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특집] 북경에서 출가한 신채호와 의열단원 김성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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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특집] 북경에서 출가한 신채호와 의열단원 김성숙
  • 김남수
  • 승인 2021.08.13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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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 출신의 독립운동가들 ②

중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단체 「조선의열단」이 있다. 영화 ‘밀정’이 이들을 소재로 한 것이다. 조선의열단에는 몇몇의 스님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중 한 명이 운암 김성숙이다.

또, 조선의열단의 지도자였고, 조선의열단을 대표하는 글「조선혁명선언」을 작성한 신채호는 불교적 정체성을 분명히 한 인물이고, 잠깐이었지만 출가를 하기도 하였다.

두 분의 삶을 의열단이 활동하던 시기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단재 신채호

1924년 3월, 40대 중반에 이른 단재(丹齋) 신채호(1880~1936)는 북경 관음사(觀音寺)에 들어가 출가한다. 출가는 채 1년이 되지 않았다.

연구자들은 신채호의 출가를 생활고를 해결하는 방편으로, 혹은 집필을 위한 공간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출가 생활이 그리 길지 않았고, 출가 기간에도 신채호는 많은 글을 썼으며 독립운동에도 직간접적으로 관련을 맺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채호가 이를 위해 출가까지 감행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은 남는다. 신채호의 출가가 단지 방편의 문제였을까?

 

아나키스트 신채호

1924년 출가하기까지 신채호에게는 앞선 몇 해 중요한 흐름이 잡힌다. 1919년 10월 상해임시정부와 결별한 신채호는 독립운동의 기조에 대하여 임시정부와 격렬한 충돌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1920년에는 이회영 부인의 중매로 연경대학 의예과에 재학 중이던 박자혜와 결혼한다. 2년 뒤, 극심한 생활고로 인해 부인과 아들을 국내로 보내는 상황이 되었다.

이즈음 김원봉을 만나 1922년 12월 의열단 선언문을 작성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1923년 1월, 「조선혁명선언(朝鮮革命宣言)」을 발표한다.

연구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신채호가 이 시기에 무정부주의로 경도되기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젊은 시절에 한학을 공부하여 성균관 박사로 임명되어 애국계몽운동을 이끌었고, 만주로 이동해서는 대종교에 입교까지 하였던 민족주의자 신채호가 무정부주의를 받아들이는 시기로 보고 있다.

신채호의 중국 행적을 연구한 최옥산에 의하면 신채호는 1921년경 중국의 아나키스트 이석증, 그리고 의열단 활동을 하던 유자명과 만난다.

이석증은 불교 신도는 아니었지만, 평생 불교를 가까이했고 신채호에게 많은 도움을 준 인물이다. 최옥산은 신채호가 출가할 때 절을 알선해 준 사람으로 이석증을 지목한다.

감옥에 수감된 신채호

불교와의 인연

출가 전 신채호는 북경의 석등암(石燈庵), 현량사(賢良寺), 홍라사(紅螺寺) 등의 사찰과도 인연이 있다. 석등암은 저술 활동을 위해 머물렀던 공간이며 현량사는 단재의 시 ‘현량사 불상을 보고’의 소재가 되었던 곳이다.

신채호가 출가 전, 불교와 관련이 있는 부분은 1923년 1월 발표한「조선혁명선언」에서도 나타난다.

設或 强盜 日本이 突然히 佛菩薩이 되야 一朝에 總督府를 撤廢하고 各種 利權을 다 우리에게 還付하며, 內政外交를 다 우리의 自由에 맡기고 日本의 軍隊와 警察을 一時에 撤收하며, 日本의 移住民을 一時에 召還하고, 다만 虛名의 宗主權만 갖인다 할지라도,
처음에는 少數의 幸福을 爲하여 多數의 民衆을 殘害하다가 末竟에는 또 少數끼리 서로 殘害하여 民衆全體의 幸福이 畢竟數字上의
空이되고말뿐이니..

글의 전체 맥락에 굳이 불보살(佛菩薩), 공(空)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될 법하지만, 불교적 용어를 사용하였다.

여기까지는 주변부적 상황이다. 즉, 신채호가 불교와 인연을 보여 줄 뿐이다.

신채호가 작성한 '조선혁명선언'

현량사 불상을 보고

중국에서 신채호는 시와 소설을 작성하는 데 이 중 불교적 소재와 색채가 많이 나타난다. 소설로는 <일이승>, <백세 노승의 미인담>이 대표적이며, 시로는 앞서 언급한 <현량사 불상을 보고>, <꿈에 금강산을 보고>가 있다.

신채호의 정체성을 알려주는 시는 <현량사 불상을 보고>이다.

집주고 돈도 주니 퉁부처의 대가리에
이백년 청실(淸室) 은혜 산 같이 쌓였어라
은혜를 못 갚을망정 눈물조차 없단 말가

현량사는 청나라 옹정제(1678~1735)가 세운 절이다. 시에서 ‘이백년 청실 은혜’는 이를 뜻한다. 직관적으로 읽으면 ‘황실의 은혜를 입은 부처가 청나라가 멸망하는 데 눈물조차 없음’을 한탄하는 것으로도 읽을 수 있다.

이 점에 착안해서 시에 대해 신채호의‘불교에 대한 비판’으로 읽기도 하는데, 이는 시를 오해하는 것이다.

이 시에서 신채호가 투사(projection)하는 대상이 현량사에 있던 ‘퉁부처’로 읽는다면, 신채호는 퉁부처에게 자신의 바램, 기대를 표현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눈물조차 없단 말가’라는 표현은 이를 드러낸다. 불교에 대한‘분노’ 혹은 ‘비판’이 아니라 역으로 바램, 기대로 읽어야 한다. 그렇다면, 퉁부처는 신채호가 기대는 혹은 의지하는 대상이 된다.

이 시기에 신채호와 함께 활동은 정인보는 아래와 같이 말한다.

“단재는 사학 이외에 불학(佛學)에 특별히 깊어 유마, 능엄 등 제 경을 오해(悟解)하는 정도가 당세 백의간(當世 白衣間)에 최고이다. 더욱이 유마를 좋아하여 지우(知友)들에게 한번 보라고 권하였으며 또 마명(馬鳴)의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을 깊이 연구하였다.”

즉, 신채호에게 있어 불교 혹은 출가를 방편만으로 해석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이 빠져 있음을 보여준다. 독립운동 내의 갈등 혹은 생활고에서 오는 번민, 가족을 떠나보낸 신세에 대한 회한일지는 모르지만 신채호의 내면에 불교는 많은 부분 자리 잡고 있었다.

 

북경으로 건너온 스님들

1923년, 조선에서 6명의 스님이 북경으로 넘어온다. 조선불교의 유학생 김성숙, 김봉환, 윤종묵, 김규하, 차응준, 김정완이다. 네 명의 스님은 혁명과 독립운동에 참여하였으며, 두 명은 ‘혁명은 잠꼬대 같은 소리’라며 되돌아간다.

이중 조선의열단에 참가한 스님이 운암 김성숙이다. 김성숙은 아마 북경에 도착하자마자 유자명과의 인연을 통해 신채호와 인연을 맺은 듯하다.

운암 김성숙(1898~1969 사진:운암김성숙기념사업회)

김성숙이 의열단에 가입하고 선전부장을 맡게 된 것도 유자명과 신채호의 추천이라는 연구도 있다. 김성숙 역시 신채호에 대한 기억이 또렷하다.

(신채호는) 많은 고전물들을 그냥 외우고 있었어요. 예컨대, 『삼국유사』를 한번 보았으면 좋겠는데 망명지에서 그걸 구할 수 있나요? 그래서 단재에게 물어보면 줄줄 외우고 있어요. 아주 천재적이었지요.

김성숙은 봉선사에서 홍월초에게 출가한 스님으로 북경으로 넘어왔다. 3.1운동에 참여하여 옥고도 치렀고, 이미 조선에서 무산자 운동에 관여해왔기에 이들의 인연은 쉽게 이루어졌을 터이다.

님웨일즈의 ‘아리랑’에 나오는 금강산의 붉은 승려가 김성숙을 지칭하고 있었음은 훗날 밝혀졌다. 김성숙도 명석한 혁명의 이론가인 듯하다.

조선의열단의 선전부장으로, 혹은 각급 단체의 주필로 많은 글을 썼다. 1938년 김원봉이 조선의용대를 설립하자, 김성숙은 조선의용대 정치부 주임으로 선임되기도 하였다.

김성숙은 1945년 8월, 해방 시기까지 임시정부에서도 활동하였으며 임시정부 요원으로 귀국하였다.

단재 신채호의 시를 글의 마지막에 싣는다. 이시는 1936년에 발표되었는데, 신채호 연구자 김주현은 1923년 11월에 쓰인 것으로 확인하였다. 글은 1936년 본이다.

「金剛山」

金剛山 좋다 마라

丹楓만 피었더라

丹楓의 닢새닢새

秋色만 자랑터라

차라리 蒙古의 大沙漠에

大風을 반기어라

 

<참고>

김주현, 상해판 독립신문 소재 신채호의 작품 발굴 및 그 의의, 어문학 97

도진순, 시조 <샌량쓰 불상을 보고>와 신채호의 내면, 한국독립운동사연구 72

최옥산, 단재의 아나키즘과 중국, 그리고 문학, 민족문학사연구 41권

김용하,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에 나타난 불교 무정부주의 양상에 대한 연구, 동양문화연구 13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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