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멸보궁] 문수가 준 불사리 봉안기 기획·연출·주연 모두 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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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멸보궁] 문수가 준 불사리 봉안기 기획·연출·주연 모두 자장
  • 자현 스님
  • 승인 2021.02.23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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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배로운 궁전의 탄생
오대산 중대.

불사리의 역사는 부처님이 쿠시나가르에서 80세를 일기로 열반하며 시작한다. 이 사리 중 일부가 삼국시대에 한반도로 전래하며 거대한 목탑을 중심으로 사찰들이 건축된다. 이것이 고고학이 말하는 한국불교의 첫 페이지다.

이는 오늘날과 같은 보궁신앙과는 또 다르다. 모든 보궁은 자장 율사가 전래한 불사리를 통해서 확립되는 단일체계이기 때문이다. 즉 한국불교에서 적멸보궁은 자장이 모신 불사리와 관련된 특수성인 셈이다.

자장의 불사리 봉안과 ‘남북보궁’

자장 율사(594?~655?)는 진골 출신으로 신라 제26대 진평왕 때 출가한다. 이후 율사로서 명성을 떨치다 선덕여왕 때인 638년 당나라 유학길에 오른다. 그리고 642년 문수보살의 성산인 중국 산서성 오대산으로 성지순례를 감행한다. 이때 오대산 북대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불사리 100과와 부처님의 가사 등 성물을 받고는 643년 귀국한다. 이 사리를 나눠 모신 것이 한국불교의 적멸보궁이다.

자장은 646년 황룡사에 9층목탑을 건립하고 상륜부와 주심초석에 불사리를 봉안한다. 같은 해 말에는 언양(현재 양산)에 통도사를 창건하고 금강계단에 불사리를 모신다. 이외에도 울산 태화사를 창건해 석탑에 사리를 봉안했다. 여기까지가 자장이 경주와 수도권에 불사리를 봉안한 양상이다. 그러나 황룡사는 1238년 몽고의 전란 과정에서 소실되고, 태화사는 여말선초에 폐사된다. 통도사만이 남게 된 것이다. 647년 선덕여왕이 비담과 염종의 난 과정에 죽게 되면서, 경주에서 자장의 입지가 흔들린다. 난을 평정한 김춘추·김유신 세력이 진덕여왕 시기를 주도하게 되자, 자장은 동북방의 하슬라에 은거하면서 평창 오대산을 개창하고 중대에 불사리를 봉안한다. 이후 평창 수다사와 강릉 한송사 그리고 태백의 정암사 등을 차례로 창건하는데, 불사리는 중대에만 모셨다.

이로 인해서 후일 양산 통도사와 오대산 중대의 ‘남북보궁(南北寶宮)’ 구조가 확립된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고산제일월정사(高山第一月精寺) 야산제일통도사(野山第一通度寺)’, 즉 ‘높은 산지에서는 중대 보궁이 속한 월정사가 최고며, 낮은 산지에서는 금강계단이 위치한 통도사가 제일’이라는 말은 바로 여기에서 유래했다. 또 월정사와 통도사는 보궁사찰이라는 최고의 위상에 걸맞게, 두 곳 모두 강원도와 경상도를 대표하는 교구본사로서의 위상을 확보하고 있다.

 

남북보궁의 특징

남보궁인 통도사는 자장이 창건한 계단사찰이다. 계단사찰이란 스님들의 수계를 위한 사찰이란 의미로, 새롭게 부처님의 제자가 된다는 상징이다. 통도사의 금강계단은 계단 맨 위에 석종형 부도를 조성하고 그 속에 부처님의 정골사리를 봉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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