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를 치며 생각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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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를 치며 생각한 것들
  • 불광미디어
  • 승인 2021.06.24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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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을 좇는 삶에 관하여

 

피아노를 치며 생각한 것들
저작·역자

오재형 지음

정가 14,000원
출간일 2021-06-22 분야

1) 문학 > 에세이

2) 예술 > 음악 > 음악이야기

책정보

128*188mm | 272쪽|ISBN 979-11-90136-47-1 (0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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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위로

서른두 살 겨울, 홀로 떠난 제주 여행. 시시한 바다를 따분히 바라보고 재미없는 책을 읽다가, 연고도 없는 곳에서 대출받아 치킨집을 차린 친구를 만나 술을 마셨다. 친구와 작별하고 공항 근처 게스트하우스에 들어가 4인실 도미토리 침대에서 누워 다짐했다. ‘아무래도 피아니스트가 되어야겠어.’ 장기하와 얼굴들의 “오래된 마음이 숨을 쉬네”라는 노랫말처럼, 스무 살 무렵 취미 삼아 배운 피아노가 불현듯 숨 쉬기 시작한 것이다.

성인이 되어 뒤늦게 좋아하게 된 피아노를 직업으로 삼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작가는 취미와 직업 사이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사람만이 볼 수 있는 시선으로 아마추어와 전문가의 자격을 두고 갈등하는 모습을 솔직하게 풀어놓는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에 알맞은 시기가 있고, 그것을 직업으로 택하기에는 일정한 경로가 정해져 있다는 ‘생애주기 이데올로기 사회’에 균열을 내고 싶은 소심한 욕망 한 스푼도 함께.

작가는 자신이 20대에 그린 청사진 중 실현된 것이 하나도 없다고 이야기한다. 정규 코스를 밟은 건 은퇴한 미술뿐이다. 등단한 적 없지만 책을 냈고, 전공하지 않았음에도 영화를 찍고 피아노를 연주해 관객을 만난다. 그런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좋아하는 일을 묵묵히 좇다 보면 누군가는 꼭 손을 잡아 준다는 것. 이 책 역시 그렇게 쓰였다. 마지막 장을 덮을 무렵, 당신의 ‘오래된 마음’이 다시 숨을 쉬기를.

저자소개 위로

오재형

화가(였)고, 영화감독이고, 최근에는 피아니스트다. 비록 그림은 절필했고,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그런’ 영화감독, ‘그런’ 피아니스트는 아니지만, 이 모든 호칭으로 불리며 살고 있다. 화가 은퇴전 <안녕>을 비롯해 개인전을 여럿 치렀고 <강정 오이군>, <덩어리>, <봄날> 등 단편영화를 다수 연출했으며 공황장애 경험을 담은 에세이 《넌, 생생한 거짓말이야》를 썼다. 이렇게 소개하면 “종합 예술인이시네요!”라는 말을 들을까 봐 예술 잡상인’이라고 스스로 소개하고 다닌다.

게스트하우스 침대에서 코 고는 소리 듣다가 불현듯 취미로 해 오던 피아노 연주를 본격적으로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2016년 ‘일년만 미슬관’에서 <블라인드 필름>이라는 제목 아래 영상 상영과 피아노 연주를 결합한 공연을 처음 시도했다. 이 방식에 자신감을 얻어 <더 하우스 콘서트: 오재형의 비디오 리사이틀> 무대에 올랐고, 개인전 <피아노 프리즘: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개최했다.

아직 남아 있는 미술가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극장과 전시장을 오가며 영화를 상영하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활동을 즐겁게 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누르는 피아노 건반 소리에 늘 설렌다.

http://www.thelump.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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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위로

prologue

Part 1. 나와 피아노의 역사

나는 피아노에 싹수가 있다

음대에 출몰하는 미대생

군대와 피아노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바이엘 논쟁

음악을 미술로

작가노트: <COSMOS>

절필 선언

작가노트: <안녕>

오래된 마음이 숨을 쉬네

예술의 잔당들과 등촌동 피아니스트

작가노트: <BLIND FILM>

봉준호와 조성진, 그리고 나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법

꿈의 피아노 스타인웨이

내게 필요한 이변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주시겠어요?

피아니스트의 집

무대 공포증에 대처하는 자세

오재형의 비디오 리사이틀

Part 2. 피아노를 치며 생각한 것들

다시, 계란을 쥐듯이

벽 너머의 피아니스트

어떤 투쟁

이제 노련한 어른이니까

안 되어도 그냥 지나가겠습니다

나는 피아니스트인가 아닌가

내가 돋보이고 싶어서요

은근하고 그럴싸한 작곡의 역사

아저씨, 유튜브 하세요?

작가노트: <피아노 프리즘: 보이지 않는 도시들>

여기까지 가져온 피아노뿐

피아노 앞에서는 차별이 없기를

누나와 나의 역마살

내성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작가노트: <모스크바 닭도리탕>

더도 말고 딱 1인분의 예술

불빛 아래서

올까 봐 두려운 마음으로

예술계로 데뷔하려는 사람들에게

Part 3. 피아놀라

피아놀라

epilogue

상세소개 위로

음대에 출몰하는 미대생

칸에 입성한(?) 영화감독이 되다

성인이 되어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 피아노를 배운 건 (많은 이가 그러했듯) 아홉 살 무렵. 너무 ‘노잼’이라 바이엘도 떼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큰일을 앞두고는 뭐든 재밌어 보이는 걸까? 입시를 앞두고 누나의 피아노 연주가 감미롭게 들렸고, 대학 입학과 동시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미대에 입학했지만 피아노가 너무 좋아 음대에서 살았다. 피아노과 신입생이 학과 선배인 줄 알고 90도 인사를 할 정도로.

군대 유격 훈련장에서 등으로 바닥을 쓸면서도 피아노만 생각했고, 오직 피아노가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교회 성가대에 들어갔다. 그런데 웬일일까, 전역과 동시에 그 마음이 싸그리 사라졌다. 다시 본업인 미술로 돌아와 학교를 졸업하고 세 차례의 개인전을 열었다.

서른 즈음에는 영화에 빠져들었다. 사회 이슈에 관심을 두고 매년 방문하던 제주 강정마을에서 영상 워크숍에 참가한 게 계기였다. 단편영화를 다수 연출했고, 국내 몇몇 영화제에 초정받아 ‘감독님’ 소리를 듣게 되었다. 해외 영화제에 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고, ‘단편영화(short film)’를 자꾸 ‘반바지 영화’로 옮기는 구글 번역기를 붙잡고 끝끝내 칸 영화제에 자신의 작품을 출품하여 초청장을 따냈다. 물론 봉준호급이나 박찬욱급은 아니지만, “멸치도 생선”이다.

“오래된 마음이 숨을 쉬네”

서른두 살, 피아니스트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다

갤러리보다 스크린 앞에 서는 일이 잦아질 무렵, 전시 제의를 받는다. 오랫동안 미술 작업을 하지 않았던 터라 고민하다가 덜컥 수락한다. 화가로서의 은퇴전을 열겠다는 조건으로. 그림 그리기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열정이 사라졌지만, 화가는 유년 시절부터 품어온 꿈이기에 ‘끝’이라는 이벤트를 연 것이다.

머리를 식힐 겸 홀로 제주 여행길에 올랐다. 시시한 겨울 바다를 따분히 바라보고, 재미없는 책을 읽다가, 연고도 없는 제주도에서 대출받아 치킨집 차린 친구를 만나 술 한잔 기울였다. 친구와 작별하고 게스트하우스 4인실 도미토리 침대에 누워 다짐했다. ‘아무래도 피아니스트가 되어야겠어.’ 당시 서른두 살의 나이었다.

정말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었다. “오래된 마음이 숨을 쉬네”라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랫말처럼 스무 살 때 배운, 당시에는 정말 너무 좋아서 하루종일 연습하던 피아노가 떠오른 것이다. 피아노와 영상, 영상과 피아노. 무언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차피 수익으로 이어지지 않을 순수예술 세계에서 다짐은 다음의 사고회로를 거쳐 현실이 된다. ①하고 싶은 걸 한다 ②재미없으면 손절한다 ③망할 것도 없다.

“그냥 피아노 치는 게 좋아서”

프로와 아마추어 사이, 그 틈에서 보이는 것들

서울시 등촌동의 시한부 전시 공간 ‘일년만 미슬관’에서 작가는 <블라인드 필름>이라는 제목으로 영상 상영과 피아노 연주를 결합한 공연을 처음 시도한다. 관객의 흥미를 확인하고 이 방식에 확신을 품는다. 이런저런 무대와 극장, 갤러리를 오가며 공연하던 작가에게 뜻밖의 은인이 나타난다. <더 하우스 콘서트>의 기획자 박창수 피아니스트로부터 공연을 제안받은 것이다. <더 하우스 콘서트>는 조성진과 손열음 등 내로라하는 찐(?) 피아니스트들이 오르는 무대. 그렇게 그는 조성진과 같은 피아노 건반을 누르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혼란스럽다. ‘피아노를 전공하지 않았지만 무대에 오르는 나는 피아니스트인가 아닌가?’ 작가는 취미와 직업 사이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사람만이 볼 수 있는 시선으로 아마추어와 전문가의 자격을 두고 갈등하는 모습을 솔직하게 풀어놓는다.

“그냥 피아노 치는 게 좋아서.” 작업의 의미를 캐묻는 공격적인 질문에 ‘단지 좋아서’라고 대답하는 것은 왠지 아마추어 같아 보인다. 하지만 내 진심이다. 이어서 속내를 더 꺼낸다. “내가 돋보이고 싶어서요.” _본문에서

단지 좋아서, 나아가 ‘내가 돋보이고 싶어서’ 연주한다. 예술 작업으로 돈을 엄청나게 버는 것도 아니고 어마어마한 명예를 누리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가장 우선시할 건 내 행복이고 즐거움이다. 한 시간 넘게 연습하면 겨우 악보 두 마디 정도를 연주하는 미술가의 속도로 피아노를 친다. 스트레스가 재미를 추월하지 않도록 경계한다. 연습을 반복해도 안 되면, 정중히 이야기하면 된다. “선생님, 저는 이제 이 연습이 좀 지겹습니다. 안 되는 것은 알지만, 지나가겠습니다. 이제 좀 다른 것을 하고 싶습니다.”

작가는 자신이 20대에 그린 청사진 중 실현된 것이 하나도 없다고 이야기한다. 정규 코스를 밟은 건 은퇴한 미술뿐이다. 등단한 적 없지만 책을 냈고, 전공하지 않았음에도 영화를 찍고 피아노를 연주해 관객을 만난다. 그런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좋아하는 일을 묵묵히 좇다 보면 누군가는 꼭 손을 잡아 준다는 것. 이 책 역시 그렇게 쓰였다. 마지막 장을 덮을 무렵, 당신의 ‘오래된 마음’이 숨 쉬길 바란다. 그것이 피아노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책속으로 위로

미대 합격 통지서를 손에 쥐자마자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피아노 학원 문을 두드렸다. 그렇게 군 입대를 앞둘 때까지 나는 1년 반 동안 피아노에 온 열정을 쏟았다. 이렇게까지 빠질 줄은 나도 몰랐다. 그림이고 나발이고 다 뒷전이었고 오직 피아노만 쳤다. ‘뭐 하나에 미쳐 봤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면 이 시기의 피아노다. 미대보다는 음대에 더 자주 출몰해 도둑 연습을 일삼던 내게 이듬해 피아노과 신입생이 복도에서 90도 인사를 했을 정도였으니까. 나는 “그래, 대학 왔다고 너무 놀지는 말고.”라며 덕담을 건네고선 바이엘 악보를 옆구리에 끼고 홀연히 사라지곤 했다.

_24쪽

잘 해내고 싶은 마음뿐이다. 망하지 않아야 한다. 이야기가 필요하다. 요즘 유행하는 에세이 제목처럼 실패하고 상처받아도 괜찮다며 등을 토닥이는 이야기, ‘다들 그렇잖아요?’라며 무엇을 대차게 시도했다가 망한 이야기, 안 됐던 경험을 빌려 삶의 소소함을 공유하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이야기 같은 건 다 필요 없다. 그런 이야기들 이제 지겹다. 노력하고 노력해서, 또 운도 따라 줘서 결국에는 누가 봐도 멋지게 목적을 달성하는, 그런 성공적인 서사가 내겐 절실하다.

(...) 어딜 둘러봐도 모두가 힘든 시대에, 불평등과 고통이 넘치는 세상에, 최근 읽은 소설의 한 구절처럼 ‘망함조차 없이 이어지는’ 총체적 허무의 세계에서, 나 정말 죄인의 심정으로, 오로지 독백으로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나는 내일이 기대돼. 그것도 아주.’

_86~86쪽

막대한 부담과 공포 속에서도 결국 내가 준비한, 하고 싶은 것을 다 했다. 마지막 음을 누르자 뭔가를 이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이지 이 순간은 죽을 때까지 기억날 거 같다. 팔짱 낀 무심한 관객이 아니라 나를 적극적으로 응원하고 지지해 주는 사람들의 따뜻한 눈빛이 가득했던 그 환대의 공간을 잊지 못할 것이다. (...)

공연 당일만큼이나 생생하고 소중한 기억이 있다. 홀로 공연을 준비하며 매일 피아노 연습실로 출퇴근했던 길이다. 퇴근하는 직장인들에 섞여 어둑해진 도시를 걸으며 생각했다. 불가능해 보이던 미션을 하나씩 채워 나가고, 단 하루의 미래를 상상하며 뭔가를 만드는 짓이 정말 행복하더라. 석양의 노란빛이 건반을 물들이는 8번 방 피아노 앞에서 버벅거리는 손가락이 제자리를 찾아가며 손에서 마침내 ‘음악’이 흐른다고 생각할 때마다 자주 희열을 느꼈다. 인생에서 행복과 불행의 총량이 결국 평균으로 수렴된다면, 곧 다가올 불행이 걱정될 만큼 과분한 행복을 느꼈던 한 해였다.

_109~110쪽

‘발전’이라는 개념을 삭제한 나는 ‘전문가’와 ‘취미생’이라는 두 테이블이 만나는 가운데에 앉아 그때그때 입맛에 맞는 음식만 골라 먹는 경계인의 포지션을 즐기기로 했다. 필요 이상으로 진지하지 않기로 작정한다. 피아니스트라는 직업이 부담이 되지 않도록 방어한다. 스트레스가 재미를 추월하지 못하게 그어 놓은 내면의 정지선에서 브레이크를 밟는다. 공연할 때는 그 어떤 프로 음악가보다 진지한 태도로 무대에 임한다. 다만 레슨받을 때는 취미생의 가벼운 태도로 돌변해 불리한 상황을 무마한다. 결정적으로 성인 취미반은 선생님에게 이런 멘트를 날릴 수도 있다.

“선생님, 저는 이제 이 연습이 좀 지겹습니다. 안 되는 것은 알지만, 지나가겠습니다. 이제 좀 다른 것을 하고 싶습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뭐 그런 의미가 있겠지. 없으면 말고.

_136~137쪽

“그냥 피아노 치는 게 좋아서.” 작업의 의미를 캐묻는 공격적인 질문에 ‘단지 좋아서’라고 대답하는 것은 왠지 아마추어 같아 보인다. 하지만 내 진심이다. 이어서 속내를 더 꺼낸다. “내가 돋보이고 싶어서요.”

많은 작가들이 그렇듯 나도 내 작업만으로 돈을 엄청나게 버는 것도 아니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가장 우선시할 마음은 내 행복이고 즐거움이다. (...) 공연을 준비하고 건반 앞에서 긴장하고 조급해하고 실수하고 얼떨결에 연주를 마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사람들의 칭찬을 받는 게 바로 ‘나’라는 사실이 좋다. 다른 이유는 필요하지 않다.

_144~145쪽

간밤에 말이 너무 많았나. 지난 술자리를 후회한다. 왜 갑자기 짧은 순간 열변을 토했나. 행동으로 실천하지도 않는 의제에 관해 마치 오랜 기간 숙고해 온 사람마냥 옳은 말들을 너무 쏟아 냈다. 책에서 본 내용들, 어디서 보기만 했거나 듣기만 했던 멋있는 말들, 국가폭력, 젠더, 장애, 성소수자 등 이런 문제가 중요하다고, 오직 말로만 이루진 세계 안에 편안하게 거주하는 스스로를 바라보며 묻는다. 너 그럴 자격이 돼? 20대 후반의 나는 골방 예술가를 벗어나 부당한 사회를 바꾸려 거리로 뛰쳐나온 현장 예술가를 동경했다. 내 방향도 그쪽일 거라 확신했다. 거긴 뜨거웠다. 그러나 뜨거움이 지나가자 내 진짜 모습을 보았다. 나는 요즘 좁은 방에 스스로를 격리시키고 피아노만 친다. 이런 나도 액티비스트일 수 있을까.

_171쪽

나는 창작인으로서의 삶에 더 근본적인 물음이 생겼다. 예술가로서 더 많은 사람들이 내 작품을 향유할 거라는 기대감, 예술가로서 셀럽이 되길 희망하는 욕구를 도대체 어느 기준까지 설정하고 살아야 할까? 명확한 기준이 없다면 불빛은 언제나 허상이 되지 않을까? 언제나 다음 불빛을 향해 끝없이 달려가는 피곤이 인생 전체를 지배하지는 않을까? ‘호오오오오옥시 모르니까!’라는 심정으로 쏟아붓는 노력, 더 잘될 거라는 가능성은 오히려 ‘가능성의 지옥’이 되어 족쇄처럼 삶을 불행으로 인도하지는 않을까?

나 역시 여전히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락스타’를 꿈꾸지만 겉으로는 달관한 척 위선을 자주 부리고, 그 쿨한 위선에 때론 진심이 묻어 있다. 사실 잘 모르겠다. 나는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안 괜찮은 것 같기도 하다. 특히 ‘신진’의 껍데기를 벗고 잡다한 경력이 꽤 쌓인 나와 같은 30대 창작인들은 영화를 보며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지… 실로 궁금하다. 당신의 불빛은 무엇인지, 어디인지.

_207쪽

예술가에게 주어진 불안정한 미래가 꼭 나쁘지만은 않다. 내년에 어떤 계획에 연루되어 무슨 작업을 하고 있을지 아무도 모르고, 나는 그 사실이 자주 기대되고 신난다. 그럼에도 불안은 어쩔 수 없을 때가 있다. 유난 떨고 싶을 때는 이 불안을 공유해 줄 이를 찾아 같이 덜덜 떨다가, 때가 되면 묵묵히 오랜 시간 작업해 보라는 것 이외에는 사실 할 말이 없기도 하다. 그러다 보면 꼭 누군가 손을 잡아 주더라.

_2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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