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혼밥 한 그릇] 가지덮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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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혼밥 한 그릇] 가지덮밥
  • 법송 스님
  • 승인 2021.09.03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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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 하나로 한 끼 해결

귀천 없는 음식 취향

“평양냉면은 이렇게 먹는 거야.”

소위 ‘평냉부심(평양냉면에 대해 해박하다는 자부심)’을 부리는 냉면 마니아들의 말이다. 심심한 평양냉면 육수에 양념장이나 겨자, 식초를 더하려고 하면 이들은 냉면 본연의 맛을 즐길 줄 모른다고 지적하며 냉면 먹는 법을 가르친다. 냉면에 양념을 넣었다는 이유로 졸지에 ‘맛알못(맛을 알지 못하는 사람)’ 취급을 받은 사람들은 냉면 마니아의 훈계하는 듯한 태도를 ‘면스플레인(냉면에 대해 가르치려 하는 태도나 말)’이라 부르며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평양냉면을 좋아해야만 미식가냐는 반론에도 꿈쩍 않던 냉면 마니아들은 예상치 못한 일을 계기로 체면을 구겼다. 바로 북한 옥류관에서 ‘원조 평양냉면’을 먹는 대한민국 예술단 모습이 방송을 탄 일이다. 그간 평양냉면 마니아들이 두었던 훈수(?)와 달리 옥류관의 식탁에는 양념장과 식초, 겨자가 냉면과 함께 제공됐고, 옥류관 직원이 직접 ‘평양냉면에는 양념장과 겨자를 듬뿍 넣어 먹으면 더 맛있다’고 안내했다는 사실도 전해졌다.

음식 취향은 다양하며, 여기에는 옳고 그름도 위계도 없다. 특정 음식을 싫어한다고 해도 이는 개인의 취향일 뿐 음식의 잘못도 그 음식을 싫어하는 사람의 잘못도 아니다. 문제는 취향의 다름을 불편하게 여기는 이의 마음이다. 억지로 자신의 음식 취향을 강요하는 오지랖은 사절이다. 그저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며 식탁 앞에 앉으면 된다.

모두가 식탁 앞에 공존하는 법

분명히 해둘 점이 있다. 취향을 존중한다는 말은 ‘소통한다’는 뜻이지, 타인의 취향을 불가침의 영역으로 보고 부정적 언급이나 비판을 무조건 ‘피한다’는 뜻이 아니다. 취향 존중을 명분으로 음식에 대한 논의마저 차단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음식 취향은 고정불변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취향을 타인과 공유하고 논쟁하는 과정에서 맛에 관한 생각이 확장되거나 180도 바뀌는 새로운 경험을 할 수도 있다. 꼭 취향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경험이 아니더라도, 서로 다른 이들이 각자의 개성을 표현하며 다양한 음식 취향을 공유하는 일 자체가 이미 즐거운 일이다. 미각의 경험이 다른 이들끼리도 공통으로 맛있다고 느끼는 음식이 있다는 사실, 분명 나는 속절없이 끌리는 맛을 어떤 이는 몸서리치도록 싫어한다는 사실, 모두가 단 한 가지의 맛을 지향하지 않는다는 사실, 나와 같은 취향이든 비슷한 취향이든 정반대 취향이든 모두가 공존한다는 사실을 대화를 통해 확인하는 과정부터가 우리에게 재미를 준다.

실제로 ‘탕수육 부먹 vs 찍먹(탕수육에 소스를 부어서 먹느냐, 찍어서 먹느냐)’, ‘민트초코 호 vs 불호’, ‘시리얼 눅눅하게 vs 바삭하게’, ‘떡볶이 쌀떡 vs 밀떡’ 등으로 대표되는 음식 취향 논쟁은 이미 논쟁을 넘어 재미있는 이야깃거리이자 하나의 놀이문화가 됐다. 이제 사람들은 개인의 음식 취향을 합리적인 근거를 들어 표현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찍먹은 시험 볼 때도 다 찍는다며?’, ‘부먹은 로션 바를 때도 부어 바른다며?’라는 식으로 취향이 다른 상대를 가볍게 놀리는(?) 등 음식 논쟁을 개그 소재로 활용한다. 언뜻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끼리 뭉쳐 다른 취향을 깎아내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놀이일 뿐, 진지하게 맛 취향이 다른 이를 조롱하거나 배척하는 이는 드물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에 대한 비평을 나에 대한 비평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마음을 열면 누구나 이 놀이를 즐기며 식탁 앞에서 공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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