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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4.21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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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기자 정문태 잃어버린 현대사를 찾아 떠난 여행
타이 ․ 버마 ․ 라오스 ․ 캄보디아 편

 

국경일기
저작·역자 정문태 정가 22,000원
출간일 2021-0415 분야 역사>역사기행
책정보

ISBN 979-11-90136-42-6 (03910) | 138*214mm | 4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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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위로
30년 넘게 국제분쟁 최전선을 뛰어온 베테랑 독립 기자 정문태. 그가 숱한 국제뉴스의 현장을 다니면서 늘 '다음'으로 미뤄두었던 '여행'을 떠난다. 여행지는 타이, 버마, 라오스, 캄보디아 국경마을. 국제분쟁 전문기자로 살아오며 늘 마음 한구석에 있던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때 묻지 않은 자연에 권력이 임의로 그어놓은 경계, 그리고 그 경계 밖에서 오늘도 생존을 위해 분투하고 있는 사람들. 가진 자들이 써 내려가는 역사와는 다른, 그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으며 저자는 다짐한다. '그 밖'들의 역사를 차곡차곡 기록해서 이 세상에 되돌려주겠노라고.

여전히 군부와 맞서고 있는 버마 소수민족 반군, 타이로 건너온 버마 이주노동자, 타이공산당 게릴라 출신 농부 등 이 책에 등장하는 숱한 이름 없는 이들의 목소리와 국경지역 천혜의 절경 여행기가 저자 특유의 문체로 한데 어우러져 있는 이 매력적인 책은 수시로 독자들의 마음을 따갑게 할퀴고 또 뜨겁게 만들 것이다.
저자소개 위로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1990년부터 방콕을 베이스 삼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팔레스타인, 예멘, 레바논, 코소보, 아쩨, 카슈미르를 비롯한 40여 개 전선을 뛰었고, 국제뉴스 현장을 누비며 아흐마드 샤 마수드(아프가니스탄) 같은 해방·혁명 지도자와 압둘라만 와히드 대통령(인도네시아), 마하티르 모하맛 총리(말레이시아)를 비롯한 최고위급 정치인 50여 명을 인터뷰했다. 그사이 역사가 굴러가는 현장을 직접 눈으로 바라보며 얻은 큰 행운을 《우리가 몰랐던 아시아》(2003년), 《현장은 역사다》(2010년), 《위험한 프레임》(2016년),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기록》(2017년 개정판)이란 책에 담았다.

한데, 마음 한구석이 늘 휑한 느낌으로 살았다. 해묵은 화두인 ‘국경’을 오롯이 못 담았던 탓이다. 하여 오래도록 미뤄왔던 국경으로 이제, 여행을 떠난다.

목차 위로

해묵은 고백

1장 미래의 유산

방콕의 아이들 - 방콕Bangkok | 타이

되돌아오지 않을 먼 길 떠나며 - 치앙마이Chiang Mai | 타이

2장 국경의 밤

국민당 잔당, 반공팔이 마약전선을 가다 - 탐응옵Tham Ngop | 타이

국경선, 인류 최악 발명품 - 도이앙캉Doi Ang Khang | 타이

현대사의 공백, ‘한국전쟁 제2전선’ - 도이매살롱Doi Mae Salong | 타이

쿤사, 아편왕인가 독립투사인가? - 반힌땍Ban Hin Taek | 타이

사라진 아카 문, 길 잃은 사람들 - 반파노이-아카Ban Pha Noi-Akha | 타이

매사이, 붉은 용에 사로잡힌 닭 - 매사이Mae Sai | 타이 ‧ 따칠렉Tachileik | 버마

음모와 배반의 삼각지대 - 골든트라이앵글Golden Triangle | 타이 ‧ 반콴Ban Kwan | 라오스

메콩강은 울고 있다 - 치앙콩Chiang Khong | 타이

파땅, 비밀전쟁의 심장 - 반파땅Ban Pha Tang | 타이

3장 내릴 수 없는 깃발

현장은 역사다 - 반촘푸Ban Chomphu | 타이

“내 심장은 아직 공산주의자” - 반후아이쿠Ban Huai Khu | 타이

밤길 - 반후아이쿠-치앙마이 국도 1155 | 타이

토끼가 달을 겨누다 - 반파숙Ban Pha Suk | 타이

산악 우물에서 소금을 캐다 - 반보루앙Ban Bo Luang | 타이

아버지 인민해방군 사령관, 아들 육군총장 - 반남리팟타나Ban Nam Ree Phatthana | 타이

짝사랑의 끝 - 반후아이꼰Ban Huai Kon | 타이

비정한 형제, 타이-라오스 국경전쟁 - 반롬끌라오Ban Rom Klao | 타이

나부아 마을, 첫 총성을 울리다 - 반나부아Ban Na Bua | 타이

4장 전선 여로

불법 노동자, 카지노 그리고 혁명 - 매솟Maesot | 타이 ‧ 먀와디Myawaddy | 버마

도시로 내려온 국경 - 매솟Maesot | 타이 ‧ 치앙마이Chiang Mai | 타이

샨의 빛나는 산 - 로이따이렝Loi Tai Leng | 버마

식민통치, 저주의 유산 - 매홍손Mae Hong Son | 타이

“군부가 변해야 버마가 변한다.” - 매솟Maesot | 타이 ‧ 레이와Lay Wah | 버마

30년 전 멈춰버린 시계 - 꼬무라Kawmoora | 버마 ‧ 슈웨꼭꼬Shwe Kokko | 버마

5장 혁명의 뒤안길

킬링필드, 미국한테 묻는다 - 부어쳇Bua Chet| 타이 ‧ 초암사응암Choam Sa-Ngam | 캄보디아

실패한 혁명, 실패한 영혼 - 안롱웽Anlong Veng | 캄보디아

얼룩진 크메르의 영광 - 쁘라삿쁘레아위히어Prasat Preah Vihear | 캄보디아

국경선, 꺼지지 않은 분쟁의 불씨 - 파모이댕Pha Mor E Daeng | 타이 ‧ 에메랄드트라이앵글Emerald Triangle | 타이-캄보디아-라오스 국경

지도로 보는 국경일기

상세소개 위로

국제 언론에서 가장 많은 전선을 뛴 기자,

가장 많은 최고위급 정치인을 인터뷰한 기자

전선기자 정문태가 미루고 미뤄온,

아무도 찾지 않는 곳으로 떠난 여행

30년 넘게 국제분쟁 최전선을 뛰어온 베테랑 독립 기자 정문태.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팔레스타인, 예멘, 코소보, 카슈미르 등 40여 개 전선을 뛰었고, 아흐마드 샤 마수드(아프가니스탄) 같은 해방·혁명 지도자와 압둘라만 와히드 대통령(인도네시아), 마하티르 모하맛 총리(말레이시아)를 비롯한 최고위급 정치인 50여 명을 인터뷰해 국제 언론에서 가장 많은 전선을 뛴 기자, 가장 많은 최고위급 정치인을 인터뷰한 기자로 손꼽히는 그다.

숱한 국제뉴스의 현장을 다녔기에 세계 곳곳 여행 경험도 많을 법한데, 그는 정작 여행다운 여행을 해본 적이 없다. 네팔을 예닐곱 번 드나들면서도 눈앞 히말라야를 늘 지나치고, 요르단을 수도 없이 들락거리면서도 엎어지면 코 닿을 사해에 발 한 번 못 담갔다. 현장 취재의 긴장감 때문에 늘 여행은 ‘다음’으로 미뤘고, 그렇게 ‘다음’만 계속 쌓여갔다.

그 정문태가 큰맘 먹고 여행을 시작한다. 하지만 이 여행 역시 취재인지 여행인지.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국경’이라는 화두를 들고 떠난 이 여행에서, 그는 또다시 현대사의 비극을 헤집고, 얼마 남지 않은 증언자를 찾아내고, 기어코 그들과 인터뷰해 기록으로 남긴다.

타이와 버마, 타이와 라오스, 타이와 캄보디아 국경에서 만나게 되는 인도차이나의 모습과 그곳 사람들로부터 듣는 이야기는, 신기하게도 지금 우리가 되돌아봐야 하는 곳들을 가리킨다. 권력이 제멋대로 그어놓은 경계, 그리고 그 경계 밖에서 오늘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저자는 다짐한다. ‘그 밖’들의 역사를 차곡차곡 기록해서 이 세상에 되돌려주겠노라고.

거대한 국제뉴스공장 방콕을 떠나

버마 국경을 낀 치앙마이로

총 5장으로 구성된 이 책의 1장 ‘미래의 유산’은 방콕과 치앙마이를 배경으로 한다. ‘국경’을 화두 삼아 떠나는 이번 여행의 프롤로그 성격이다.

흔들리는 20대를 접으며 “세상을 돌아다니고 글 쓰며 살고 싶다.”는 바람 하나 달랑 들고 도착한 1990년의 방콕. 그곳은 이미 거대한 국제뉴스공장이었다. 케세라세라(‘될 건 된다’) 정신으로 무장한 앞선 베트남전쟁세대 기자들을 쫓아다니며 조금씩 기자로 거듭나던 30년 전 자신의 모습을 언뜻언뜻 확인하며 실롬가를 지나 살라뎅역을 향하는 저자와 함께하다 보면, 어느덧 제2차 세계대전 후부터 지금에 이르는 외신판 흐름까지 귀동냥하게 된다.

‘방콕의 아이’였던 그는 어느 날 치앙마이로 베이스를 옮긴다. 바로 ‘국경’ 때문이다. 휴전선을 국경 삼아 성장한 대한민국 젊은이였던 만큼, 국경 너머에는 자유가 펼쳐지리라 기대한 새내기 기자 시절. 그가 마주한 국경 현실은 참으로 아리기만 했다. “민족, 영토, 문화, 종교, 빈곤, 자원, 환경…. 인류의 온갖 패악거리를 파묻은 현장이었다. 그 땅엔 모진 차별과 박해에 시달려온 이들, 정치폭력에 치이고 역사에서 버림받은 이들, 이쪽도, 저쪽도 아닌 경계인이 살고 있었다.”(본문 38쪽) 그래서 국경과 국경 사람들을 늘 가슴에 품고 지냈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마감을 쫓아 헤매기만. 방콕을 탈출해 국경으로 내달릴 틈만 보던 그는 결국 버마 국경을 낀 치앙마이로 삶의 터전을 옮긴다.

CIA, 베트남전쟁, 냉전, 마약, 그리고 메콩강

-아무도 찾지 않는 국민당 잔당 이야기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되는 2장 ‘국경의 밤’에서는 타이 북부 타이-버마-라오스 국경 지대를 달린다.

국민당 잔당 리원환 장군의 영향력이 아직도 건재한 마을 탐응옵에서 출발해 그 리원환 장군의 휘하에 있던 소년병 출신 80여 명이 여전히 삶을 이어가고 있는 반파땅에 이르는 여정 구석구석에는 CIA, 베트남전쟁, 냉전, 마약 이야기가 녹아 있다.

1949년 중국 국민당의 장제스가 타이완으로 갈 때 국민당 군대 일부는 윈난을 거쳐 버마로 넘어갔다. 이들이 바로 국민당 잔당이다. 1950년대 초 동남아시아의 공산주의 확산에 놀란 미국 대통령 트루먼은 CIA 요원을 버마에 투입해 국민당 잔당을 지원하고 이들을 반공전선 용병으로 쓴다. 그 과정에서 미국은 이들의 마약 생산을 눈감는 것으로 경제적 지원을 대신했다. 이는 결국 베트남전쟁 참전군인들의 마약 중독 문제로 이어지고, 더 나아가 이 주변이 국제마약시장의 중심이 되었다. 그 후과를 많은 이들이 두고두고 감당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의 진짜 희생자는 따로 있다. 중국내전에서 열대여섯 살 철부지로 영문도 모른 채 국민당 쪽에 줄 섰다가 한평생 반공전선 용병으로 끌려다닌 전사들이다. 그 가운데도 가족 없이 쓸쓸히 사라져가는 전상자들이 있다. 1972년 타이공산당 박멸작전 때 지뢰를 밟아 한쪽 다리를 잃은 자잉왕 같은 이들 말이다.(본문 61쪽 참고) 저자는 이 책에서 이런 ‘자잉왕들’을 끊임없이 불러내 이들의 명예 회복을 시도한다.

타이 정치의 혼란 뒤에 드리워진

타이공산당의 그림자

3장 ‘내릴 수 없는 깃발’은 타이 동북부(이산) 지역어서 길어올린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라오스에서 타이 북동부로 흘러내린 400km에 이르는 피빤남산맥 주변은 타이에서도 가장 인구밀도가 낮은 곳이다. 흔히들 ‘때 묻지 않은 자연’이라고 일컬을 때 떠올리는, 딱 그런 지역이다. 그래서인지 이 지역 곳곳에는 1970년대를 뜨겁게 달구었던 타이공산당 게릴라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들 ‘빨갱이마을’을 더듬어가는 것이 3장의 여로다.

학생운동에서 무장투쟁까지 거쳤지만, 지금은 시골 한구석에서 묵묵히 생활해가는 옛 활동가들의 이야기가 더없이 소중함을 아는 저자는 이를 놓치지 않고 기록으로 남긴다. 반나부아에서 만난 타이공산당 게릴라 출신 농부 누리 찟마드는 이야기한다. “그자들 레드셔츠는 모조품이야. 본디 우리가 걸쳤던 레드셔츠와 바탕부터 달라. 자본가한테 휘둘리는 친탁신 레드셔츠는 결국 자본에 봉사할 뿐이야.”(본문 267쪽) 한때 학생운동 지도자 타이틀로 진보적 정치색을 띠며 권력과 명예를 획득해가는 이들한테 날리는 이름 없는 옛 동지의 일갈은 타이 사회를 넘어 지금의 우리까지 되돌아보게 한다.

끝나지 않은 해방투쟁

-버마 소수민족 반군 이야기

4장 ‘전선 여로’는 타이 서부 버마와의 접경지역을 따라간다. 미얀마라는 국호가 군부정권이 내세운 이름이기에 버마 시민사회의 뜻을 좇아 ‘버마’라는 이름을 고집해온 저자는, 양곤으로 알려져 있는 미얀마 최대도시 역시 고집스럽게 ‘랭군’이라 부른다. 이름을 제대로 부르는 것부터가 각자에게 제 몫을 돌려주는 일의 시작이라고 믿는 그이기에.

4장에서는 버마의 샨, 까레니, 까렌 등 소수민족 반군 이야기가 이어진다. 2021년 군부에 맞선 시민들의 저항으로 버마가 내전으로 흐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커가지만, 사실 버마는 이미 오랜 내전 상태다. 그 기원은 20세기 중반까지 이어진 영국 식민지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시절 영국은 까렌, 까레니, 까친, 친 같은 소수민족을 무장시켜 다수 버마족을 지배했고,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독립을 미끼로 그 소수민족들을 이용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후 영국은 약속도 책임도 저버린 채 사라져버렸다. 버마족과 소수민족들은 이때의 불신과 적개심을 걷어내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독립을 눈앞에 둔 1947년, 버마의 아웅산 장군과 샨, 친, 까친을 비롯한 소수민족들이 자결권과 자치권을 상호 인정하는 버마연방 창설에 합의한다. 하지만 곧 아웅산 장군이 살해당하고 버마민족주의로 무장한 군사독재 정권이 이어지면서 이 빵롱협정은 휴지 쪼가리가 되고 만다. 70년 가까이 지난 2016년, 아웅산 장군의 딸 아웅산수찌의 정부가 들어서고 정부와 소수민족들이 전국휴전협정까지 맺었지만, 그 이후 애초의 목표였던 버마연방으로 가는 길은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여전히 권력을 쥐고 있는 것은 군부이기 때문이다. 버마 사회의 두 기본모순인 ‘소수민족 문제’와 ‘민주화 문제’를 제대로 풀지 않고 버마의 내일은 없다는 사실을 4장의 여로를 통해 재확인하게 된다.

킬링필드 그리고 쁘레아위히어 영토분쟁

-캄보디아에 대한 오해와 진실

마지막 5장 ‘혁명의 뒤안길’은 타이 남부 국경을 넘어 캄보디아로 향한다. 그 길엔 ‘킬링필드’의 주역으로 알려진 뽈 뽓의 화장터부터 눈에 띈다. 저자는 뽈 뽓이 이끈 크메르루즈 정부하에서 무수히 많은 민중이 희생당한 것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바로 그 배경이 된 미국의 학살 역시 빼놓지 말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1969~1973년 미국에 의해 희생당한 60만과 1975~1979년 크메르루즈에 의해 희생당한 100만을 구분해야 마땅한데, 미국은 은근슬쩍 ‘크메르루즈에 희생당한 200만’으로 뭉뚱그린다. 크메르루즈의 몫은 크메르루즈의 몫으로, 미국의 몫은 미국의 몫으로 온전히 남겨두기 위해 저자는 뽈 뽓 화장터를 지나며 이 기록을 빠트리지 않는다.

이제 여정은 서서히 끝을 향해 간다. 캄보디아 국경지역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쁘라삿쁘레아위히어다. 캄보디아 하면 떠오르는 앙꼬왓에 비하면 대중적 상징성은 부족하지만, 정치적‧군사적‧지리적‧전략적 상징성만큼은 앙꼬왓 못잖은 곳이 바로 이 쁘라삿쁘레아위히어다. 국토 최북단 지표로 캄보디아 지배자라면 반드시 지켜내야 할 고지 제1호다. 이 사원을 지키지 못한 권력은 어김없이 역사에서 밀려났다. 크메르루즈 역시 1998년 이곳을 포기하며 역사에서 사라졌다. 그러하기에 쁘라삿쁘레아위히어는 캄보디아 근현대사를 통해 지난한 전쟁터가 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타이와의 영토분쟁으로 그 긴장감이 느껴진다.

G형(Gypsy) 피를 가진 기자가

‘그 밖들’의 세상을 찾아 길 떠나는 여행자에게

그동안 미루었던 뒤늦은 여행을 떠나겠다던 저자는 결국 인도차이나 국경 골짜기 골짜기를 찾아 이름 없는 시민들의 역사를 기록해내는 데 그 시간을 바친다. 기자라는 말을 ‘기록하는 사람’으로 풀어낸다면 그야말로 천생 기자다. 끊임없이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역사가 부여한 책무에 충실하기 위해 오늘도 펜을 드는 사람. 정문태의 이 책이 예사롭지 않은 이유다.

타이, 버마, 라오스, 캄보디아 국경지대를 여행하는 맛, 인도차이나의 현대사를 복기하는 의미, 그리고 이 모든 여정을 떠받치는 ‘그 밖들’에 대한 애달픔. 천혜의 절경 속 거친 길을 내달리며, 사라져가는 목소리를 채집하고 기록하는 그의 모습 속에서 정작 위로받는 것은 날로 희미해져가는 우리의 이상인지도 모르겠다.

“그 땅엔 비틀고 감춘 역사가 겹겹이 쌓였고, 모질게 해코지당해온 사람들이 아우성쳤다. 그러나 지레 절망 따위를 말하고 싶진 않다. 끝끝내 내릴 수 없는 깃발들을 본 까닭이다. 나와 당신, 우리를 닮은 ‘그 밖들’의 세상을 찾아 길 떠나는 여행자한테 이 책을 올린다.”(본문 5쪽)

책속으로 위로


‘떠남’은 내 삶의 해묵은 화두였다. ‘떠나야 한다’는 강박감이 몸에 밴 나는 언제든 훌쩍 떠날 수 있게끔 꾸린 가방을 머리맡에 두고 살았다. 나는 이걸 팔자려니 여겼다. ‘G형’(집시Gypsy) 피의 숙명 같은 건데, 그 원천이 어딘지는 나도 모른다. (…) 다만, 문득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어디론가 떠나도록 입력된 이 떠돌이 피의 명령어가 외신기자라는 직업으로 출력된 게 아닌가 싶은. 말하자면 내 삶과 일이 애초 ‘떠남’이라는 고리로 이어져왔다는 뜻이다. 그러니 새삼스레 여행이란 말이 내겐 좀 거령맞았을 수밖에. 내가 여행기를 놓고 크게 망설였던 까닭이다.
-10~11쪽

방콕 외신판은 1991년 미국의 제1차 이라크 침공 유탄을 맞고 서서히 김이 빠졌다. 베트남전쟁 뒤 첫 대규모 국제전에 엄청난 돈을 뿌렸던 언론사들이 비용 절감을 내걸고 1990년대 중반부터 하나둘씩 방콕 지국 문을 닫은 탓이다. 이건 냉전 동안 정치 중심 편집을 해왔던 언론사들이 경제 중심 편집으로 틀을 바꿔나가는 시점과도 맞물린다. 이때부터 국제 언론은 ‘뉴스 나는 곳에 기자 간다’는 전통적 언론관을 팽개치고, ‘기자 가는 곳에 뉴스 난다’는 자본 논리를 휘두르며 입맛대로 뉴스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31쪽

쓸쓸히 이는 바람에 날려온 관광 안내용 쪽지를 주워든다. 크게 쓴 ‘빨라응’이 눈으로 툭 튀어든다. 이 빨라응은 버마 사람들이 소수민족 따앙을 일컫는 말인데, 영국 식민정부를 거쳐 공식 용어처럼 굳어졌다. 웬만한 책과 문서에도 모두 빨라응으로 나온다. 타이 사람들이 빨롱으로, 중국 사람들이 더앙쭈우로 부르는 게 모두 이 따앙을 가리킨다 .
나는 소수민족 현장을 취재할 때마다 늘 이런 게 안타까웠다. 적어도 이름만큼은 본디 내 몸에 붙은, 내가 원하는 대로 불러주는 게 예의다. 빨라응을 따앙이라 부르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을까? 따앙을 빨라응이라 불러 어떤 이문이 있을까? 남이 내 이름을 아무렇게나 부르는 걸 원치 않듯이 민족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작아도 민족은 민족이고, 저마다 역사와 정체성을 지녔다. 그 상징이 바로 이름이다.
이 함부로 부르는 이름에 소수민족 문제의 본질이 담겼다. 다수민족이나 주류사회가 소수를 아무렇게나 버릇없이 대했다는 증거고, 그 결과가 충돌로 드러났다. 소수민족 문제를 풀어가는 길도 본디 이름을 되돌려주는 일에서부터 출발해야 옳다는 뜻이다.
-69쪽

꼭 26년 전이었다. 나는 타이-라오스 국경지역 마약 취재로 정신없이 이 길을 달리고 있었다. 취재와 마감에 찌든 나는 풍경 따위에 한눈팔 겨를조차 없었다. 그러다 루악강이 옆구리에 닿을 때쯤, 내 지친 영혼 앞을 감색 곡두가 휙 스쳐갔다. 곧장 자동차를 세우고 뛰쳐나갔다. 온 천지를 붉게 물들이는 저녁노을을 따라 걸망 하나 달랑 매고 걷는 한 노승이었다. 나는 그 노승이 노을 속 까만 점으로 사라질 때까지 한없이 부러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짐했다. “나도 언젠가는 이 노을을 따라 걸어야지!”
-116쪽

흔히들 ‘때 묻지 않은 자연’이라고들 하는데, 이 동네를 두고 한 말이다. “아름다움을 시샘한 신이 분쟁을 창조했다.” 70년째 분쟁을 겪어온 카슈미르 사람들 우스개가 여기도 딱 맞아떨어진다. 세상 어딜 가나 분쟁지란 분쟁지는 어째 하나같이 이토록 아름다운지! 카슈미르는 말할 나위도 없고, 판쉴계곡(아프가니스탄), 스왓계곡(파키스탄), 카리심비산(르완다), 웨스트파푸아(인도네시아), 사라왓산(예멘), 살윈강(버마)을 비롯해 내가 취재해온 모든 분쟁지역이 다 그랬다. 그 덕에 나는 남들이 볼 수 없는 멋들어진 자연을 누렸다. 비록 포성을 배경 삼았지만. 그래서 분쟁이 더 슬프다는 뜻이다.
-156쪽

이 반보는 관광지가 아니다. 여긴 마을 표시도 이정표도 없다. 그냥 1095가 지나는 산비탈 마을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마을 앞 낭떠러지에 라후 젊은이가 차린 ‘덱도이’라는 커피집이다. 우리말로 ‘산 아이’란 이름부터 마음을 사로잡는다. 들머리야 그저 흔한 산골 커피집인데, 그 안으로 들어서면 그야말로 별천지다. 수백 길 벼랑 아래 겹겹이 펼쳐지는 산악이 한눈에 차오른다. 입이 쩍 벌어지며 오감이 절로 꿈틀댄다. 하늘과 산을 담아 마시는 커피, 여기가 바로 선계다.
-317~318쪽

새벽 6시, 콧노래가 절로 난다. 내 친구 피 짤라워룩스와 함께 떠나는 여행이 마냥 즐겁다. 방콕에서부터 3,500km 웃도는 이번 10일짜리 여정을 운전에다 통역까지 기꺼이 맡아준 피는 26년 동안 숱한 전선을 함께 누빈 카메라맨이다. 말없이 눈빛만으로도 통하는 그이는 늘 혼자 다니는 버릇이 몸에 밴 내게 흔치 않은 동반자다.
“오늘은 시간 재지 말고, 그냥 천천히 가세. ”
운전대 잡은 피는 씩 웃으며 내 허벅지를 툭 친다. 내 마음을 읽었고 행복하다는 뜻이다. 그이는 빨간 신호등에 막히자 종이를 말아 든다.
“저는 오늘 캄보디아와 국경을 맞댄 타이 동북부 부어쳇이라는 작은 마을까지 손님을 모시고 갈 기장 피입니다. 오늘 날씨는 맑고, 기온은 아직 모르겠고, 도착 예정 시간은 커피와 주전부리에 달렸습니다.”
우리는 낄낄대며 새벽길을 달린다.
-365~366쪽

프놈뻰 벗어나면 먹을 데가 마땅찮았던 1990년대 우리는 아침, 점심, 저녁 모두 놈빵으로 때우곤 했다. 내남없이 가방에 기다란 놈빵을 꽂고 취재 현장을 돌아다녔던 시절이다. 포성이 날뛰던 밤을 지나 놈빵 한 조각에 커피 한잔으로 맞았던 전선의 아침, 우리한테 그 놈빵은 무사함을 확인하는 신호였다. 우리는 말라비틀어진 놈빵을 씹으며 전쟁 속에서 작은 행복 읽는 법을 배웠다. 놈빵과 함께했던 캄보디아의 그 아침들은 내게 축복이었다. 하여 나는 지금도 캄보디아 하면 놈빵부터 떠올린다.
-400쪽

한바탕 웃는 피와 나를 수줍게 바라보며 기지로 되돌아갔던 여인이 10여 분 뒤 커피 두 잔을 들고 다시 나타난다.
“아직 밥 짓기 전이라 아침을 대접할 순 없고 해서. 여긴 좋은 커피 없으니 이거라도. 마신 뒤에 커피잔은 여기 두고 가세요.”
호숫가에 앉아 방금 피와 내가 원했던 오직 하나, 그 커피의 꿈이 저절로 이뤄졌다. 여태 내가 마셔본 인스턴트커피 가운데 가장 감동적이다. 살면서 커피만큼은 까다롭게 굴어온 나였다. 전선이 아니면 인스턴트커피를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커피 맛은 끓이는 사람 마시는 사람 마음에서 우러난다고 했던가. 한 모금 한 모금 들이켤 때마다 줄어드는 커피를 애달피 여기긴 난생처음이다.
-4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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