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스님 ‘마음의 초점을 바꾸다: 선(禪), 그리고 간화선’
어떤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에게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없다.”
“부처님은 일체중생 모두가 불성을 갖고 있다 했는데, 왜 개에게만은 없다는 겁니까?”
“자기를 ‘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업식(業識)].”
-『벽암록』 중에서
붓다는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고 했는데 조주 스님은 어째서 개에게 불성이 없다고 했을까?
운문 스님은 “도(道)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똥막대기다[幹屎厥, 간시궐]”라고 말한다. “불법(佛法)의 대의(大義)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조주 스님은 “뜰 앞의 잣나무다”라 대답한다. 이처럼 선문답(禪問答)은 질문에 대한 답으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우리가 아는 상식과 통념과는 다른, 즉 격에 벗어난 대답으로 진리를 깨치는 대화법이다.
선문답은 우리가 기본적으로 갖는 믿음과 가치관을 무너뜨리며 화두(話頭)를 참구하게 한다. 이렇게 화두를 간(看, 볼 간)함으로써 본래의 성품자리(본래면목)를 보는 참선법을 간화선(看話禪)이라 한다.
6월 12일 20여 명의 사람이 서울 성북구 흥천사 대방에 모여 좌복을 깔고 앉았다. 2021서울릴랙스위크 첫 번째 시간인 ‘마음의 초점을 바꾸다: 선(禪), 그리고 간화선’ 강연을 듣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다. 서울릴랙스위크는 ‘일상 속, 마음 공부’를 주제로 10월까지 매월 둘째 주 토요일 서울 흥천사 현장과 온라인으로 동시에 진행되는 집중 명상수행 프로그램이다.
현재 김천 수도암에서 수행 중이며 저서 『질문이 멈춰지면 스스로 답이 된다』로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원제 스님이 서울릴랙스위크 수행주간 첫 문을 열었다. 이날 오후 2시부터 5시 30분까지 3교시로 진행된 강연에는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에 따라 개인별 마스크 착용과 손 세정은 물론 공간 방역도 철저하게 지켜 진행됐다.
1, 2교시는 선의 유래에서 간화선까지의 흐름을 살펴보고, 화두·공안의 원리와 삶으로 펼쳐내는 간화선을 소개했다. 3교시는 화두 실참과 현장 참가자 및 온라인 접속자들과 원제 스님의 실시간 질의응답으로 진행됐다.
| 간화선 수행 과정
‘선’에 대한 인식을 묻는 원제 스님에게 참가자들이 하나같이 “너무 어려워요”라고 입을 모은다. 그 답답함에 황금 같은 휴일에, 그것도 초여름 날씨에 뜨거운 햇볕을 받으면서 흥천사까지 왔을 터.
원제 스님은 “흔히들 선, 선문답은 기존의 사고 이해패턴을 넘어서기 때문에 어렵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며 “그러나 답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 대답을 자유롭게 할 수 있을 정도로 자유로워지는 게 중요하다”며 간화선 수행법의 의미를 짚었다.
간화선은 의심을 기반으로 화두 참구하는 수행법이다. 참구란 강렬한 몰입을 말한다. 원제 스님은 “간화선은 화두에 뛰어들어 의심과 한몸이 되는 것”이라 설명했다.
“간화는 생각의 길이 끊어짐으로써 본래 성품자리가 드러나는 수행방식이에요. 주관과 객관이라는 주객 프레임이 깨지는 것, 전체를 보는 시선과 안목을 획득하게 되는 과정이죠. 내가 실체로 있는 게 아닌, 주객이 끊어짐으로써 전체를 보는 방법이죠.”
간화선 수행은 화두, 즉 말과 생각이 끊어진 조사의 관문에서 의심을 일으켜 ‘의정(疑情)’, ‘의단(疑團)’, ‘의단독로(疑團獨露)’, ‘타성일편(打成一 片)’, ‘은산철벽(銀山鐵壁)’,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이다. 선지식이 제시한 화두에 의심하는 마음을 일으키면 이 의심이 처음에는 끊겼다가 이어졌다 한다. 그러다가 의심이 점점 지속하게 되고 마침내 하나의 덩어리, 즉 의단이 된다. 이후 의심 하나가 탁 드러나는 의단독로의 단계가 찾아오고 타성일편, 즉 주관과 객관이 하나로 녹아들어 완전히 한덩어리가 되는 몰입의 단계에 돌입한다. 이 단계에서는 먹고 자는 것도 잊어버릴 만큼 의심이 너무 커져 생각이 깃들 여지가 없게 된다. 이러한 타성일편의 경지가 이어지다가 사유의 모든 출구가 차단돼 길이 사라져버리는 ‘은으로 된 산과 쇠로 만든 벽’이라는 뜻의 은산철벽에 이른다. 그러한 상태가 지속하다가 어느 순간 문득, ‘기연(機緣)’ 즉 특별한 인연이 만나 은산철벽이 무너지고 모든 것이 환하게 드러나는 깨침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이처럼 화두를 실마리로 깨달음에 이르겠다는, 그래서 자유에 도달하겠다는 ‘화두일념’이 간화선 수행법의 핵심이다. 그 과정에는 무엇보다 간절함이 있어야 한다고 원제 스님은 강조했다.
“화두를 참구하는 수행자에게는 고봉 선사가 말한 세 가지 요건[三要], 즉 대신심(大信心), 대분심(大墳心), 대의심(大疑心)이 필요합니다. 신심, 분심, 의심 모두 분리되지 않는 한통이에요. 이 세 가지 마음이 있으려면 정말 간절해야 해요. 자신의 본래면목을 찾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 생사의 고통을 뛰어넘어 근원적인 자유를 실현하겠다는 그 간절한 ‘발심’이 있어야 하죠.”
| 인식하되 분별하지 않는다
깨달음은 어떤 기회를 통해 맺어진 특별한 인연으로 온다. 붓다는 새벽 별, 나옹 스님은 매화, 경봉 스님은 새벽 촛불, 향곡 스님은 떨리는 손을 ‘보는 찰나’ 깨달았다. 고봉 스님은 목참, 조주 스님은 세발(발우 씻기), 서산 스님은 닭 우는 소리를 ‘듣고’ 깨달았다. 운문 스님은 목주 스님이 쾅 닫아버린 문에 발목이 부러지는 순간, 비명을 지르는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깨달음을 얻었다.
깨달음의 인연을 설명하던 원제 스님이 갑자기 앞에 놓인 싱잉볼을 쳤다. 한순간 장내가 조용해지며 참가자들 사이에 적막이 흘렀다. 싱잉볼 소리의 여운이 잦아들 때쯤, 스님이 입을 뗐다.
“생각해보세요. 새벽 별은 부처님만 보이나요? 매화는요? 견봉 스님만 촛불을 봤겠어요? 닭 우는 소리는 서산 대사만 들었나요? 이 싱잉볼 소리처럼 하나도 다를 바 없어요. 듣는 인연은 다 똑같아요. 다만 그게 막혀버린 거죠. 운문 스님은 자기의 비명을 자기가 듣고선 깨달았어요. 듣는 인연은 똑같은데 스님은 왜 깨달았을까요? 분별하지 않은 상태에서 곧장 들어서 깨달은 거예요.”
이어서 에어컨을 가리키며 스님이 말을 이었다.
“에어컨 소리는 아까부터 에엥- 하고 계속 들렸어요. 그런데 여러분은 이 에어컨 소리가 법문으로 들리세요? 무정도 설법한다는데, 저 에어컨 양반은 아까부터 저렇게 설하고 있었어요. 여러분은 저의 이 말소리만 듣지 말고 저 소리를 들어야 한다니까요. 이미 여러분은 삼매 속에 있어요. 옷 입고, 밥 먹고, 졸고…. 진리를 곧장 알 방법이자 가장 가까운 인연법, 그게 바로 ‘나’에요. 진리는 나라는 ‘실체’가 아닌, 나라는 ‘인연’을 통해 드러나지 결코 딴 거로 드러나지 않아요. 한순간 비춰볼 수 있다면 우리 모두 성인이죠.”
| 삶의 고통, 깨달음의 인연
3교시가 되자 참가자들이 직접 10분간 간화선을 체험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원제 스님의 지도 아래 참가자들은 반가부좌 또는 결가부좌를 한 뒤 손을 다리 위에 편안히 올려놓았다. 눈은 반만 뜬 채 1, 2m 앞을 내려다보며 허리를 세우고 양어깨에 힘을 뺐다. 호흡은 자연스럽게 하되 혀를 말아 입천장에 닿도록 했다.
“좌선이 잘 된다, 안 된다 생각 말고 간절하고 진솔하게 그렇다고 너무 힘줘서 하지 말고, 그렇게 좌선하면 됩니다. 조주 스님은 왜 개에게 불성이 없다고 하셨는지 10분간 이것을 의심해보세요.”
수행 실참이 끝난 뒤 수행에 대한 참가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한 현장 참가자는 자해로 몸을 크게 다쳤지만 수행으로 극복한 경험을 나누며 스님에게 “화두를 지금 이 순간으로 잡고 선 수행을 시작했는데, 이렇게 하는 게 맞는지”를 물었다. 이에 원제 스님도 십대 때 자신도 자해 시도를 했던 경험을 나누며 참가자를 위로했다.
“저 역시도 어렸을 때 고통을 굉장히 민감하게 느꼈어요. 현실과 5cm 떨어져 있는 듯한 분리감을 느꼈죠. 굉장히 괴로웠고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었어요. 그 당시 자해의 흔적이 지금도 남아있는데 예전엔 부끄러웠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아요. 이런 괴로워했던 인연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으니까요. 삶의 고통은 깨달으라고 오는 것이기도 해요.”
온라인에서도 참가자들의 질문이 활발히 이어졌다. 한 온라인 참가자는 “간절함이 없어서인지 화두 수행이 어렵다”며 “그런데도 왜 자꾸 간화선 수행이 궁금해지는지 모르겠다”고 물었다.
원제 스님은 “간절함과 궁금함은 다르지 않다”며 “화두는 개인마다 약간씩 다를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이어 “‘개에게 왜 불성이 없는가’와 같은 화두가 의심이 안 난다고 하더라도 삶 전체 혹은 내 존재에 대한 의문이 있으면 된다”고 답했다. 또 “간절한 마음이라는 게 딴 게 아니라 삶에 대한 총체적인 의문이 있다면 그게 곧 간절함”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불광미디어와 불교신문, 흥천사가 공동으로 개최하는 2021서울릴랙스위크 수행주간은 7월 자현 스님의 ‘명상의 모든 것: 나에게 맞는 명상법’, 8월 광우 스님의 ‘기도와 염불: 기도의 가치와 올바른 기도법’, 9월 문광 스님의 ‘연공, 지치지 않고 계속하는 힘’, 10월 보일 스님의 ‘조화와 공생: AI시대, 나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법’ 온·오프라인 강연을 남겨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