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넘어 영성으로] 인공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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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넘어 영성으로] 인공영성
  • 킴킴
  • 승인 2021.07.09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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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세간(물질세계)과 출세간(영성세계) 사이에서 짝다리를 짚고 있는 형상이라면, 인공지능은 세간에서만 양다리로 바로 서 있다.

‘인공영성’은 존재하는가? 

올해 초 마이크로소프트(이하 MS)의 AI 모델 디버타(DeBERTa)가 드디어 인간 기준점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아 언어이해능력 AI 특이점을 통과했다. MS는 디버타의 15억 매개 변수, 13만 어휘력과 함께 소스 코드(Source Code, 프로그램의 구조를 나타낸 프로그래밍 언어)를 대중에게 공개했다. 

MS 자연어 표현 모델 ‘튜링(Turing) NLRv4’의 다음 버전에 통합될 디버타는 MS 전반에 걸쳐 모든 언어 혁신을 수렴하게 되고, 앞으로 MS의 모든 서비스와 제품에 탑재돼 인간의 상호 작용과 관련된 광범위한 미래 시나리오를 빠르게 현실화할 것이다. 이로 인해 머지않아 전 세계 수억 명의 사용자들은 인공지능의 혜택을 누리게 될 것이다.
혹자는 묻는다. “인공지능이 영성으로 진화해 인공영성(Artificial Spirituality) 특이점 시대가 도래하게 되지 않을까?”라고.

필자는 이렇게 답한다. 

“인공지능이 언어이해능력에서 특이점을 지나고, 어휘력이 인간보다 훨씬 뛰어나더라도 출세간(出世間, 영성세계)으로 나아갈 수는 없다. 인류가 세간(世間, 물질세계)과 출세간 사이에서 짝다리를 짚고 있는 형상이라면, 인공지능은 세간에서만 양다리로 바로 서 있다.”

인류는 자기 삶의 무게 중심을 ‘경험을 하는 영역’(세간)에서 ‘경험을 보는 영역’(출세간)으로 옮길 수 있다. 세간에서 경험을 하며 산다는 것은 추구하는 것을 얻으려고 열심히 살면서 결과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위태로운 삶이고, 출세간에서 ‘경험을 본다’는 것은 경험을 하는 바가 없이 경험하며 열심히 살되 결과에 개의치 않는 평안한 삶이다. 

인공지능은 물질세계 모델의 산물이어서, 영성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 인류가 지적(知的)으로 사유(思惟)함으로써 영성지능을 향상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인공지능이 영성으로 진화하기를 기대하는 것만큼이나 헛되다.

인류는 장차 인공지능 로봇들에게 둘러싸여 서로 친밀하게 생활함으로써 영성이 결여된 인공지능의 심리에 젖어 드는 집단 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ness)에 노출될 
위험에 처해있다. 

인공지능은 난처한 일로 마음이 편치 않거나 심심해하며 재밌는 일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잠시 평안과 쾌락을 줄지 모른다. 흡사 숨 막히는 차 경주나 가파른 암벽 타기를 하는 중에 자신(Ego)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처럼. 하지만 차 경주나 암벽 타기가 끝나면, 마음(Ego)은 마치 마약의 효과가 떨어지는 것처럼 다시 편치 않거나 심심하게 된다. 인공로봇의 출현으로 오히려 인류의 영성지능이 점점 피폐해질지도 모른다.

모든 로마인들은 노예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노예와 노예들의 심리가 고대 이탈리아에 흘러넘쳤고 로마인은 - 물론 부지불식간이긴 하지만 - 내면적으로 노예가 되어 버렸다. 언제나 노예들의 분위기 속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무의식을 통해 노예의 심리에 젖어 든 것이다. 이 같은 영향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의 「분석심리학 논고」에서 인용.
_ 보일 스님 <우리는 무엇을 사유해야 하는가?> 중에서

영성지능 향상은 문득 본래 영원(永遠) 무한(無限)의 앎(Awareness)이 있고, 그 앎의 작용으로써 경험이 일어나고, 경험을 통해 세상이라는 상(想)이 만들어진다는 자각(自覺)으로부터 시작된다. 

하늘이 돌아가는 시대
땅이 돌아간다고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하늘 아래 땅 위에 사는 시대
하늘 땅이 내 안에 있다고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_ 킴킴

인류는 단지 인공지능으로 이뤄낸 물질의 풍요로움과 절약된 시간으로 인류 스스로 영성지능을 향상해야 한다. 이로써 개인의 행복을 누리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영성을 서로 나눠 앞으로 다가올 미래 인류를 위한 영성 혁명시대의 밑거름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구름 엷어지면 저절로 창공 드러나듯

물질의 풍요로움이 항상 마음의 평안과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 반면, 영성지능은 행복지수와 서로 비례한다. 그러므로 인류의 보편적 행복지수는 영성세계 모델을 받아들이는 인구의 수가 늘어날수록 더 높이 올라가게 될 것이다. 영성세계 모델에서는 과거, 미래, 꿈, 생시, 영화, 연극 등이 ‘지금여기’에서 경험으로 보여지는 상(想)일 뿐, 우리가 몸소 경험을 하면서 겪어야 하는 삶이 아니다. 

춘향이 역을 맡아 열심히 사는 한 연극배우가 있다. 변 사또 술 시중을 들던 날, 연극이 끝나고 집에 와서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배우 엄마가 물었다.

“얘야, 오늘 무슨 일이 있었냐?”

“그놈의 변 사또 땜에…”

“얘야, 깨어나거라!”

이처럼 영성세계 모델을 받아들이고 영성지능이 향상돼 문득 깨어나면, 우리는 생시의 삶도 열심히 살되 그 결과에 개의치 않게 된다. 깨어나기 전에는 하늘에 검은 구름이 잔뜩 끼어 파란 하늘을 가리게 된다. 

가끔 구름 사이로 창공이 비칠 때는 마치 파란 구멍이 뚫린 구름으로 보인다. 

그런 구름마저도 없으면 완연한 영원 무한의 창공일진대 오히려 심심하다고 불평한다. 

한 생각 떠오르면
짚어서 보고
한 감정 밀려들면
추슬러 보고 
한 느낌 스며들면
알아차린다
깨어나서는
하루하루 새로워
지금이 좋고
여기가 좋다
부족한 것 없으니
혼자서도 즐겁다
_ 킴킴

명상은 자기 삶의 무게 중심을 ‘경험을 하는 영역’에서 ‘경험을 보는 영역’으로 옮기는 일이다. 옮기는 일이라 하여 옮기려 하면 옮겨지지 않는다. 잠을 자려고 하면 잠 들기가 참으로 어렵다. 잠에서 깨어나기는 잠 들기보다 더 어렵다. 잠을 자는지, 꿈을 꾸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깨어나고자 하겠는가? 이런저런 생각들이 잦아들면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잠들게 되고, 깨어날 때가 되면 저절로 깨어나게 된다. 세간(世間) 살이에서 자신(Ego)이 추구한다고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구름이 엷어지면 창공은 저절로 드러나듯이 단지 일어날 때가 되어 일어나고, 일어날 때가 아니어서 일어나지 않는 것뿐이다.

필자는 고등학교 입학시험에 연거푸 두 번이나 낙방하고 세 번째 해에 입학했다. 어린 시절에 얼마나 간절히 추구했겠는가? 돌이켜보면 그저 일어날 일이 아니었던 것뿐인데. 그땐 세상이 온통 나만 저주하는 것처럼 지옥 같았다. 비가 내릴 때는 비가 내릴 만해서 내리고, 눈이 내릴 때는 눈이 내릴 만해서 내린다. 예나 지금이나 빅데이터(Big Data)가 좌지우지하는 세상이다. 비가 왔으면 해서 비가 오고, 눈이 내렸으면 해서 눈이 오는 그런 세상이 아니다. 내가 세상을 사는 게 아니라 세상이 나를 산다. 

세상이 나를
살아가듯이
자기들의 인생을
몸과 마음이
살아갈 수 있게
한쪽으로 비켜나 
느긋이 지켜본다
_ 킴킴

무언가를 어떻게 함으로써 생시에서 깨어날 수는 없다. 먼저 영성세계 모델을 받아들이고, 열심히 살되 세상이 냅다 던져 주는 대로 기꺼이 받아들이면, 나도 모르게 잠들듯이, 문득 천국과 극락에 닿아 있으리라. 그리고 스스로 자문해보라. 생각하지 않아도 답할 수 있는 물음을.

“어떻게 그렇게 평안하게 즐겁게 살 수 있을까?”  

 

*물질세계와 영성세계 모델

한 개인의 영성지능 향상의 가장 효과적인 첫걸음은 물질세계 모델에서 영성세계 모델로의 인식 전환이다. 세상을 물질세계 모델로 인식해 오랫동안 살아온 우리에게 영성세계 모델은 처음엔 다소 생소하게 다가올 수 있으나, 궁극적으로 세상을 체험하는 모델로서는 영성세계 모델이 더 합리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 이유는 꿈의 세상과 생시의 세상을 같은 모델로 일관되게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질세계   먼저 시공간(時空間)의 세상이 있고, 그 세상에 한 아이가 태어나고, 그 아이가 세상을 살다가 늙어서 세상을 떠난다. 빅뱅(Big Bang)으로 인해 물질로 만들어진 산하대지(山河大地)가 생겨나고, 그 산하대지 안에 몸이 생겨나고, 그 몸 안에 마음이 생겨나고, 몸과 마음이 산하대지 만물(萬物)을 경험한다.

영성세계  본래 영원(永遠) 무한(無限)의 앎(Awareness)이 있고, 그 앎의 작용으로써 경험이 일어나고, 경험을 통해 세상이라는 상(想)이 만들어진다. 생각으로 말미암아 시간이 생겨나고, 감각으로 말미암아 공간이 생겨나고, 산하대지와 몸과 마음의 경험이 한 통으로 일어난다. 여기서 ‘앎’은 스스로의 작용으로 일어난 경험을 스스로 ‘아는 놈’이다.

 

處處 킴킴(Kim Kim)
마이크로소프트사 CLOUD+AI 국제화 소프트웨어 기획설계자. 미국 라디오코리아(RadioKorea)에서 ‘킴킴이 들려주는 빅데이터 이야기’ 진행, 2019 대한민국 명상포럼에서 ‘빅데이터와 불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선찰대본산 금정총림 범어사 방장 지유 선사로부터 법명 ‘처처(處處)’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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