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매에 들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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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매에 들어가다
  • 현안 스님
  • 승인 2021.08.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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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쿡 스님의 선禪 이야기(6)
1985년, 4살 때 친척들과 강에서 놀고 있는 현안 스님의 모습. 

초등학교 때부터 아니면 더 어릴 때부터 일지 모릅니다. 저는 텔레비전에서 동물의 왕국이나 자연 다큐멘터리 보는 걸 매우 좋아했습니다. 동물이나 식물같이 살아있는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어릴 때 부모님은 우유를 납품하는 목장을 하셨는데, 저 혼자 있을 땐 밖에 나가서 강아지랑 놀거나 개미, 달팽이, 지렁이, 잠자리, 개구리와 같은 것들을 몇 시간씩 관찰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생명이란 존재에 대한 관심이 많았죠. 이렇게 밖에서 동물을 관찰하고 있으면 어머니가 저녁 먹자고 큰소리로 절 찾아다녀야 했던 적도 많았습니다.

중학교 때 길을 가다가 문득 ‘나는 누구지?’라는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그때부터 종교와 철학에 관심이 생겼고, 고대 신화와 여러 철학 서적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반야심경』을 읽게 됐는데, 그때부터 불교에 대한 막연한 믿음이 마음속에서 자라났습니다.

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과 호기심으로 결국 대학교 전공도 미생물공학을 선택했습니다. 생명 관련 공부를 깊이 해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생명과학 공부를 깊이 하면 할수록 과학이 가진 한계성을 인식하게 됐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생명에 대한 탐구는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대학생 때 생화학, 유기화학, 세포학 같은 과목을 정말 좋아했습니다. 특히 생화학이란 과목을 가장 좋아했습니다. 생명의 세포와 화학적 수준까지 공부하고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생화학 수업 시간이었습니다. 영양소가 화학적으로 분해되고 에너지를 방출하는 과정을 탐구하고 있었죠. 고도로 집중해 이해하려고 노력하던 순간, 그 과정이 마음속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 줄로 다 이어져 통하게 됐습니다. 그때 갑자기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려졌고,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평화로움을 느꼈습니다. 큰 공기 방울 속에 있는 것처럼, 밖의 소리 모두 다른 세상의 소리처럼 평화롭게 들렸습니다.

그 순간의 경험이 너무 강렬해서 그 후로도 계속 잊지 못했습니다. 수업 후 밖에 나왔을 때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도, 사람들이 서로 대화를 하는 것도 모두 기적처럼 느껴졌습니다. 대학교 구내식당에서 사람들이 밥을 먹는데, 그냥 그 밥만 먹고도 생각하고, 말 할 수 있는 생명의 존재가 마치 기적과 같았습니다.

출가하기 전 현안 스님의 대학생 때 일이다. 생화학 수업 시간, 고도로 집중한 현안 스님은 어느 순간 시간이 멈춘 듯 느려졌고, 이전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평화로움을 느꼈다. 수업이 끝나고 밖을 나오니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도, 서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도 모두 기적처럼 느껴졌다. 사진 셔터스톡.

십여 년이 흐른 뒤 영화 스님을 만났을 때, 이 경험에 관해 물었습니다. 스님은 그것이 바로 삼매에 들어간 경험이라며, 삼매에 들어가는 세 가지 방법을 설명해주셨습니다.

“첫째가 바로 고도로 집중했을 때 들어가는 방법이란다. 네가 한 경험이 바로 그것이다. 두 번째는 죽기 직전 한순간 모든 집착을 놓았을 때 평화로움을 느끼거나 빛을 보는 등 설명할 수 없는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이 삼매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을 체계적으로 훈련받아서 삼매에 들어가는 방법이 있는데, 그렇게 훈련하면 결국 스스로 원할 때 자유자재로 삼매에 들어갈 수 있지. 네가 들어간 삼매는 낮은 수준의 삼매이고, 훈련받으면 그보다 훨씬 더 깊고 지속적인 삼매에 들어갈 수 있단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는데 하나는 ‘나한테는 매우 강렬하고 중요한 경험이었는데 별거 아니라니 기분이 안 좋다’였고, 두 번째 생각은 ‘훈련하면 그보다 더 깊고 지속적인 삼매에 내 맘대로 들어갈 수도 있다니, 이곳에 와서 그걸 배워야겠다’였습니다.

2013년 노산사의 겨울. 선칠(禪七, 중국 정통선 수행법으로 한국의 안거와 유사) 수행을 하는 출가전 현안 스님(제일 앞쪽)의 모습.

본래 호기심이 충만했던 성격이라 그때부터 열심히 노산사 참선 법문에 갔습니다. 노산사(盧山寺, Lu Mountain Temple)는 영화 스님이 미국에서 이끄는 대승수행도량입니다. 영화 스님은 저의 어리석은 질문부터 어려운 질문까지 모든 질문에 대답해주셨습니다. 스님의 대답은 늘 저의 생각보다 훨씬 현명했습니다. 어느 날 영화 스님께 물었습니다.

“스님, 계속 물어봐도 항상 스님의 대답이 제 것보다 나은데, 그냥 끝까지 스님만 믿고 따라가다가 잘못되면 스님이 저한테 빚지는 건가요?”

“그렇지. 빚을 지는 거지!”

“그렇다면 스님 말을 끝까지 따라갔는데, 잘못된 곳에 가거나 끝까지 가지 못했다면, 스님이 다음 생에 그 빚에 대한 이자도 갚아 주는 건가요?”

“음~ 그렇지 갚아줘야지.”

“그렇다면 이제 항복하겠어요. 스님을 따르겠어요. 어차피 스님의 답이 제 것보다 훨씬 나으니까, 잘못되더라도 손해 볼 건 없겠군요!”

그날부터 저는 스님의 말을 다 믿기로 결심했고, 이것이 나은지 저것이 나은지 항상 계산해야 했던 마음에도 더 큰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수년이 흘러서 출가를 결심했을 때 영화 스님은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돈 걱정은 나만 하면 된다. 너희들은 그런 걱정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런 걱정이 있으면 절대로 깨달을 수가 없다. 그러니 너는 이제 네 수행에만 전념해라. 내가 실수를 할 때도 있지만, 내가 옳을 땐 그 결과로 그 실수를 모두 회복할 수 있다.”

제자들을 위해 큰 짐을 짊어지셨던 스승님께 한량없이 고맙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더 큰 힘과 지혜를 얻어서 스승님 곁에서 다른 이들의 짐을 짊어질 수 있길 바랍니다.

 

*덧붙이는 말: 수행과 불교 공부에서 생긴 질문이나 문제가 있으시면 댓글로 올려주세요. 대답해드릴 수 있는 질문이라면 다음 글에서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사진. 현안 스님

 

현안 스님
미국에서 사업을 하던 중 노산사(盧山寺, Lu Mountain Temple)에서 영화 스님을 만나 참선을 처음 접했습니다. 수행 정진하다가 불법을 더 깊게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 사업을 모두 정리하고 미국 위산사(潙山寺, Wei Mountain Temple)에서 영화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습니다. 현재는 스승의 뜻에 따라 국내로 들어와 청주 보산사(寶山寺, Jeweled Mountain Temple)에서 참선(챤 메디테이션, Chan Meditation)을 지도하며 수행 정진하고 있습니다. 근래에는 『보물산에 갔다 빈손으로 오다』라는 책을 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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