법문을 듣는 것입니다. 정법을 듣는 것은 우리의 마음속에 지혜의 씨앗을 심는 것과 같습니다. 바른 법을 들을 수 있다면 그동안 갈고 닦아 온 노력의 결과도 더 빨리 수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올겨울 여러 한국 수행자들이 미국 위산사에 갈 계획이 있습니다. 참선이든 염불이든 무턱대고 열심히 한다고 결실을 얻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도 좋은 기회를 찾아서 올해에도 수행의 좋은 결실을 볼 수 있길 빕니다. 지혜롭고 노련한 스승의 도움으로 수고와 노력을 헛되이 낭비하지 않고, 윤회의 바퀴를 벗어날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사진. 현안 스님

 

현안(賢安, XianAn) 스님
영화 선사(永化 禪師, Master YongHua)를 만나 참선을 접한 후 정진해왔으며, 2015년부터는 ‘공원에서의 참선(Chan Meditation in the Park)’이라는 모임을 캘리포니아 남부지역 중심으로 이끌었다. 그와 동시에 전 세계를 다니며 많은 이에게 참선법을 소개해왔다.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사업을 정리하고 미국 위산사(潙山寺, Wei Mountain Temple)에서 영화 선사를 은사로 출가했다. 2020년 한국으로 돌아와 현재 분당 보라선원(寶螺禪院, Jeweled Conch Seon Center)의 개원을 도우며, 정진 중이다. 불광미디어 홈페이지 연재를 비롯해 미주현대불교, 브런치 등에서 활발히 집필하며, 청주 BBS불교방송 라디오 ‘4시의 불교산책’에서도 활동 중이다. 국내 저서로 『보물산에 갔다 빈손으로 오다』(2021, 어의운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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