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 독창적 개성 넘어 인격으로 승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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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독창적 개성 넘어 인격으로 승화하다
  • 장승희
  • 승인 2021.07.28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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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인간학
허련, <완당 김정희 초상>, 삼성미술관 리움 제공. 추사의 지도를 받으며 화가로서 명성을 떨친 제자 허련이 그린 추사의 말년 모습이다. 

추사의 철학적 인간학

독일 철학자 셸러에 의하면 철학적 인간학이란 “인간에 관해서 모든 과학이 얻어낸 풍성한 개별지식을 바탕으로 인간의 자기의식과 자기성찰에 관한 새로운 형식을 전개하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철학적 인간학은 다양한 개별과학의 도움으로 삶의 제반 현상들을 분석함으로써 인간의 본질과 의미를 규명하는 철학의 한 분야다. 

추사체의 특성은 ‘괴(怪)’와 ‘졸(拙)’인데, 이를 파악하려면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생애와 삶, 시대정신과 예술작품은 물론, 그에게 영향을 준 유교와 불교, 이를 통해 형성된 그의 학문과 예술 등 다양한 스펙트럼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에게 가장 극적인 사건은 제주 9년의 유배 생활로, 괴(怪)는 유배 이전 귀족자제로서의 자부심과 자신감에 따른 개성의 표현이라면, 졸(拙)은 유배 이후 성찰하며 얻은 삶의 철학적 표현이자 경지라고 할 수 있다. 괴에서 졸로, 추사체의 변화는 단순히 글씨의 변화가 아니라 인간 추사의 변화이자, 그가 세계와 조응하여 이루어진 ‘철학적 인간학’이라 할 수 있다. 

 

‘괴(怪)’의 인간학적 의미

추사는 자신의 글씨 맛은 괴에서 나옴을 분명히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요구해 온 서체는 본시 처음부터 일정한 법칙이 없어 붓이 팔목을 따라 변하여 괴(怪)와 기(奇)가 섞여 나와서 이것이 금체(今體)인지 고체(古體)인지 저 역시 알지 못합니다. 보는 사람들이 비웃건 꾸지람하건 그들에게 달린 것입니다. 해명해도 조롱을 면할 수 없거니와 괴하지 않으면 역시 글씨가 안 되는군요(要書體, 是初無定則, 筆隨腕變, 怪奇雜出, 是今是古, 吾亦不自知. 人之笑罵從他, 不可解嘲, 不怪, 亦無以爲書耳).”

괴(怪)의 뜻을 함축하는 ‘기이함’ 또는 ‘괴상함’이란, 일반인들이 수용하는 평범한 경지를 넘어선 특이함이다. 일상적인 아름다움[美]의 틀을 벗어난 것이다. 그것은 아름다움보다는 추(醜)에 더 가깝지만, 격이 낮은 추가 아니라 미적 경지로 승화될 수 있는 격조 있는 추의 경지이다. 움베르토 에코는 “‘추함’의 동의어들 거의 모두는 격렬한 거부감이나 공포, 두려움까지는 아닐지라도, 어떤 혐오감의 반응을 포함하고 있다”라며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까지의 거의 모든 미학 이론에서는 어떤 형태의 추든 충실하고 효력 있는 예술적 묘사로 보상받을 수 있음을 인정했다. 역사적인 예술작품들 속에서 괴와 추의 미학이 서로 소통하고 있음을 통찰했던 셈이다. 추사체의 괴는 추의 미학을 넘어 ‘괴적인 조화’를 추구함으로써 진정한 아름다움과 통하고 있다. 즉 일반적이고 평범한 아름다움의 틀을 깬, 상식을 넘어선 비균형적인 균형, 비조화의 조화인 경지인 것이다. 

이러한 추사체의 괴의 특성은 삶과 연계되는데, 그는 당시 유교사회의 일반 상식을 넘어서면서도 결코 균형을 잃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에게 감히 자황(雌黃) 하지 못한 이유는 그의 천재성 때문이다. 자황이란 “시문을 첨삭하여 다듬는 일이나 변론의 시비를 가린다”는 뜻으로, 고대 중국에서 글의 잘못된 글자를 이 물감으로 지운 데에서 유래한 말이다. 당시 추사는 모든 것을 청나라 연경 경험을 기준으로 재단하여 사람들에게 ‘잘난 척 한다’는 평가를 받았던 듯하다. 상식의 경계를 넘나들며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행동과 개성을 보여서 남들에게는 오만하게 보였겠지만, 그는 천재성과 더불어 가족과 지인, 제자들을 두루 챙기는 온정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의 괴는 괴이면서도 조화와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성격이 까다로워도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더라”는 미술사학자 이동주 선생의 표현처럼, 추사는 붓이나 종이의 선택에서도 매우 까다로웠다. “근래에 우리나라에서 만든 붓들은 쓸 만한 게 없소. 북혈와필(北穴瓦筆)·정초자용필(正草字用筆)·명월(明月) 주옥(珠玉) 등을 붓대에 새긴 것들은 더욱 거칠어 감당할 수 없습니다”, “‘글씨를 잘 쓰는 이는 붓을 가리지 않는다’라는 것은 공통된 논이 아니다” 등 붓과 종이를 가렸다. 붓도 쥐수염으로 만든 서수필(鼠鬚筆)만을, 종이도 질 좋은 종이만을 고집했다. 그의 까다로움에 더하여 추사가 다른 사람을 쉽게 평가한 오만함은 제주 유배의 길에 있었던 두 사건에서 잘 드러난다. 하나는 전주의 서예가인 창암(蒼巖) 이삼만(李三晩)을 평가한 데서, 다른 하나는 초의 선사가 머물던 대둔사의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가 쓴 ‘대웅보전(大雄寶殿)’ 글씨에 대한 평가와 대응에서이다. 물론 유배가 끝나고 돌아올 때 추사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괴(怪)’에서 ‘졸(拙)’로, 그 인간학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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