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師父)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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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師父)의 역할
  • 현안 스님
  • 승인 2021.08.04 10:3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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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쿡 스님의 선禪 이야기(4)
2012년 노산사 법당에서 영화 스님.

작년 12월부터 청주 보산사에서 영화 스님의 옛 참선 법문을 수행하는 분들과 함께 듣고 있습니다. 2012년부터 2018년 사이의 참선 법문을 틀어놓고, 한국어로 통역하면서 법문 내용에 대해서 의논해보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2013년 법문을 듣게 되었는데, ‘사부’라는 단어를 설명하는 법문이었습니다.

미국 노산사와 위산사에서 우리는 영화 스님을 ‘마스터(master)’라고 부릅니다. 중국계 미국인들은 ‘쓰푸(师傅)’ 즉 사부라고도 부릅니다. 보산사에서 간혹 사람들이 무의식중에 저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데, 사실 그 말을 들으면 내심 기쁩니다. 미국에서 영어에 서투른 할머니가 영화 스님에게 “티쳐! 티쳐!”라고 부르는 걸 들었을 때, ‘참 좋다’라고 느꼈거든요.

2012년 노산사 영화 스님의 일요 불경 강설 모습.

‘사부’를 영어로 ‘Master’라고 번역했는데, 어떤 경우에는 ‘Teacher’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사부라는 뜻을 영어 단어로 온전히 옮기기는 어렵습니다. 사부라는 개념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어쩌면 이 개념은 유교에서 왔을지 모릅니다. 당시 중국에서 교육은 부유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공자는 이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공자는 학비를 받지 않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물론 숙식도 무료로 제공했습니다. 그렇게 그를 따르는 학생이 수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사부라는 개념은 여기서 유래된 것입니다.

사부(師父)의 ‘사(師)’는 스승이고, ‘부(父)’는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영어 ‘Master’는 아주 정확한 번역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스승이란 무엇일까요? 스승이란 혜명(慧命, Wisdom life)을 제공해주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사(師) 즉 스승이란 지혜와 지식을 전해주고, 부(父) 즉 아버지는 여러분을 보살핍니다. 자기 자식을 돌보는 아버지처럼 말입니다. 사부란 주는 것, 즉 ‘Giving’의 개념입니다. 즉 다음 세대에게 무언가를 전해주는 사람입니다.

2017년 영화 스님과 프랑스 파리 방문. 제일 오른쪽이 현안 스님의 출가 전 모습이다.

사부라는 개념은 불교 수행에 있어 매우 중요합니다. 출가해서 재정적인 부분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면, 아버지[父]라는 개념은 없을 것입니다. 만약에 부(父)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스승이 학생을 야단칠 수 없게 됩니다. 자라면서 아버지가 야단치고 꾸짖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했나요? 불평은 했어도 받아들이지 않았나요? 이처럼 사부 중 아버지의 역할이 교육에서는 매우 중요합니다.

동양 전통에서는 스승과 아버지는 강하고 터프해야지만 자식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야 자식이 좋은 사람으로 자라날 수 있다고요. 현대 사회에서는 모든 교육에 돈을 지불합니다. 그래서 스승에게서 아버지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워졌습니다. 불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사부가 자기 사람을 보살핀다는 개념이 사라졌습니다.

2013년 12월 노산사 앞마당.

영화 스님을 만났을 때, 노산사에 출가한 사람은 현계 스님과 현순 스님뿐이었습니다. 후에 여러 사람이 더 출가했는데, 영화 스님이 큰 목소리로 이들을 야단치고, 호되게 대할 때 부러웠습니다. 사부와 제자의 관계가 훨씬 더 가깝고 단단해 보였거든요. 그래서 속으로 ‘나도 저렇게 야단쳐주시면 감당할 수 있을 텐데. 스님이 나한테도 저렇게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영화 스님은 현명한 선생님이시라 모든 걸 다 포기하고 버린 상태가 아니라면 혼내지 않으셨습니다. 아무리 존경하고 고마운 스승이라도 마음이 언제 돌변할지 저 자신도 완전히 모르기 때문입니다.

출가한 후 드디어 영화 스님이 저를 제대로 꾸짖기 시작하셨습니다. 지난 10년간 영화 스님이 심하게 아픈 적이 없으셨는데, 딱 한 번 한 달 넘도록 정말로 심하게 아프신 적이 있었습니다. 한 번도 그 정도로 아프신 적이 없던 터라, 제자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영화 스님은 제자들을 멈추지 않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영화 스님은 어디를 가시면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차 안에서 저를 꾸짖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스님이 저를 가르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스승이 제자를 진심으로 아끼는 마음이 가슴으로 전해졌습니다. 마음속으로 ‘내가 못난 제자라서 아픈 스승님이 기운을 쓰게 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출가 후 몸과 마음이 힘들 때 일어났던 여러 부정적인 생각들과 불평들이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저를 제자로 받아주시고 지금까지 보살펴주신 영화 스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2018년 영화 스님과 한국 첫 방문.

*덧붙이는 말: 수행과 불교 공부에서 생긴 질문이나 문제가 있다면 댓글로 올려주세요. 대답해드릴 수 있는 질문이라면 다음 글에서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현안 스님
미국에서 사업을 하던 중 노산사(盧山寺, Lu Mountain Temple)에서 영화 스님을 만나 참선을 처음 접했습니다. 수행 정진하다가 불법을 더 깊게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 사업을 모두 정리하고 미국 위산사(潙山寺, Wei Mountain Temple)에서 영화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습니다. 현재는 스승의 뜻에 따라 국내로 들어와 청주 보산사(寶山寺, Jeweled Mountain Temple)에서 참선(챤 메디테이션, Chan Meditation)을 지도하며 수행 정진하고 있습니다. 근래에는 『보물산에 갔다 빈손으로 오다』라는 책을 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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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미 2021-08-04 11:20:33
너무나 오랜만에 '사부' 라는 단어를 접하니 반갑고 감사합니다.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처럼 세파에 이리저리 흔들리기 쉬운 삶에서 평생을 걸쳐 우리 모두에게 정말 필요한 존재가 사부가 아닐까합니다. 또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성인이 되어갈 무렵부터 나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줄 참된 스승을 찾아 나도모르게 많이 헤매었었구나 싶습니다. 그 무엇보다 귀한 스승, 사부의 존재를 일깨워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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