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으로 가는 길
상태바
대승으로 가는 길
  • 현안 스님
  • 승인 2021.09.08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쿡 스님의 선禪 이야기(8)
미국 뉴욕에서 열린 무료 참선 교실 후 영화 스님과 샤나(현안 스님 출가 전) 모습. <br>
미국 뉴욕에서 열린 무료 참선 교실 후 영화 스님과 샤나(현안 스님 출가 전) 모습. 

지난 6월 초 월간 「불광」에서 저를 취재하기 위해서 청주 보산사로 찾아왔습니다. 「불광」 인터뷰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속에서 깊은 환희와 기쁨을 느꼈습니다.(참고기사 링크: 월간 「불광」 2021년 7월호(통권 561호) ‘손익계산서 따져 출가한 사업가 현안 스님’) 거기엔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십여 년 전 미국 노산사에서 영화 스님(Master YongHua)을 만나서 참선을 접하고, 마음의 괴로움을 잘라낼 수 있다는 희망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매년 선칠(禪七, 중국 정통선 수행법으로 한국의 안거와 유사)이 시작되면 사업과 개인 활동을 모두 멈추고 무조건 수행에만 매달렸습니다. 영화 스님은 당시 몇 명밖에 되지 않는 제자를 데리고 겨울 선칠 수행을 하고 계셨습니다. 선칠 기간 중 어느 날 새벽 혼자 부엌에 앉아 있을 때 일입니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도, 다리가 아픈 것도, 시끄러운 머릿속 부정적인 생각을 종일 들여다봐야 하는 것도 너무나 괴로울 때였습니다. 그날 새벽 영화 스님이 부엌에 물을 마시러 들어오셨는데, 저를 보시더니 천천히 걸어와서 옆에 앉으셨습니다. 영화 스님은 괴로워하는 저의 말동무가 돼주시곤 했기에 고민을 털어놨습니다.

“마스터, 저는 다른 사람에 비해서 착하지도 않고, 특별히 나은 사람도 아닌데, 참선을 배워서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습니다. 생각해보니 이렇게 좋은 걸 배울 수 있는 건 특권이 아니라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바깥세상에 나가보면 사람들이 이렇게 좋은 걸 모르고 그냥 살아가는구나, 하고 참 안쓰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런 게 있다는 걸 많은 이들이 알았으면 합니다.”

영화 스님은 따뜻한 목소리로 대답해주셨습니다.

“우리는 아직 사람 수도 부족하고, 준비가 덜 돼서 여기 이렇게 숨어서 수행하고 있지만, 그래 네 말이 맞다! 훗날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해줘야겠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참선 모임을 제안했을 때, 영화 스님은 그렇게 하도록 허락해 주셨습니다. 2015년 ‘공원에서의 참선(Chan meditation in the park)’이라는 모임을 만들고, 매주 가까운 공원에서 참선 교실을 시작했습니다. 영화 스님의 지침대로 나이, 인종, 종교와 상관없이 누구나 환영한다는 광고문을 여러 소셜미디어에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공원에서의 참선 교실' 웹 광고 배너. 출처 'Chan Meditation in the Park' 페이스북.

미국인, 중남미인, 인도인, 동양인, 개신교인, 천주교인 등 다양한 분들이 참선 모임에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물어보는 질문에 제가 다 대답할 수 없어서, 평일에도 거의 매일 노산사로 가서 영화 스님께 질문을 쏟아부었습니다. 영화 스님은 불교나 참선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제게 차근차근 모두 다 대답해주셨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니 그 과정을 통해서 정말 많은 걸 배웠던 것 같습니다.

미국 LA 근교에 위치한 피코리베라시(Pico Rivera) 공원에서의 참선 교실 모습. 
 피코리베라시 공원에서의 참선 교실 참가 학생의 모습. 

공원과 시민센터 등에서 많은 이에게 참선과 수행을 소개하고, 영화 스님이 보여주신 것처럼 모든 질문에 대답하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참선 교실 운영이 힘들 때면 ‘정말 나는 아는 게 별로 없구나’,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라는 생각도 올라왔습니다. 참선 교실에 참여하는 학생 수도 계속 늘어나는 게 아니라 늘었다가도 매년 겨울이 되면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영화 스님은 점심시간에 여러 제자 앞에서 “샤나(현안 스님 출가 전 이름)가 하는 이 참선 교실이 겉으로 보긴 하잘것없어 보이지만, 사실 매우 중요한 일”이라며 “참선의 바른 기반을 세우는 일이고, 사람들이 평생 쓸 수 있는 강력한 도구를 배우는 일이기도 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는 영화 스님이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참선 교실이 힘들거나 부정적인 생각이 올라올 때마다 그 말씀을 되새기면서, ‘마스터(영화 스님)가 그런 말씀을 하셨다면 이유가 있을 거야. 그러니 계속해야만 해’라고 생각하며,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나갔습니다.

시간이 흘러서 잊고 있던 옛 학생들에게 편지와 문자를 받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먼 곳으로 이사 가서 더는 참선 교실에 올 수 없었지만, 어려울 때마다 참선을 통해 잘 극복할 수 있어서 고맙다는 사람도 있었고, 매달 감사 카드와 20달러를 보내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수년 전 참선을 배우면서 인생의 큰 고비를 잘 넘겼다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학생이 나를 따르는지가 아닌, 단 한 명에게라도 진정한 도움과 변화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불교를 잘 모릅니다. 사람들이 어려운 불교 용어로 뭘 물어보면 잘 알아듣지도 못합니다. 하지만 제가 확실하게 아는 것이 있습니다. 불교의 가르침과 선(禪)을 통해 비로소 인간다운 인간이 될 수 있었고, 어떤 사람이라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도 목격했습니다. 누구든 자기 자신의 허물과 오류를 직면하고자 하는 용기가 있다면, 그 길에 들어서도록 도와주고 싶습니다.

이렇게 영화 스님이 보여준 길을 믿고 따라왔습니다. 혼자였다면 진작에 포기했을 것 같습니다. 이제 한국에 돌아와서 제가 걸어온 이 길을 여러 사람에게 보여줄 기회가 생겨서 진심으로 기쁩니다. 오로지 개인적인 기쁨, 편안함 그리고 이익만 좇는 대신 우리 모두다 여러 사람과 함께 선을 통한 기쁨과 변화를 나눌 수 있길 바랍니다.

 

*덧붙이는 말: 수행과 불교 공부에서 생긴 질문이나 문제가 있으시면 댓글로 올려주세요. 대답해드릴 수 있는 질문이라면 다음 글에서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사진. 현안 스님

 

현안 스님
미국에서 사업을 하던 중 노산사(盧山寺, Lu Mountain Temple)에서 영화 스님을 만나 참선을 처음 접했습니다. 수행 정진하다가 불법을 더 깊게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 사업을 모두 정리하고 미국 위산사(潙山寺, Wei Mountain Temple)에서 영화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습니다. 현재는 스승의 뜻에 따라 국내로 들어와 청주 보산사(寶山寺, Jeweled Mountain Temple)에서 참선(챤 메디테이션, Chan Meditation)을 지도하며 수행 정진하고 있습니다. 근래에는 『보물산에 갔다 빈손으로 오다』라는 책을 발간했습니다.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