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기계의 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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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기계의 결합
  • 이상헌
  • 승인 2021.08.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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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휴머니즘과 불국정토
출처 영화 <써로게이트>. 

영화 <써로게이트(Surrogates, 2009)>는 한 과학자가 자신의 신체장애를 극복하고자 뇌파로 조종할 수 있는 인공의체를 개발하면서 시작한다. 영화 제목인 ‘써로게이트’는 인간의 존엄성과 기계의 무한한 능력을 결합해 만든 대리 로봇을 말한다. 인간은 특수장치를 머리에 쓴 채 집 안에 누워있고, 대리 로봇이 인간 대신 출근하고 클럽에도 놀러 간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인간의 뇌에 직접 연결된 로봇이 오감을 인간에게 그대로 전달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써로게이트가 공격을 당해 그 주인인 인간도 함께 죽는 살인 사건이 발생하는데….

기술적 수단에 의한 인간 향상을 꿈꾸는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은 우리 몸 전반에 걸쳐 기술적 향상을 꾀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몸의 일부 기능에 그치지 않고 몸의 근본적인 부분에까지 적용된다. 그들의 목표는 노화나 인지적 결함 극복은 물론 신체 능력과 두뇌 능력의 비약적인 향상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잠재력을 생물학적 우연의 한계에 가두지 않고, 기술이 허용하는 선에서 무한 확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술이 무한히 발전한다는 가정이 성립한다면, 인간의 잠재력 또한 무한하다고 말할 수 있다.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이 인간 향상을 위해 주목하는 기술도 제한이 없다. 인지 능력 향상과 관련해서 스마트 약물이나 뇌과학에 관심을 갖는데, 그것은 현재 수준에서도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좀더 멀리 내다본다면 인공지능과 로봇을 활용하는 방안이 고려될 것이다. 인공지능의 능력을 인간에게 접목할 수 있다면, 즉 진보된 로봇, 이를테면 안드로이드의 신체 능력을 인간이 직접 이용할 수 있다면, 스마트 약물이나 유전자 편집으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얻게 되지 않을까? 우리가 공상과학 소설이나 영화에서 보았던 인간과 기계의 빈틈 없는 결합을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은 꿈꾼다. 

뇌파로 움직이는 로봇 팔

인간과 기계의 결합을 현재 수준의 기술로 말하면 뇌-기계 인터페이스(Brain-Machine Interface), 약자로 BMI라고 한다. 이것은 컴퓨터를 매개로 인간과 기계를 연결하는 기술이다. 컴퓨터는 인간과 연결된 기계 장치를 통해 인간의 뇌파를 읽고, 이를 해석해서 다시 기계장치로 보낸다. 이렇게 해서 뇌파로 기계 장치를 움직이는 것이다. 중간 단계를 생략해서 보면, 마치 우리가 자신의 의지로 팔을 움직이듯이 머릿속 생각으로 기계 팔을 움직이게 된다. 

뇌와 기계를 처음 고안한 이는 미국의 신경과학자 필립 케네디(Phillip Kennedy)이다. 1998년 그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목 아랫부분이 완전히 마비된 환자의 두개골에 구멍을 뚫고 BMI 장치를 이식했다. 케네디는 거듭되는 실패를 딛고 마침내 환자가 생각만으로 컴퓨터 화면의 커서를 움직이게 하는 데 성공했다. 이듬해에는 독일에서도 BMI 실험이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닐스 비르바우머(Niels Birbaumer)가 두피에 부착해 뇌파를 읽어내는 장치를 매개로 생각만으로 컴퓨터 화면에 글씨를 쓰는 데 성공했다. 

21세기에 들어와서는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BMI 실험들이 성과를 냈다. 뇌에 머리카락 굵기의 가느다란 탐침 96개를 꽂아서 뇌파를 포착해 로봇 팔을 움직이게 하는 실험이 성공한 것은 물론, 이 실험을 1,000km 떨어진 곳으로 뇌파 신호를 전달해 로봇 팔을 움직이는 방식으로도 시도해서 성공했다. 뇌파로 기계를 움직이는 방식이기 때문에 네트워크를 활용한다면 거리의 제한도 넘어설 수 있다. 

2004년에는 뇌에 이식할 수 있는 반도체 칩인 브레인게이트(BrainGate)가 개발되었다. 존 도너휴(John Donoghue)는 25살의 사지마비 환자의 대뇌 운동피질에 1mm깊이로 브레인게이트를 심었는데, 이 환자는 9개월의 훈련 끝에 생각만으로 컴퓨터 커서를 움직여 전자우편을 보내고 게임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BMI에서 환자의 훈련이 중요한 이유는, 뇌파로 기계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기계가 구분할 수 있는 특정 파장의 뇌파를 일정하게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하고, 해당 뇌파를 기계의 특정한 움직임과 짝을 지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단지 팔을 들어 올린다는 생각만으로는 기계가 움직이지 않는다. 도너휴의 환자는 나중에 로봇 팔을 의수로 이식했다고 한다. 

2008년에는 BMI 기술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해이다. 미국의 신경과학자 앤드류 슈워츠(Andrew Schwartz)는 원숭이가 로봇 팔을 움직여 꼬챙이에 꽂혀 있는 과일을 빼먹는 장면을 연출했는데, 이것은 컴퓨터 화면의 커서를 움직이는 것보다 진보한 기술이다. 원숭이가 이 동작을 성공하기 위해서는 원숭이 뇌에 이식된 전극을 통해 수집한 신호를 3차원 공간 정보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컴퓨터 화면은 2차원이지만 현실 세계는 3차원이다. 우리가 실제로 몸을 움직이는 것은 3차원 공간에서이다. 슈워츠의 실험을 통해 비로소 두뇌 신호를 실제 운동으로 전환하는 BMI 기술이 등장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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