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스크리트로 배우는 불교] 금강경(1) 범본에 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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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스크리트로 배우는 불교] 금강경(1) 범본에 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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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9.08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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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2 일본 고귀사의 『금강경』 범본.

『반야심경』과 함께 국내외에서 가장 활발하게 독송하고 번역하며, 현재까지도 수많은 출판물로 출간해 읽는 『금강경』. 이 경전의 산스크리트 원본은 『팔천송반야경』의 성립 이후인 대략 기원후 2세기에서 5세기 사이에 기록 및 편집되었다고 일반적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이 시기에 소급되는 최초의 범본은 완전하게 소실된 것인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는 것인지, 현재까지도 인간의 손길을 허락하고 있지 않다. 이러한 실정에서 원본이든 사본이든 어떤 텍스트를 번역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금강경』 내용이 402년 쿠마라지와(Kumārajīva, AD 343-413)의 한역본 『금강반야바라밀경』(T.235)을 통해 세상에 처음으로 공개된다. 이후 703년 의정(義浄)의 『불설능단금강반야바라밀다경』(T.239)까지 300년 동안 총 8종의 한역본들이 이어져 나왔지만, 정작 번역의 대상인 범본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여전히 부족하다.

 

|    산스크리트본의 등장 

과연 한역을 가능하게 만든 텍스트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일까? 범본 부재의 막막한 상황에서 1880년대 우리는 새로운 역사적 전환점을 맞게 된다.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대부분의 삶을 영국에서 보낸 마르크스 뮬러(Max Müller)가 편집한 산스크리트 『금강경』이 1881년 출판됐기 때문이다. 뮬러는 서문에서 자신의 범본이 일본과 중국에서 입수한 범본들과 티베트어 사본에 기반을 두어 편집된 것이라고 밝힌다. 이후 독일인 부모를 두었지만 영국에서 태어났고, 독일에서 수학한 에드워드 콘즈(Edward Conze)가 뮬러의 범본 1을 토대로 새로운 편집본을 1958년에 내놓았다. 범본 『팔천송반야경』을 편집했던 인도 태생의 바이댜(Vaidya)도 1961년 앞선 두 사본과 다르지 않은 산스크리트본을 출간했다. 

뮬러 범본의 출처  해리슨&와타나베 2에 따르면, 일본 오사카의 고귀사(高貴寺)에 정확한 기록 연도는 알 수 없으나 비교적 이른 시기의 『금강경』 산스크리트본이 보관되어 있고, 이 범본은 고승 지운 온코(慈雲飮光, 1718~1804)가 입적한 후 그의 제자인 지토(慈幢, 1776~1854)가 발견했다고 한다. 이 텍스트는 자운이 살아생전 자신의 제자들과 함께 편찬한 약 1,000여 권에 달하는 『범학진량(梵學津梁)』 가운데 320권에도 들어있다고 하는데, 어떠한 식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궁금하여 해당 부분을 찾아보았다. 3  사진 1에서 보는 것처럼 세로쓰기하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써 나아가는 이 분권에서의 산스크리트는 9세기 초 일본에 들어왔다는 실담(Siddham)문자로 쓰여 있다. 범문 오른쪽에는 각 범자에 대해 일본어식 독음과 한자가 대응되어 있으며, 왼쪽에는 중국어식 음성표기가 적혀있다. 이어지는 왼쪽 세로의 두 줄에는 쿠마라지와의 한역과 605년 다르마굽타(Dharmagupta)의 『금강능단반야바라밀경』(T.238)이 따르고 있다. 뮬러는 1881년 이러한 정보들을 모두 담아 수기(受記)된 사본 외에 범문만이 담긴 가로쓰기의 고귀사 사본 또한 참고하여 『금강경』 범본을 재구성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실제로 문장은 사진 2에서 보는 것처럼 세로쓰기로 되어있는데, 이는 아마도 수기되는 과정에서 보기 편하도록 서양식의 가로쓰기로 바뀐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뮬러는 서문에서 일본의 범본들과 티베트어본을 바탕으로 『금강경』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뜻밖에도 중국 범본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해리슨&와타나베 2에 따르면, 이 사본은 1760년 한 사찰에서 목판인쇄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이 범본의 산스크리트는 11세기에서 20세기 중반까지 네팔에서 티베트에 이르는 지역에서 사용되었다는 란자나(Rañjanā) 문자로 쓰여 있으며, 티베트어식의 문자변환과 번역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이 사본에는 『금강경』 뿐만 아니라 『반야심경』, 『관세음경(觀世音經)』으로 불리는 『아왈로키테쉬와라-수트라(avalokita=īśvara=sūtra)』, 『무량수경(無量壽經)』에 대응하는 『아파리타유흐-수트라(aparimita=āyus=sūtra)』, 그리고 다수의 다라니경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또한 지금까지 중국에서 편찬된 사본들 가운데 유럽에 소개된 유일한 텍스트라고 언급한다. 그러면서도 뮬러는 서문에서 - 진가를 혹은 문자를 알아보는 전문가의 손길이 닿지 않아서인지 외부 유출을 꺼려서인지 알 수 없다는 뉘앙스로 - 중국에는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산스크리트 불전들이 존재할 것이라고 말한다. 

뮬러의 범본  일본과 중국의 사본들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뮬러의 『금강경』 범본의 경우 실담도 란자나도 아닌 데바나가리(Devanāgarī) 문자로 쓰여 있고, 산디나 단어 결합과 같은 범어의 텍스트 구성 원칙들이 철저히 지켜진다. 그리고 재구성해 나아가면서 참고 사본들과 차이나는 부분들은 각주에 표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뮬러의 텍스트는 “세존과도 같은 성스러운 반야바리밀다에게 경배”를 뜻하는 “namo bhagavatyā āryaprajñāpāramitāyai”로 시작하는데, 이 문구에 붙은 각주에는 ‘모든 것을 아시는 분께 경배’를 의미하는 일본 사본의 “namaḥ sarvajñāya”가 명시되어 있다. 

콘즈의 범본  이러한 방식의 뮬러본을, 뮬러가 참고한 티베트어본의 또 다른 사본과 하나하나 비교하며 편집했다는 콘즈의 『금강경』 범본은 읽기가 어려운 데바나가리가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로마 문자로 쓰여 있다. 또한 서양식 대소문자와 구두점을 볼 수 있고, 단어 결합이나 합성어의 가독성을 위해 띄어 쓰거나 붙임표(-)가 사용됐으며, 결정적으로 산디가 해제된 상태의 문장들이 나열된다. 예를 들어, 뮬러본의 경배 문구는 콘즈본에서 “Om namo Bhagavatyai Ārya-Prajñāpāramitāyai!”로 나타난다. 이처럼 보기 편하게 편집했다는 이유로 콘즈의 범본은 긍정적으로 평가받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편집본에 자신이 참고했다는 여러 자료와의 차이를 꼼꼼히 기술하지 않고 오히려 자의적인 해석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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