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명 스님의 온에어(On Air)] 인연은 빗방울 전주곡을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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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명 스님의 온에어(On Air)] 인연은 빗방울 전주곡을 타고
  • 진명 스님
  • 승인 2020.09.08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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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서를 지나니 본격적인 더위와 장마철이 시작되고 있다. 농업을 주로 하고 살았던 옛사람들은 소서가 되면 이런 관례를 베풀기도 했단다. “소서가 가까워지니, 죄가 무거운 죄수에게는 관대히 하고 가벼운 죄수는 놓아주라”는 『고려사절요』의 기록이다. 바쁜 일손 덕에 가볍고 무거운 죄를 지었던 죄수가 큰 덕을 보게 되는 절기가 소서다. 요즘은 농사도 기계화가 많이 진행됐기에 농촌 들판에서 노동요를 부르며 줄 맞춰 모내기하고 새참을 먹는 정겨운 풍경은 오랜 옛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되었다. 

 

|    쇼팽과 연인 조르주 상드

농업이 주를 이루던 시절에도 날씨가 중요했지만,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요즘도 마찬가지다. 매일 생방송을 할 때는 날씨와 계절의 변화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흐리면 흐린 대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씨의 변화는 사람의 감성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어느 비가 오는 날이었다. 생방송을 진행하는 시간에 비가 차분하게 내리고 있었다. 이미 큐시트에는 소개할 음악이 준비되어 있었지만, 비 오는 날씨 분위기에 맞게 음악을 바꿔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을 소개했다. 

1838년 당시 28살이었던 쇼팽은 폐병을 앓고 있었고, 파리의 추운 날씨를 피해 연인인 작가 조르주 상드와 스페인 동쪽에 위치한 마요르카섬으로 요양을 위해 떠났다. 쇼팽과 상드는 발데모사 마을에 있는 카르투하 수도원에서 머물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24개의 전주곡을 작곡했다고 전해진다. 그때 쇼팽을 간호하며 함께 했던 상드는 “수도원의 지붕 위에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를 연상케 한다”라고 이 ‘빗방울 전주곡’에 대한 평을 했다. 임시로 머물렀던 수도원의 조용하고 차분하거나 음울하고 칙칙한 분위기, 규칙적으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그리고 병을 앓고 있던 쇼팽과 그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연인의 아릿한 감정이 이 곡의 리듬에 깊이 젖어 있다. 어쩌면 시공을 초월하여 자연을 향한 사람의 감성은 비슷한 듯하다. 나는 학인 시절 비 오는 날이면 고색창연한 비로전 기와지붕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에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을 듣는 듯 눈을 감고 빗소리를 감상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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