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방의 미술 세계] 살아오면서 만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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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방의 미술 세계] 살아오면서 만난 사람들
  • 강우방
  • 승인 2020.11.23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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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최순우 선생, 이노우에 타다시 선생, 존 로젠필드 교수, 얀 폰테인 관장, 오주석 씨

사람은 태어나 평생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며 크고 작은 은혜를 입으며 자신의 일생을 엮어나간다. 그런 분들은 책에서 만난 훌륭한 사람일 수도 있고, 감동적인 책을 쓴 훌륭한 분들일 수도 있고, 조형 예술품들을 창작한 장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잊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은 같은 시대에 살면서 운명을 만들어준 고귀한 분들일 것이다. 지난 이야기에서 미처 다루지 않고 남겨놓았던, 살아오면서 만난 각별한 인연을 맺은 분들을 이야기하려 한다. 스승일 수도 있고, 제자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고, 후원자일 수도 있고, 사랑하는 여인일 수도 있다. 옛말에 “덕이 있으면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라고 했는데, 필자는 그리 덕은 없으나 그들이 덕이 있어 외롭지 않았고 반드시 이웃이 있었다. 

 

| 여초 그리고 최순우 선생

미술사학을 평생 독학하면서 가장 크게 갈망한 것은 훌륭한 스승이었다. 고등학교 때 원문으로 읽은 너대니얼 호손의 『큰 바위 얼굴』에서처럼 항상 위대한 스승을 만나는 것이 소원이었다. 대학 시절에 만난 여초 김응현(1927~2007) 선생님은 40세쯤 되었는데 말 그대로 패기 있는 서예계의 떠오르는 스타였다. 그러나 그가 매우 엄격한 교사라는 점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매주 강의를 들으며 그때 배운 바를 토대로 필자의 체험을 피력하며 27세 때에 「서의 현대적 의미」라는 작은 논문을 『공간』에 싣기도 했다. 

김응현 선생님은 필자를 수제자로 삼으려고 편애하셨다. 그는 추사의 전통을 이은 동양의 대표적 서법가(書法家)였고, 청대의 비학(碑學) 사상을 받아들여 북위비(北魏碑)의 글씨를 널리 알렸다. 북위비들의 글씨는 참으로 기세가 뛰어나 항상 경이로웠다. 훗날 미술사학 연구에 큰 힘이 되어 주었다. 당시 필자는 서예와 동시에 유화(油畫)를 병행했다. 서양화는 세계적인 화가 손동진(1921~2014) 선생님을 사사했지만 2년 뒤 혼자서 그렸다. 그때 배운 데생이나 크로키도 작품을 파악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그렇게 대학 시절은 인문학 모든 분야의 섭렵과 작가로서의 수업으로 채웠다. 동양의 서화와 서양의 회화를 함께 시도한 이유는 동양의 붓과 서양의 붓이 어떻게 다른지 체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기간 가장 영향을 준 것은 역시, 김응현 선생님과 만난 일이다. 아내도 함께 붓글씨 쓰고 사군자를 쳤다. 1968년 결혼하면서 새로운 길을 모색했으니 바로 한국미술사학의 길을 국립경주박물관 시절부터 홀로 개척하여 나아가는 일이었다.

가장 일관되게 후원을 아끼지 않은 분이 최순우(1916~1984, 사진 1) 선생님이다. 최순우 선생님이 국립경주박물관장일 때 필자는 유학이 아니라 연수의 성격으로 1975년 일본에 보내졌다. 귀국해 3년 후엔 다시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으로 영문도 모르고 갔다. 얼마 후 미국 각지를 순회하는 <한국미술 5000년> 展이 열렸을 땐 클리블랜드와 보스턴 박물관으로 순회 전시 책임자로 보냈다. 최 선생님은 가장 중요할 때 필자를 어디든 보냈고 그로 인해 인도, 중국, 한국, 일본의 불상들을 조사하고 많은 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 출발지는 항상 천년 고도 경주였다. 

그러는 동안 세계적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학자로 점점 각인되어갔다. 이처럼 최 선생님은 필자를 해외에 파견하여 학문의 기초를 다지게 했다. 보스턴에서 발표하지 않았다면 하버드대학 유학도 있을 수 없었으리라. 오늘날의 필자는 모두 최 선생님 은덕이다. 

2003년 선생님이 작고하셨다. 오랜 재임 동안 박물관을 지키고 그 위상을 매우 크게 높이셨고, 모든 분야의 학자들과 널리 교유하셔서 서울 박물관에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오늘날 국립중앙박물관은 그분이 그 위상을 드높인 것이며, 관장일 때 국립박물관의 전성기였다.

 

| 운기화생론 넘어 영기화생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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