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공당 월주 대종사 추모특집] 「불광」이 기록한 깨달음의 사회화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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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공당 월주 대종사 추모특집] 「불광」이 기록한 깨달음의 사회화 정신
  • 최호승
  • 승인 2021.09.0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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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 그대를 만나 | 「불광」과 월주 스님, 은사스님의 삶을 기리며, NGO와 월주 스님

인연은 인연을 낳고

“건강 비결에 대해 여쭙자, 너무나 솔직하게 일과를 말씀해주시면서 ‘광덕 스님이 오래 살았으면 큰일 많이 하셨을 텐데’라는 스님, 순간 고독해 보인다. 광덕 스님이 살아 계시다면 외롭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계시는 것일까?”(월간 「불광」 ‘우리스님’ 인터뷰 내용 중)

월주(1935~2021) 스님과 월간 「불광」 초대발행인 광덕(1927~1999) 스님과 인연은 지중했다. 월주 스님은 금오 스님을 은사로, 광덕 스님은 동산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두 스님의 은사스님은 한국불교정화운동을 주도했다. 이 인연은 1967년 3월 정화정신 계승과 종단발전을 염원한 ‘영축회’ 회원으로 이어졌고, 두 스님은 종단의 미래를 함께 고민했다. 광덕 스님 입적 후에도 월주 스님은 『광덕 스님 전집』에 축하 서문을 쓰는 등 인연은 계속됐고, 기록은 월간 「불광」에 오롯이 남았다.

월주 스님은 월간 「불광」이 뜻깊은 해를 맞이할 때마다 잊지 않고 챙겼다. 창간 30주년이던 2004년 11월호엔 “불교의 생활화, 대중화에 금자탑을 쌓은 것처럼 앞으로도 한국불교 발전의 지침이 되길 기원한다”며 축하를 전했다. 월간 「불광」과 불광법회 창립 40주년 기념법회도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이날 월주 스님은 광덕 스님과 함께 종단을 바로 세웠던 일화를 소개하며 “광덕 스님은 진리의 말씀을 펴고 대중들을 결집하는 운동에 헌신했다”면서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욱 기대된다. 다가올 불광의 미래 역시 전법의 빛이 되고 희망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축원했다. 월간 「불광」 500호 발간호에서도 처음부터 애독했다며 불교를 쉽게 풀어낸 점을 칭찬했다. 

창간호부터 월간 「불광」을 구독한 월주 스님은 수시로 지면을 통해 한국불교가  나아갈 길과 종단체계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1975년 9월 13일, 오늘의 포교를 점검하는 월간 「불광」 창간 1주년 기념 좌담회에 월주 스님이 참석했다. 포교원 설립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제도적 보완과 특별예산 지원을 언급한 월주 스님은 1994년 개혁종단 총무원장에  취임한 뒤 포교원을 세웠다. 

 

고통받는 이웃의 신음 속에 깨달음 있다

당시 개혁종단 중점과제는 ‘깨달음의 사회화’였다. 「불광」과 인연이 더 특별해졌다. 단순히 중생 구제라는 포괄적 개념에 머물렀던 불교의 사회적 역할을 강화하려는 월주 스님의 노력을 「불광」에서 적극적으로 알려 나갔다. ‘사회는 하나’, ‘민족은 하나’, ‘자연은 하나’, ‘세계는 하나’ 등 4개 주제 아래 소외계층 구제, 남북종교교류 추진, 무분별한 방생 지양, 낙태 금지, 제3세계 난민과 기아 돕기 운동 등 부처님의 가르침이 세계에 퍼지도록 독자와 불자의 관심을 독려했던 것. 

1990년대 북녘의 굶주림이 알려졌을 땐 월주 스님과 김수환 추기경 등 사회 지도층 인사 600여 명이 참여한 ‘북한의 식량 위기를 염려하는 옥수수 만찬’ 행사를 기록, 아픔을 외면했던 사회 분위기에도 먼저 손 내민 사실을 알렸다. 

‘깨달음의 사회화’는 유명유실(有名有實) 단체탐방 코너에서 취재한 지구촌공생회 기사 중 미니 인터뷰에서 오롯이 드러났다. 

“우리는 모든 이웃의 고통이 없어질 때까지 함께 노력하며 살아가겠다고 서원한 보살들이다. 남의 고통을 나의 고통처럼 받아들이고 그 고통을 해소하도록 나눔을 생활화 한다면 그 자체가 천지여아동근(天地與我同根, 세상은 나와 더불어 한 뿌리)이요, 만물여아일체(萬物與我一體, 모든 존재는 나와 더불어 하나)임을 자각한 사람의 모습이다. 지구촌의 모든 생명을 살리고 빈곤을 해소해 인류의 고통을 다 없앨 수는 없지만, 불자들의 관심과 정성이 쌓이고 전파된다면 그만큼 지구촌의 수많은 생명을 살리고 고통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월주 스님은 불연을 맺은 뒤 늘 서원은 ‘깨달음의 사회화’였다. 월간 「불광」에 자신의 불연을 털어놓은 스님은 통일, 환경, 인권, 복지 등  고통이 자리한 사회 각 분야에 마음이 가 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서원했다. “함께 나누는 불교, 뜨거운 자비행을 통해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는 참된 불제자이게 하소서….”

맞다. 월주 스님의 삶 자체가 ‘깨달음의 사회화’였다. 2014년 5월호에 실린 ‘살아있는 명법문’은 ‘깨달음의 사회화’ 정신의 핵심일지도 모른다. 

“깨달음은 경전 속 글귀만이 아니라 고통받고 설움 받는 이웃의 신음과 탄식 속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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