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안의 문화이야기] 순천 송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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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의 문화이야기] 순천 송광사
  • 노승대
  • 승인 2021.10.1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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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보사찰 순천 송광사와 선암사를 1박 2일 일정으로 다녀왔다.

두 사찰 모두 오랜 역사를 쌓아온 자취가 배어 있어서 차근차근 살펴볼 곳도 많지만 들고 나는 숲길만으로도 자연 힐링이 되는 곳이다.

특히 포장이 안 된 선암사의 숲길은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명소가 돼 있었다.

송광사는 국보 4점과 보물 13점을 보유한 중요사찰이지만 이외에도 사찰경내 곳곳에 살펴볼 것들이 숨어 있다.

그런 유적을 찾아보는 것도 사찰을 찾는 하나의 즐거움이다.

 

초입 암벽의 윤웅렬(尹雄烈, 1840~1911) 각자. 윤웅렬은 1896년 관찰사로 왔을 때 왕실 원당인 축성전 보수를 주도하며 700냥을 시주했다.

 

윤웅렬의 동생 윤영렬의 손자가 바로 윤보선 대통령이다. 1899년 남여혁파 각자는 스님들이 송광사로 유람온 관리의 가마 매는 것을 금한 칙령이다.

 

1866년 고종, 민비, 세자의 수복을 빌기 위한 축성전을 사찰경내에 짓게 되자 다음 해인 1867년에 하마비를 세웠다. 가마나 말에서 내리라는 뜻.

 

이범진(李範晉, 1852~1911)은 순천부사로 재직할 때 축성전 건립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한일합방 후 자결, 그의 아들이 헤이그 특사 이위종이다.

 

우화루 홍교 아래의 공복(蚣蝮)은 용의 아홉 아들 중 하나로 물을 따라 들어오는 악귀를 막아준다. 철사에 매달린 동전은 다리공사 후 남은 돈이다.

 

다리공사 시주금으로 받았으니 오직 다리 보수비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쓰면 호용죄(互用罪, 어떤 목적을 위해 보시받은 돈을 다른 데 사용한 죄)가 된다. 우화교 안쪽 해강 김규진과 죽농 안순환의 합작 현판.

 

송광사 대웅전 구역은 한국전쟁 때 국군의 방화로 타버린 후 작은 법당으로 재건했다가 1988년 108평으로 중창했다. 목수 신영훈과 최완수 선생이 참여하여 완성도 높은 건물이 됐다. 평면 12각형의 건물로 외관부터 특이하다.

 

옛 법당 앞에는 파초를 많이 심었었는데 이를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공양간의 뒤뜰 풍경. 안쪽은 반찬을 만들던 채공간이었고 2층은 곡물, 먹거리를 저장하는 창고였다. 기계가 없던 시절, 저 돌절구에 다 찧고 갈아서 썼다.

 

가을의 초입에 간간히 풍겨오는 향기로운 바람, 바로 만 리를 간다는 만리향의 향기였다. 본 이름은 금목서고 흰색 꽃나무는 은목서, 천리향이라고도 부른다.

 

관음전은 원래 성수전(聖壽殿)으로 고종이 51세가 되자 장수를 빌기 위해 세운 건물이었다. 왕은 51세가 되면 70세에 들어가는 기로소에 들 수 있었다.

 

그러나 성수전은 한일합방으로 빛을 잃었고 앞에 있었던 관음전이 퇴락하자 전각을 헐고 관음보살상을 성수전으로 옮긴 후 관음전 현판으로 바꿔 달았다.

 

관음전 내부 아래쪽 벽에는 임금의 전패를 모셨던 중앙을 향해 정1품 이하 고급관료들이 좌우로 벌려 서서 홀을 들고 읍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삼일암 아래에 있는 하사당은 보물 제263호로 조선 전기에 지어진 건물이다. 부엌 칸 지붕 위로는 사각의 맞배지붕 기와를 얹은 환기 구멍이 있다.

 

절집 중에서 송광사 해우소만큼 특이한 화장실도 없을 것이다. 연못 중앙에 놓인 다리를 건너가면 ‘T’자형 화장실 입구다. 문도 연꽃봉우리 모양이다.

 

연못의 한 모퉁이에는 계곡물이 계속 들어오니 비단잉어가 유유자적 노닌다. 원형을 그대로 유지했다면 선암사 해우소처럼 문화재로 지정됐을 것이다.

 

송광사 경내에 있는 보조국사감로탑이다. 보조국사(1158~1210)는 불교계가 출세 위주의 풍토로 변질하자 수행 위주의 가풍을 정착시키고자 노력했다.

 

보조국사비는 1213년에 사찰 경내에 세웠다. 이 비도 정유재란으로 왜군이 들어와 훼손했으며 1678년에 중건했다. 1687년에 부도전으로 옮겼다.

 

원래 승탑들은 사찰의 뒤쪽 산록에 안치했고 송광사는 지금까지 그 법도를 지키고 있다. 조선시대에 와서 여염의 효자각처럼 사찰입구로 승탑이 나온다.

 

조선시대 승탑들이 모여있는 곳에 보조국사탑과 같은 양식의 승탑도 있다. 이 송광사 부도밭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승탑을 한 번에 돌아볼 수 있다.

 

사진. 노승대

 

(필자의 카카오스토리에도 실린 글입니다.)

 

노승대
‘우리 문화’에 대한 열정으로 조자용 에밀레박물관장에게 사사하며, 18년간 공부했다. 인사동 문화학교장(2000~2007)을 지냈고, 졸업생 모임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인사모)’, 문화답사모임 ‘바라밀 문화기행(1993년 설립)’과 전국 문화답사를 다닌다. 『바위로 배우는 우리 문화』, 『사찰에는 도깨비도 살고 삼신할미도 산다』(2020년 올해의 불서 대상)를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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