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당] 조선의 수도, 한양 도시설계의 비밀을 풀다
상태바
[명당] 조선의 수도, 한양 도시설계의 비밀을 풀다
  • 고영섭
  • 승인 2021.03.03 16: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승들의 비보사상
도갑사 도선국사 진영(도갑사 소장).

명당의 탄생, 신토불이 교설과 제교 포섭의 법용

대개 인간은 자원을 구할 수 있는 산이 있는 곳과 생존에 기본이 되는 물이 있는 곳에서 살고 싶어 한다. ‘산을 등지고 물을 마주한 자리[背山臨水]’를 명당(明堂)이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산과 물이 공존하는 공간에 대한 선호는 국가의 수도 결정에도 반영된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좋은 환경에서 살 수는 없다. 그러므로 어떤 보완책을 통해 땅의 기운을 북돋우고 물의 수로를 열어주어 명당화(明堂化)를 꾀하는 수밖에 없다. 명당은 인간과 자연을 살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스스로 그러한’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정도의 인위를 보태면 어떻게 될까? 명당에 좀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지덕이나 지기(地氣)가 부족한 곳을 명당으로 바꾸려면 그곳을 살필 줄 아는 안목과 그것을 바꿀 수 있는 법력이 있어야만 한다. 안목은 다년간의 수련으로 터득하는 것이며, 법력은 자기와의 싸움에서 얻은 수행의 힘에서 나온다. 자신과 싸움에서 승리한 고승들이나 산천초목의 기운을 체감해낸 도사(지관)들은 이런 안목과 법력을 지니고 있다. 동아시아 전통에서는 국가 중대사인 국도를 결정할 때 이들 고승과 도사들의 도움을 받았다. 이것이 바로 ‘도울 비(裨)’와 ‘기울 보(補)’의 합성어이자, ‘보좌하다’와 ‘보수하다’의 두 뜻을 결합한 ‘비보(裨補)’의 출현 과정이다.

고승들은 국도나 도시에서 부족한 부분을 ‘절’과 ‘탑’, ‘불상’, ‘부도(당간)’ 등의 시설을 통해 지덕을 북돋우고 지기를 보수하는 ‘비보’와 ‘산’과 ‘물’, ‘햇빛이 잘 드는 방위’와 ‘문화’의 조건을 갖춘 ‘풍수(風水)’를 고려했다. 여기서 ‘부족한 대지의 기운을 두터운 사탑의 공덕으로 채운다’는 ‘비보’ 개념은 불경의 신토불이(身土不二) 교설에 연원을 두고 있다. 일부 선사들이 풍수 이론을 원용했고 몇몇 고승들에 의해 ‘비보풍수’로 계승됐다. 이처럼 비보사상은 ‘육신과 국토가 둘이 아니다’라는 신토불이 교설과 지령(地靈) 신앙 등을 통섭하는 밀교 경론의 제교 포섭 사상에 의해 가능했다.

 

비보사상, 선과 교의 방편

현교 경론뿐만 아니라 밀교 경론에서는 우리가 사는 국토를 우리 몸에 비유해, 아픈 곳에 뜸을 떠서 치유하듯 비보사상을 제시해 왔다. 특히 밀교에서는 방위를 대단히 중요시하여 불지경계와 보살과 만다라를 각각 방위에 따라 배치했다. 밀교의 택지법은 대개 관지상법(觀地相法), 관지질법(觀地質法) 그리고 치지법(治地法) 등 세 가지로 나뉜다. 이 중 지형이 갖추고 있는 외적인 조건, 즉 산천국토의 지세(地勢), 유형(流刑), 수목(樹木), 유수(流水) 등 지상(地相)을 관찰하여 길지와 흉지를 판별하는 관지상법이 널리 사용됐다. 이 택지법에 따르면 본존인 대일여래(중엽팔대)가 자리하는 만다라의 중앙에는 금륜불정이 있고, 그 주위에 마두관음·성관음·천수관음·여의륜관음·십일면관음·준제관음 등 여섯 관음보살을 모시고 있다.

전남 곡성 동리산문을 개설한 신라의 적인혜철(寂忍惠哲, 784~861)은 중국 강서성에서 ‘즉심즉불(卽心卽佛)’의 선풍을 드날린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의 제자 서당지장(西堂智藏, 735~814)으로부터 남종선의 맥을 전해온 선사다. 혜철은 서당지장을 만나 “은밀하게 심인을 전수받으니 적수가에서 잃어버렸던 구슬을 찾은 것과 같이 영대(마음)가 태허공이 탁 트인 것처럼 활연해졌다”고 했다. 그런데도 그는 3년 동안 자지도 않고 자리를 뜨지도 않고 대장경을 열람하여 선과 교의 동등한 가치를 담은 선교의 융합을 모색했다. 무주 관내의 쌍봉난야(雙峯蘭若)에서 하안거에 들어있을 때는 주사(州司)의 간청을 받고 기도하여 비를 내리게 했다. 문성대왕에게는 ‘국가를 다스리는 긴요한 방책 몇 가지[理國之要若干條]’를 올려 국가와 조정에 보태고 늘여 도움이 되게 했다. 또한, 동리산 대안사지를 선정하며 제신(諸神) 사상을 불교에 포섭하고자 했다. 그는 곡성 동리산의 대안사지(大安寺地)가 삼한의 경승지가 될 수 있는 지세의 조건을 잘 갖추고 있으며 이것이 밀교의 관지상법 내용에 부합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밀교 사상의 관지상법을 비보사상으로 원용한 선사는 혜철의 심인을 전수받은 신라의 도선(道詵, 827~898)이다. 도선은 혜철에게서 ‘설함 없는 설함[無說之說]’과 ‘진리 없는 진리[無法之法]’의 불도장[心印]을 전수받은 직계 제자였다. 그는 우리나라 국토 전체를 하나의 완벽한 유기체 또는 만다라(曼茶羅)로 봤다. 그리고 위치나 방위 및 산천의 지세에 따라 알맞은 곳을 택해 절·탑·불상·부도(당간)를 세우고 여러 보살에게 기원함으로써 개인과 국가의 재난을 물리치고자 국역진호설(國域鎭護說)을 주창했다.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