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아가며 새로워지는 것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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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아가며 새로워지는 것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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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6.14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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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철 스님 산문집

 

낡아가며 새로워지는 것들에 대하여
저작·역자 원철 정가 17,000원
출간일 2021-06-15 분야 에세이
책정보

판형_150*190mm|두께_19mm|312쪽|4도||ISBN_978-89-7479-926-7 (0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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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위로

우리 시대 탁월한 문필가 원철 스님이 4년 만에 펴낸 신간!

5년간의 답사를 바탕으로 60여 장소와 1백여 명의 이야기를

씨줄 날줄로 엮은 역사문화 기행기

불교계 대표 문장가 원철 스님이 4년 만에 펴낸 산문집. 5년간의 답사와 고증을 바탕으로 60여 개의 장소와 1백여 명의 이야기를 담아낸 역사문화 기행기이다. 저자 원철 스님은 5년에 걸쳐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등 한자문화권 나라의 의미 있는 곳을 틈틈이 찾았다. 반나절의 산책에서 한 달간의 긴 여행까지. 그 여정에서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을 갈무리하고, 역사적 고증을 위해 온갖 문헌을 섭렵했다. 관련된 고전의 명문名文과 선시禪詩를 찾아내어 풍성함을 더했다.

저자의 필력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나무 ․ 사찰 ․ 정자 ․ 차茶 ․ 초상화 ․ 비석 등 우리가 짐작하는 오래된 것들의 단순한 의미를 곱씹는 대신, 뜻밖의 시선으로 시간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을 발굴한다. 수백 년 넘은 백송을 이야기하면서 고사목 그루터기를 그대로 두고 지은 현대식 건물을 슬쩍 끼워 넣고, 이순신 장군이 전쟁 중에 병사들을 위해 남해바다에 켠 연등을 광화문광장으로 불러오고, 사물을 더 잘 보려는 목적보다 오히려 마음을 감추는 역할을 한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안경의 매력을 말한다. 낡아가는 것은 우리의 생각일 뿐, 세상과 시간은 언제나 새롭다는 것을 저자는 은근하게 일깨운다.

저자소개 위로

지은이 원철

한문 불교 경전과 선사들의 선어록 번역 및 해설 작업 그리고 강의를 통해 고전의 현대화에 일조하는 한편, 일간지 등 여러 매체에 전문성과 대중성을 갖춘 글쓰기로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저서로 『집으로 가는 길은 어디서라도 멀지 않다』, 『아름다운 인생은 얼굴에 남는다』, 『스스로를 달빛 삼다』, 『할로 죽이고 방으로 살리고』 등이 있다.

해인사승가대학 학장, 대한불교조계종 불학연구소장과 포교연구실장을 지냈으며,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장으로 있다.

목차 위로

∙ 들어가며

기대를 머금고 가는 길도 길이요,

헛걸음치고 돌아오는 길도 길이다

 

1 만남은 이야기를 만들고

이야기는 다시 만남을 만든다

아버지 생각나면 냇물에 비친 내 얼굴 보네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불가근불가원의 지혜

정은 도화담의 물보다 깊어라

집현전 학사들의 템플스테이

문을 닫은 자가 다시 열 것이다

전쟁 영웅 사명 대사의 귀거래사

물소리 듣기 위해 수성동을 찾다

덕을 쌓는 집안에는 좋은 일이 많다고 하더라

봄날 하루해는 기울고 갈 길은 멀기만 하네

사월 좋은 날 누군가 봄비 속에서 찾아오리라

달빛은 천년을 이어 온 군자의 마음이라네

친족의 그늘은 시원하다

향 연기도 연기고 담배 연기도 연기다

사찰과 향교와 관청의 목재가 다르랴

가정식 우동집과 백운 선생

인물은 가도 글씨는 남는다

마음을 감춘 안경

때가 되어야 비로소 붓을 쥐다

눈에 보이는 다리, 보이지 않는 다리

오대산과 가야산, 만남과 은둔

걸리면 걸림돌, 디디면 디딤돌

 

2 길은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한다

녹번동, 뼈를 튼튼하게 해주는 고갯길

복우물에도 도둑 샘에도 맑은 물이 넘친다네

천 년 전 재앙이 오늘의 축복이 되다

가만히 물을 바라보는 재미

좋아하면 반드시 찾게 된다

영원한 ‘중심’은 없다

사찰에 카페와 갤러리를 덧입히다

조선왕조 탯자리를 찾아가다

고사목 그루터기에서 사람 꽃이 피다

소소한 갈등은 호계삼소로 풀다

낡아가며 새로워지는 거문고

장의심승, 서울에서 제일가는 풍광

‘갑’절이 있으면 ‘을’절도 있다

한문・몽골어・만주어로 동시 기록된 글로벌 비석

같은 강물도 지역에 따라 이름을 달리하네

길에도 생로병사가 있다

스마트폰 속에서 떠오르는 새해 일출

코로나 바이러스가 가르쳐 준 연기의 법칙

이순신의 후예들이 광화문광장에 연등을 밝히다

탄천에는 동방삭이 숯을 씻고 있다

 

3 삶은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더 아름답다

부음정에 깃든 조선 선비의 의리

지혜로움은 까칠하지만 자비로움은 부드럽다

통달한 자가 석가와 노자를 어찌 구별할까

숨고자 하나 드러난 김시습, 숨고자 하여 완전히 숨은 김선

다리 밑에서 하룻밤을 묵다

한국 수묵화 대가의 아틀리에에서

출출하면 밥을 먹고 피곤하면 눈을 붙인다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은

비록 땅 위에 살지만 날개를 잊지 말라

촉석루에 앉은 세 장사

어계 할아버지가 낚시 오는 날엔 푸르름이 더하니

한 눈이라도 제대로 갖추고 살라

세검정 맑은 계곡물 위로 자동차도 흐르네

만릿길을 걷는 것은 만 권 책을 읽는 것

서호에 버려지고 태호에서 꽃을 피우다

안심을 복원하다

도인무몽, 건강한 사람은 꿈에 매이지 않는다

‘디지로그’, 도장과 사인

노란 국화 옆에 하얀 차꽃이 피었더라

세우는 것도 건축이요, 부수는 것도 건축이다

서울 종로 거리가 탑골공원에 진 빚

 

∙ 부록

낡아가며 새로워지는 것들(장소)

낡아가며 새로워지는 것들(인물)

상세소개 위로

‘노마드’ 원철 스님과 떠나는

방구석 역사문화 기행

‘우리 시대 탁월한 문필가’, ‘법정 스님을 잇는 불교계 문장가’로 잘 알려진 원철 스님. 9권의 저서를 펴내면서 스님의 수식어가 하나 더 늘었다. 바로 ‘노마드(Nomad) 스님’. 산사에서 도시를 오가며 수행승과 수도승首都僧으로 변신해온 스님의 이력 덕분이다. 장소의 이동이라는 1차적 의미만이 아니다. 한문 경전과 선어록 풀이 등 고전의 현대화에 일조해온, 생각의 이동과 변화에 막힘없는 저자의 자유로운 사고방식의 의미가 더 크다.

『낡아가며 새로워지는 것들에 대하여』는 원철 스님의 ‘노마드’ 면모가 돋보이는 책이다.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등 장소의 이동은 물론 선비, 임금, 승려, 예술가, 문필가 등 옛사람들의 숨은 이야기, 우리 곁에서 함께 숨 쉬고 있는 오래된 유물과 유적지 등 시공을 넘나드는 사유의 진폭을 그대로 담고 있다. 그 바탕에는 모든 장소를 일일이 답사하고 관련 문헌을 뒤져 역사적 의미를 고증하고, 명문과 선시를 찾아 더한 수고로움이 있다. 물론 기대하고 길을 나섰다가 허탕을 치고 온 적도 여러 번이다. 영감을 느끼지 못했다는 게 그 이유다. 그럼에도 저자는 그 자체로 좋았다고 말한다. 기대를 머금고 가는 길도 길이요. 헛걸음치고 돌아오는 길도 길이라는 것이다. 인문학적 해석과 문학적 감흥이 어우러진 이 책의 미덕은 이러한 저자의 은근한 치열함 덕분이다.

낡아가는 것은 우리의 생각일 뿐,

세상은 언제나 새롭게 흐른다

이 책에 수록된 62편의 글 속에는 60여 개의 장소와 100여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등장하는 장소는 역사와 문화가 서려 있는 오래된 곳이라는 점 외에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바로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이야기가 쌓이고, 그럼으로써 더더욱 의미가 더해졌다는 것이다. 한 예로, 서울 북한산 자락의 진관사는 조선 시대 집현전 학사들이 머리를 식히기 위해 ‘템플스테이’하고, 박팽년이 와서 한양 도성을 내려다보며 시를 짓고, 성삼문이 객실에서 묵었던 곳이다. 억울하게 죽은 원혼을 달래 주는 수륙재가 열렸고, 6 ․ 25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한 젊은 비구니 스님이 우연히 이곳에 머물며 오늘의 진관사에 이른다. 저자는 하나의 장소에 거듭되는 인연을 씨줄 날줄로 엮어 풀어간다.

익히 보는 나무, 사찰, 정자, 계곡, 암자, 어느 곳도 그냥 있는 것이 아니다. 시간의 갈피마다 이야기가 서려 있기에 ‘특별한’ 장소로 거듭난다. 시선(詩仙)으로 추앙받는 이백과 시골 선비 왕륜의 우정이 서린 중국의 도화담,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전쟁이 주는 극도의 긴장감 속에 병사들을 위해 켠 남해바다의 연등, 초의 선사와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가 만나 차와 곡차를 나누며 불교와 유가(儒家), 동학과 서학이 교류하는 현장이었던 전남 대흥사 일지암, 추사 김정희와 존재 박윤묵이 비 오는 날이면 물을 구경하기 위해 찾은 인왕산 수성동 계곡 등. “알면 좋아하게 되고 좋아하면 반드시 찾게 된다(知之必好之 好之必求之).”는 송나라 정이 선생의 말처럼 장소와 옛사람들의 사연을 알게 되면 평범한 장소는 반드시 찾아야 할 곳이 된다. 그리고 우리처럼 또 다른 누군가 찾아가 새로운 의미를 덧대며, 뒤이어 누군가는 다시 찾고 싶은 곳이 될 것이다. 시간은 모든 것을 ‘낡아지게 하지’ 않는 것이다.

“시대와 사람이 만났고 터와 인간이 만났고 또 인간과 인간들이 만났다. 그리하여 이야기를 만들었고 그 옛이야기는 지금 사람들의 눈과 귀를 통해 또다시 새로운 만남이 이루어지면서 각색된다. 지금도 많은 이야깃거리들이 어디선가 만들어지고 또 누군가에 의해 보태지면서 켜켜이 쌓여 가고 있을 터이다.” (본문 중에서)

‘아버지 생각나면 냇물에 비친 내 얼굴 바라보네’

옛것에서 찾아보는 삶의 진정한 가치에 대하여

저자 원철 스님은 장소와 사람의 내력과 그 감상만을 말하지 않는다. 그 속에 숨겨진 가치를 에둘러 짚어준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장소 등 만남을 통해 새로워진 것들, 시간이 흐름에 변하거나 사라진 것들, 그리고 그 가운데 중심을 잃지 않고 있는 것들이다.

불교의 주요 교리 중 무엇도 홀로 생겨나 홀로 존재할 수 없다는 ‘연기(緣起)’와 영원한 것은 없다는 ‘무상(無常)’은 장소와 사건에도 예외는 아니다. 윤선도의 녹우당, 조려의 서산서원, 퇴계 이황의 도산서원처럼 누군가의 삶이 함께하며 의미를 지닌 곳이 있는가 하면, 중국의 오대산과 한국의 오대산처럼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동일한 지명으로 신앙적 의미를 공유하는 장소도 있다. 반면 지금은 예전 모습을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원래의 모습을 잃어버린 장소도 생겨났다. 과거 한양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풍경으로 꼽히던 ‘장의심승(藏義尋僧, 장의사로 스님을 찾아가다)’ 속 장의사(藏義寺, 莊義寺)는 초등학교로 변하여 당간지주만이 사찰의 자리를 짐작하게 해주고, 송파강과 신천강은 1925년의 대홍수와 매립 사업의 결과 호수로 변하여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즐기는 공간으로 변화하였다.

이러한 연기와 무상의 세계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흔한 힐링이나 위로, 어떤 충고도 쉽게 하지 않는 스님은 이 책에서 우리 스스로 그 답을 알아내도록 넌지시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도, 우리 삶도 시간의 흐름에 사라질 테지만 무엇을 보태고 가겠느냐는 물음이다. 저자는 책의 첫 꼭지에서 연암 박지원의 시를 소개한다. 죽은 형을 생각하며 연암이 지은 시다.

우리 형님 얼굴 수염 누구를 닮았던고.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나면 우리 형님 쳐다봤지.

이제 형님이 그리우면 어디에서 볼 것인가.

두건 쓰고 옷 입고 나가 냇물에 비친 내 얼굴을 봐야겠네.

내 얼굴에서 그리운 아버지의 흔적을 찾는 것처럼, 삶의 길을 잃어버렸을 때 우리는 무수한 세월을 견디며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쌓인 바로 우리 곁에 남아있는 옛것 속에서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인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하며 ‘나’라는 존재가 지금 이 시공간에서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진지하게 성찰해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저자는 코로나19로 오랜 마스크 생활에 지친 모든 이들에게 잠시나마 숨 쉴 틈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소박하게 밝히고 있다.

■ 저자의 말

시간이 날 때마다 한국 · 중국 · 일본 · 베트남 등 한자문화권의 의미 있는 곳을 찾았고 묻혀 있는 인물도 깜냥껏 발굴했다. 고전에서 많은 명문을 만났고 선시를 읽으면서 밑줄을 쳤으며 글에 얽힌 갖가지 인문학적 역사까지 더듬을 수 있었다. 대중적인 이야깃거리도 양념처럼 찾아냈다. 주변의 관심과 조언 그리고 댓글도 완성도를 높이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오래된 것들에 축적되는 것은 시간만이 아니다. 수많은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 있다. 그 이야기는 다시 새로운 만남으로 이어진다. 이 책이 코로나19로 인하여 마스크 생활에 지친 모든 이들에게 잠시나마 숨 쉴 틈이 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책속으로 위로

나뭇가지 하나로도 충분히 편안한 잠을 청할 수 있는 작은 새의 삶을 추구한 초의 선사가 만년에 머물렀다는 일지암의 원래 구조는 초당과 누마루 달린 기와집 두 채가 전부였다. 볏짚으로 지붕을 이은 찻집과 운치 있는 살림집인 기와집의 만남이다. 두 집 사이에는 물에 비친 달을 즐기기 위해 작은 연못을 팠다. 얇고 널따란 구들장 돌을 켜켜이 쌓아 올린 초석 위에 굵지 않은 기둥 네 개가 받치고 있는 밋밋한 누마루집이 소박한 초당과 더불어 대비감을 연출했다.

두 건물은 서로 지척에 있지만 물을 이용해서 자연스럽게 서로의 경계를 나누지 않는 듯이 나누었다. 그야말로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관계의 긴장감이 오랜 세월 권태로움 없이 서로 마주할 수 있는 힘이 된 것 아닐까. 그야말로 건축적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인 셈이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일지암을 바라보면서 가까운 사람들과 오래도록 함께 할 수 있는 지혜를 새삼 곱씹었다.

— 본문 23쪽

구경 가운데 물 구경이 으뜸이라고 했다. 자연과 공감할 수 있는 감수성의 소유자인 추사와 존재 선생은 비 오는 날 물소리를 듣기 위해 수성동을 찾은 것이다. 두 사람 모두 나막신을 신었다는 사실을 애써 강조했다. 나막신은 평소에 신는 신발이 아니다. ‘비가 오면 짚신 가게 아들이 걱정이고 날씨가 맑으면 나막신 가게 아들이 걱정’이라는 속담에서 보듯, 맑은 날과 비 오는 날의 신발은 달랐다. 비 오는 날은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집콕’ 했을 것이다. 나막신을 신고 우비를 입고 외출한다는 것 자체가 개인적으로 매우 큰일인 것이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다는 것을 나막신은 은유적으로 보여 준다. 두 어른에게 비 온 뒤 물 구경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이 아니라, 꼭 해야만 하는 과제였다.

— 본문 40쪽

60대 중반에 퇴직한 백운 선생은 일흔 살에 돌아가셨다. 은퇴 후에도 나랏일에 고문을 맡아 대몽(對蒙) 항쟁기 때 각종 외교 문서 작성에 기여했다. 정년도 없는 당시는 근력이 달리면 알아서 은퇴하던 시절이다. 그럼에도 기운이 남았는지 후배 관리들에게 이런저런 간섭을 하며 살았다. 「대장각판군신기고문」도 퇴직하던 66세(1237) 때 쓴 글이다. 은퇴 후에도 하던 일을 계속 하면서 살았으니 어찌 보면 가장 이상적인 삶을 산 어른이기도 하다. (…)

은퇴 후에는 여러 가지 길이 있다. 백운 이규보처럼 마지막까지 관직에 한 다리를 걸쳐 놓고 하던 일을 계속할 수 있다면 고민 없는 은퇴길일 것이다. 교사 부부처럼 요리를 배우는 방법으로 전혀 다른 길을 찾는 것도 나름 방법이다. 출가를 꿈꾸는 사람도 있다. 인생 후반기에 어떤 방식의 삶을 선택할 것인가? 고령화 시대를 맞이한 우리 사회에 새로운 화두가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음을 실감한 하루다.

— 본문 81~84쪽

조선 말 궁중 화가 채용신은 황현의 사진이 남아 있어 그것을 통해 영정을 그릴 수 있었다. 하지만 김호석 화백은 얼굴도 알 수 없는 500년 전의 인물인 학봉 선생의 영정을 그려 달라는 부탁을 후손에게 받았다. 그야말로 ‘대략 난감’이다. 그렇다고 해서 선화(禪畵)처럼 백지 족자를 내놓을 수도 없는 일이다. 후손들의 모습을 통해 조상의 모습을 추적하고, 남아 있는 문집과 각종 문헌을 통해 그의 우렁우렁한 성격과 기골이 장대한 모습을 구현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복잡다단한 이력을 가진 그의 내면세계까지 그림으로 옮겨 낸다는 것은 난제 중의 난제였다. 그때 안경을 발견했다. 그래, 바로 저거야! 안경을 씌웠다. 그리고 눈동자를 그리지 않았다. 그대로 색깔 없는 선글라스가 된 것이다. 도무지 그의 심중을 헤아릴 길 없는 모습을 재현하는 데 비로소 성공한 것이다.

— 본문 93쪽

‘산골 판매소’라는 돌 간판이 서 있는 입구에서 시멘트 계단을 밟으며 절벽을 따라 올라가니 낡은 알루미늄 문이 보인다. 동굴형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는 주인장과 처음 대면했다. 일요일만 쉬고 매일 출근한다고 했다. 약재상 등 단골들이 연락도 없이 드문드문 찾아오기 때문이다. 물론 소문을 듣고 오는 개인도 더러 있다. 예전에는 자주 작업을 했지만 지금은 그러지 못한다고 한다. 좋은 의료 시설과 치료제가 많기 때문이란다. 채굴이라고 해봐야 필요할 때 광부 한 명을 부르는 수준이다. 사장 1인과 비상근 직원 1인 회사인, 전국에서 가장 작은 광산이기도 하다. (…)

동네 이름의 근거지가 되는 녹반의 생산 판매 시스템이 그대로 고스란히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경이롭다. 개발 시대 이후 표지석만 남기고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진 도심의 많은 문화유산 터를 대할 때마다 느끼던 그동안의 허무감을 달래 주고도 남는다. 덤으로 ‘산골고개’라는 버스 정류장 이름마저 자동 홍보판이 되는 특별한 공공 자산까지 보유한 곳이라는 사실이 안도감을 더해 준다.

— 본문 117~119쪽

오래전에 북경을 방문했을 때 일이다. 공식 일정을 마치고 일행과 함께 관광을 겸해 인근 지역에 멀지 않은 계단사(戒壇寺)를 찾았다. 계태사(戒台寺)라고도 불렀던 곳이다. 당나라 때 창건한 이래 이름 그대로 모든 출가자의 입문식(入門式)을 치르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북경을 중심으로 하북(河北, 허베이)성 지역의 모든 사찰의 수계식(受戒式)을 관장했다. 가람의 역사보다 더 시선을 끈 것은 1,3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묵었다는 백송인 구룡송(九龍松)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경내 여기저기 있는 몇백 년 된 백송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였다. 더 놀란 것은 뒷산에 있는 나무 숲이 전부 백송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그야말로 입을 다물지 못할 만큼의 문화 충격이었다. 애지중지하며 돌보고 있는 조계사 경내에 단 한 그루뿐인 백송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백송은 이 지역에서 흔한 소나무였다. 명나라와 청나라 조야(朝野, 조정과 민간)에서는 별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조선의 사신과 귀빈에게 큰 생색을 낼 수 있는 선물 목록에 올렸다. 경쟁적으로 가져왔고 자랑삼아 심었다. 후손들은 “우리 집안은 이런 집안이요!” 하면서 뽐냈을 것이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그 나무는 기후와 토질이 달랐던 이 땅에는 잘 적응하지 못했다. 겨우 몇 군데만 살아남았다. 그래서 오늘날 국가의 보호를 받는 진짜 귀하신 몸이 되었다.

— 본문 150~151쪽

문수봉에서 해맞이를 했다. 예전에는 첫 일출을 향해 두 손을 공손하게 모으고 한 해의 소원을 빌었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일출을 찍으려고 두 손을 바닷게 두 발가락처럼 모은다. 핸드폰의 대중화가 일출 풍속까지 변화시킨 것이다. 일출도 찍었지만 일출 산행객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기도하는 새로운 모습도 함께 찍었다. 합장은 합장인데 두 손바닥이 닿는 것이 아니라 양손의 두 손가락을 스마트폰이 이어 주고 있다. 태양신 혹은 일광(日光)보살을 찬탄하는 방식도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인가 보다. 너나 할 것 없이 덕담과 함께 일출 사진을 보내며 새해 인사에 바쁘다.

— 본문 189쪽

임진란 당시 이순신 장군은 “초파일에 관등(觀燈)했다.”는 기록을 『난중일기』에 남겼다. 전쟁이 주는 극도의 긴장감과 중압감 속에서도 연등을 바라보며 심리적으로 많은 위안을 얻었을 것이다. 승군(僧軍)들은 7년 동안 전란에 참여하면서도 해마다 5월(음력 4월)에는 틈틈이 밤마다 연꽃잎 모양 따라 종이를 비볐다. 연등을 만들어 남해 바다를 은은하게 밝혀서 조선수군은 물론 피란처 백성까지 위로했던 것이다. 그 후예들은 2020년 당신의 동상이 있는 광화문광장에 황룡사 9층목탑을 본뜬 조형등을 세웠다. 신라 선덕여왕이 백성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어려운 당시 상황을 극복하려고 했던 간절한 염원이 서린 탑을 재현한 것이다. 이제까지 만난 적이 없는 미증유의 전염병 사태를 극복해 내리라는 의지를 가득 담았다.

— 본문 197~198쪽

사람도 본래 날아다녔다고 한다. 그때는 신선들과 함께 놀았을 것이다. 하지만 음식을 절제하지 못하는 바람에 몸이 무거워져 날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광음천자생인간(光音天子生人間, 광음천자가 인간 세상에서 살다)’이라는 신화에서 그 일단을 엿보게 된다. 광음천(光音天)이라는 하늘 세계에 살고 있던 신선들이 인간세계로 나들이를 왔다. 그런데 땅 위에는 맛있는 음식이 너무 많았다. 대지의 비옥한 음식을 절제하지 못하고 탐욕을 부린 신선들은 결국 몸이 무거워져 다시는 자기가 살던 곳으로 날아가지 못하고 땅 위에 눌러앉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어디 신선뿐이랴. 인간 세상도 지금보다 몸이 더 무거워지면 곤란해진다. 그렇게 되기 전에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는 말을 좌우명 삼아 자주자주 걸어야 할 것이다. 어쩌다 보니 날아다니는 것은 잊어버렸지만 음식 때문에 걷는 것조차 잊고서 누워 있을 수는 더더욱 없기 때문이다. 규칙적으로 자주 걸어 주면 아침에 일어날 때 ‘날아갈 것처럼 몸이 가뿐한’ 신분 상승의 새 세상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서 오늘도 산책객들은 비장한 표정으로 열심히 걷고 있다.

— 본문 247~248쪽

20여 년 전에 완공했다는 내부순환고가도로의 기둥이 주는 육중한 우람함이 개발 시대의 상징처럼 하천 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다. 산도 가리고 하늘도 가린다. 하지만 그 위로는 차들이 물처럼 흐르고 있다. 도로를 물길로 간주하는 풍수설을 빌린다면 하천이 은하수처럼 공중에 매달려 있는 셈이다. 그 옛날 배로 물류가 이루어졌다면 지금은 차가 대신하고 있다고나 할까. 그 아래로 동네 주차장을 만들기 위해 천변 위로 둥근 기둥을 쌍으로 일곱 줄을 세워 시멘트 마당을 만들었다. 물 흐름을 방해하지 않고 필요한 주차 공간도 확보하는 절묘한 타협책이다. 서로 조금씩 양보하여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방식을 찾았다고나 할까.

— 본문 264~265쪽

100여 년 전 종로 거리 연등축제 행렬도 그 출발점은 원각사 터인 탑골공원이다. 이곳에서 꽃으로 장식한 아기부처님 이마에 물을 붓는 관불(灌佛) 의식을 거행했다. 저녁에는 흰 코끼리 상을 선두로 종로・을지로・광화문을 한 바퀴 도는 제등(提燈, 등을 손에 들다) 행진을 했다. 조선 초기 불교의 본사(本寺, 중심 사찰) 역할을 하던 원각사는 연산군 때 문을 닫았지만 1910년 인근에 조계사가 창건되면서 연등회 등 문화유산을 물려받은 것이다. 연등길을 따라가니 이내 제야의 종으로 유명한 보신각 누각 앞이다. 종로라는 길 이름도 구(區) 이름도 종각이라는 지하철역 이름도 모두 종루(鍾樓)에서 비롯된 것이다. 매달렸던 종은 세조 때 주조했던 원각사 대종이다. 1985년 현대식 종으로 바뀌기 전까지 그 소임을 다했다. 이래저래 종로 지역은 오늘까지 원각사에 적지 않은 문화적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 본문 2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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