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안의 문화이야기] 문경 봉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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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의 문화이야기] 문경 봉암사
  • 노승대
  • 승인 2021.10.28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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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6일 문경 봉암사에 다녀왔다.

조계종 특별수도원으로 일 년에 부처님 오신 날 하루만 개방하는 사찰이라 좀처럼 가기 어려운 곳인데 선방의 큰스승이신 고우 스님 49재가 이 절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2006년 경전연구회 강의차 봉화에서 동서울로 오시면 필자가 모시고 다닌 인연도 있었다.

봉암사는 신라 말기 지증 국사가 창건해 9산선문의 하나인 희양산문을 이룬 곳이다.

대문장가인 최치원은 절집에 4개의 비문을 남기고 있다.

이를 사산비(四山碑)라 하는데 그중 하나가 봉암사에 있는 지증대사탑비다.

봉암사는 오랜 기간 인멸되고 중창되기를 반복했지만, 국보 1점과 보물 6점을 간직하고 있다.

또한 1947년 성철, 청담, 자운 스님 등이 “부처님 뜻대로 살자”는 결의 아래 봉암사결사를 시작함으로써 지금 조계종단의 정신적 바탕을 일구어낸 역사의 현장이다.

 

봉암사 가는 길목의 서낭당. 느티나무 고목과 그 그늘아래 앙증맞게 자리한 당집이 오랜 연륜을 자랑한다. 선랑당(仙娘堂) 현판이 걸려 있다.

 

들머리에서 바라본 희양산. 하늘로 솟구친 장중한 바위 봉우리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백두대간 마루금이 지나가기에 등산 사고도 일어나는 위험한 산이다.

 

봉암사 초입 일주문은 건립 시기가 19세기 초까지도 올라가는 문화재다. 두 기둥 양쪽으로 버팀장치를 한 특이한 일주문이다. 절 이름은 나라에서 내렸다.

 

중앙 법당 계단 아래 너른 마당에는 위에 넓은 판석을 얹은 노주석(爐柱石)이 2기 있다. 야간에 큰 행사할 때 관솔불을 피우는 조명시설이다.

 

봉암사 삼층석탑은 보물 제168호로 지증 대사가 세웠다고 전한다. 신라양식인데 특이하게 단층 기단이다. 상륜부가 모두 남아있는 귀중한 탑이다.

 

금색전은 잘 안 쓰는 당호다. 부처님 몸은 금색(金色)이기 때문에 가끔 부처님을 지칭하는 말로도 쓴다. 안에는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있다.

 

극락전은 신라 경순왕이 원당으로 사용했다는 건물이다. 독특한 구성으로 지어졌고 용마루에 탑 상륜부 같은 석조물이 있다. 보물 제1574호다.

 

지증 대사(824~882)가 입적하자 왕명으로 최치원이 비문을 지었고 924년에 세웠다. 당시 불교계의 상황을 상세히 기술했다. 국보 제315호.

 

지증대사탑은 8각원당형을 충실히 따른 승탑으로 균형이 잘 맞으며 조각 솜씨가 뛰어나다. 구름 문양은 지증 대사가 이미 하늘세계에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연꽃 좌대 위에 한쪽 무릎을 세운 천녀가 무엇을 공양하고 있는 조각상이다. 바람에 나부끼는 천 자락의 섬세한 표현에서 신라인들의 솜씨를 읽는다.

 

연잎 위에 앉힌 향로의 모습이다. 선종에서는 깨친 선사를 부처님과 동격으로 본다. 때문에 향로를 새겨 향을 공양한다는 의미를 둔 것이다.

 

8면에 새긴 사자의 모습도 다 다르다. 부처님의 설법을 사자후라 하듯이 존경의 의미를 담고 있다. 당연히 지증대사탑은 보물 제137호로 지정됐다.

 

극락에서 음악을 담당하는 가릉빈가가 피리를 불고 있다. 새의 몸에 사람의 팔과 머리를 갖고 있다. 8면의 가릉빈가는 다 다른 악기를 지녔다.

 

봉암사에서 마애불을 향해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맑은 계류가 심신을 깨끗이 씻어준다. 출입이 금지된 곳이라 가는 길이 그대로 힐링 코스다.

 

인공을 가하지 않은 오솔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기운을 얻는다. 숲길이 우리에게 베푸는 선물이다. 몇십 리라도 거뜬하게 걸어갈 것 같다.

 

조선시대 마애불은 희귀한 편인데 봉암사 마애여래좌상은 환적 대사가 1663년에 조성한 기록을 갖고 있다. 높이 5.39m이며 단정한 상호를 갖췄다.

 

마애불 뒤쪽 풍경. 이 계곡은 백운계곡이라 부르며 백운대라는 각자도 있다. 유람 온 이들의 이름도 있고 불교 신도들의 계모임 명단도 있다. 아름답다.

 

계곡 중앙에 놓인 너른 평석 위에는 재래식으로 단정하게 쌓은 석탑도 있다. 돌을 겹쳐 쌓았다 해서 누석탑(累石塔)이라고도 부른다.

 

불공계(佛供契) 명단이다. 신도들이 절에 시주하며 불전에 향화를 받드는 일이 끊어지지 않도록 계를 만드는 풍속이 있었다. 1913년에 새긴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는 속리산 뒷길을 넘어 쌍곡계곡을 지나며 소금강을 잠깐 들렀다. 아직 가을이 깊지 않았지만 단풍이 들면 더욱 운치를 더해 주겠지.

 

사진. 노승대

 

(필자의 카카오스토리에도 실린 글입니다.)

 

노승대
‘우리 문화’에 대한 열정으로 조자용 에밀레박물관장에게 사사하며, 18년간 공부했다. 인사동 문화학교장(2000~2007)을 지냈고, 졸업생 모임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인사모)’, 문화답사모임 ‘바라밀 문화기행(1993년 설립)’과 전국 문화답사를 다닌다. 『바위로 배우는 우리 문화』, 『사찰에는 도깨비도 살고 삼신할미도 산다』(2020년 올해의 불서 대상)를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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