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km 반경 동물 살처분 아우슈비츠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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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km 반경 동물 살처분 아우슈비츠 따로 없다”
  • 송희원
  • 승인 2021.06.02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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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일 조계종 사노위 등 4개 단체
살처분 희생 동물 추모기도회 봉행

뙤약볕이 내리쬐는 도심 빌딩 숲 한가운데, 닭·돼지·소의 탈을 쓴 이들이 방역복 차림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줄로 결박당하고 있다. 방역자 중 하나는 ‘3km 이내 농가 예방적 살처분 행정명령’ 피켓을 들고 동물들을 막아선다. 동물의 관점에서 살처분의 실상을 표현한, 짧지만 강렬했던 퍼포먼스가 끝난 뒤 동물 탈을 쓴 이들이 일렬로 관객 앞에 선다. 그들은 ‘우리도 생명이다’, ‘가축 살처분, 공장식 축산 이제 그만’, ‘우리도 고통과 슬픔을 느끼는 생명을 가진 존재’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관객들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전한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불교환경연대, 신대승네트워크, 예방적살처분반대 시민모임 등 4개 단체는 6월 2일 오후 1시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가축 살처분 제도개선 촉구 및 예방적 살처분 희생 동물 추모기도회’를 봉행했다. 이날 추모기도회는 가축전염병에 대비해 과도한 예방적 살처분을 집행하는 현행 정책과 제도를 성토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또 희생된 수많은 동물의 넋을 기리고 참회하는 한편 동물의 생명권을 지키기 위한 서원을 하는 시간도 가졌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스님들이 가축 살처분 제도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 반경 3km 예방적 살처분 최선일까?

통계청이 4월 22일 발표한 ‘2021년 1분기 가축동향조사’(3월 1일 기준) 결과에 따르면 산란계 마릿수가 1년 전보다 14.7%(1,070만 1,000마리) 감소한 6,211만 마리로 집계됐다. 오리 사육마릿수도 1년 전보다 52.1%(426만 9,000마리) 감소한 391만 9,000마리로 조사됐다.

이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이어진 조류인플루엔자(AI) 피해 확산 여파다. 절반이 넘는 가금류의 수가 불과 몇 개월 만에 사라진 데에는 감염된 가금류뿐만 아니라 예방적 차원에서 이뤄진 감염되지 않은 가금류의 살처분 또한 얼마나 광범위하게 이뤄졌는지를 증명하는 수치이기도 하다. 동물복지축산농장인 화성 산안마을 농장에서는 정부의 예방적 살처분 명령에 따라 3만 7,000마리의 건강한 닭들이 2월 19일 한날한시 잔혹한 죽음을 맞이하기도 했다.

정성운 신대승네트워크 웹진 편집장은 발언을 통해 “감염되어 죽인 닭보다 감염되지 않았는데 죽인 닭이 3배 이상이 넘는다”며 “2003년부터 올해까지 9,400만 마리의 가축이 살처분 당했고 1조 1,728억 원이 피해농가 제정지원금으로 쓰였다”고 말했다. 불교계에 예방적 살처분의 심각성을 신대승네트워크 웹진을 통해 꾸준히 알리는 그는 이러한 사태의 원인이 “생명을 도외시하고 행정적 입장만을 고려한 정부의 무자비한 정책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사회를 맡은 한주영 불교환경연대 사무처장은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보면 3km 반경 살처분이라는 것이 근거도 없고 오직 우리나라에서만 시행되고 있는 방법”이라며 “농림축산식품부의 장관이 정하는 지침으로 거리를 정해놓고, 이것이 마치 선진국형 K-방역인 양 자부심을 갖고 시행해왔다”고 비판했다. 이어 “인간이 만들어놓은 잘못된 제도로 올해만 해도 약 3,000만 마리의 닭이 살처분을 당했고 그중 60, 70%는 건강한 가축들”이라고 덧붙였다.

이어진 발언에서 유정길 불교환경연대 위원장도 ‘아무리 작은 미물일지라도 생명의 무게는 똑같다’는 불교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동물 대량살처분 정책에 강력히 반대했다.

“코로나19 전염을 막는다며 (예방적 조치로) 그 주변 사람을 살처분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정말 끔찍하겠죠? 부처님 말씀처럼 모든 생명과 인간의 생명은 동일한 무게를 갖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코로나19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심각하게 대책을 세우면서, 동물들에 대해서는 안일하게도 반경 3km를 지정해서 한꺼번에 살처분합니다. 이건 일종의 제노사이드, 즉 대규모 살육입니다. 아우슈비츠가 따로 없습니다.”

발언하고 있는 유정길 불교환경연대 위원장.

동물권행동 카라 조현정 활동가도 예방적 살처분보다 공장식 축산업에 대한 반성이 더 필요하다는 발언을 보탰다.

“조류독감과 동물 대량살처분이 발생하는 것은 대규모 공장식 축산으로 인한 인재입니다. 공장식 축산업은 동물, 사람 그리고 환경을 위해서도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닭, 돼지, 소들이 땅에 묻히면서 토양 오염과 지하수 오염 등 많은 환경적인 문제를 일으킵니다. 또 농장주와 살처분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공무원 담당자들이 트라우마를 겪는 등 심각한 사회적인 문제들도 불러옵니다.”

발언하고 있는 동물권행동 카라 조현정 활동가.

| “인간 위해 사육되고 살처분된 모든 동물 영가들을 위로합니다”

발언이 끝난 뒤 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 법만 스님과 유재호 산안마을 대표가 살처분된 모든 동물 영가들의 극락왕생과 동물 살처분 제도개선의 원을 담아 발원문을 낭독했다.

부처님을 향해 선 법만 스님은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으로 동물의 생명을 하찮게 여기고 예방적 살처분이라는 이름으로 무참히 살해해왔음에 아프고 참담한 심정으로 참회한다”며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고 살해의 현장에 있을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사람에게도 깊은 위로를 보낸다”고 말했다. 이어 “육도윤회 속의 중생으로서 동물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존재임을 망각하고 그들을 가두고 억압하고 멋대로 해온 잘못을 참회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모든 존재는 서로 연결돼 있으므로 그들의 고통은 곧 우리의 고통임을 다시 한번 가슴 깊이 새긴다”며 “인간은 만물을 지배하는 지배자가 아니라 만물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라는 인식을 가지고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이 어디에서 오고, 어떻게 생산되고, 유통되고, 소비되고, 폐기되는지 성찰하며 잘못된 것들을 모두 고쳐 나가겠다”고 발원했다.

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 법만 스님이 발원문을 낭독하고 있다.

이후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스님들의 집전으로 가축 살처분으로 희생된 동물들의 극락왕생을 바라고 동물들을 추모하는 기도식이 진행됐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지몽 스님은 “인간의 무자비하고 반생명적이고 비인도적인 행위로 인한 집단사육과 대량살처분은 환경파괴, 인권 침해, 정신적·경제적 피해를 동반해 고스란히 우리 인간의 고통의 과보로 돌아왔다”며 “부처님 부디 저희 인간들의 인과법칙과 연기의 이치를 확연히 깨닫게 하시어, 인간과 동물 환경과 모든 존재가 더불어 행복할 수 있길 발원한다”며 기도회를 마무리했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스님들이 희생된 동물들의 극락왕생을 바라고 동물들을 추모하는 기도식을 봉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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