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낯선 풍경 안에 부처님 하나, 소원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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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낯선 풍경 안에 부처님 하나, 소원 하나
  • 송희원
  • 승인 2020.07.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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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_방구석 산사 순례(3)_법주사, 마곡사
속세를 떠나 부처님의 법이 머무는 절, 법주사. 그 깊고 그윽한 산사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속세를 떠나 부처님의 법이 머무는 절, 법주사. 그 깊고 그윽한 산사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충청도는 낯설다. 전라도, 경상도, 바다 건너 제주도까지 가봤으나 수도권 바로 아래에 있는 충청도는 어쩐지 인연이 닿지 않았다. 그런 낯선 지역의 사찰 두 곳을 이번 특집 취재로 한꺼번에 방문하게 됐다. 하루는 충북 보은 법주사 템플스테이로 산사를 체험하고, 다음날 충남 공주로 이동해 마곡사를 답사하는 일정이었다.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미술관을 관람하듯, 충청도 방언처럼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법주사와 마곡사를 만났다.

 • 보은 법주사 • 

| 호서제일가람의 장엄한 대불과 팔상전 

일주문 현판에 적힌 ‘호서제일가람’. 그게 법주사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과연 충청지방 제일의 사찰답게 모든 게 다 높고 크고 장엄했다. 높이만 33m에 이르는 동양 최대 미륵불 입상인 금동미륵대불은 물론, 절을 들어서자마자 수문장처럼 천왕문 앞을 지키고 서 있는 27m 높이의 전나무 두 그루가 그랬다. 

밥솥 크기도 남달랐다. 정유재란으로 사찰 대부분이 전소되기 전까지만 해도 전각 60여 동이 있던 법주사는 한때 3,000명의 스님들이 기거하던 곳이었다. 스님들의 밥을 짓고 국을 끓였던 철확(철로 된 대형 솥)은 쌀 40가마니를 부을 수 있을 정도로 커야만 했다. 지금도 법주사는 법랍 60년의 어른스님부터 행자까지 70여 명의 대중이 머무는 큰 절이다. 

법주사는 553년 의신 조사가 창건한 뒤 720년(성덕왕 19년)에 중건됐다. 천년고찰 법주사는 그 유구한 역사만큼이나 수많은 국보·보물을 품고 있었다. 팔상전을 비롯해 쌍사자석등, 사천왕석등, 석련지, 마애여래의좌상까지…. 특히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유일한 5층 목조탑인 팔상전은 희소성 때문인지 더욱더 위엄있어 보였다.  

절 내 수많은 보물을 구경한 탓에 등에는 금세 소금꽃이 폈다. 잠시 대웅보전 앞 ‘보리수’ 나무 그늘에 앉아 땀을 식혔다. 법주사에는 그늘이 별로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에 잠시 앉았다 간다. 사실 이 나무는 찰피나무로 붓다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그 보리수와는 다른 종류다. 인도의 보리수와 잎 모양이 비슷해서 붙여진 이름일 뿐이라고. 찰피나무 그늘은 대웅보전 스님들의 염불 소리도 들리고 시원한 바람도 솔솔 부는 그야말로 명당자리다. 

| 부처님의 법, 다시 속세로 

템플스테이 방사 정재당에서 하루를 묵은 다음 날, 도량석을 시작하는 목탁 소리가 들려왔다. 잠을 떨치고 얼른 대웅보전 앞마당으로 나갔다. 막 새벽예불을 알리는 사물의식이 시작되고 있었다. 법고를 치는 스님들의 모습을 보는데 템플스테이 김완식 사무장이 다가와 귀띔했다. 

“안쪽(대웅보전)에서 금고(金鼓, 징)를 치면 밖(범종각)에서 그 소리를 받아 법고를 쳐요. 밖에서 

다시 사물을 치면, 안에서 또 화답하죠. 법당의 안과 밖에서 부처님의 말씀이 연속적으로 전달돼 부처님의 나라가 지속하길 바란다는 의미가 있죠.”

안과 밖을 오가던 소리는 절 마당을 감돌다 산세를 타고 멀리 퍼져나갔다. 법주사가 있는 속리산의 이름은 ‘세속[俗, 속]을 떠난[離, 리] 산’이라는 뜻이다. 속세를 떠난 산에 부처님의 법을 ‘머물게 하는[住]’ 절이 바로 법주사인 것. 산도 절도 서로에게 정말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흔히 사찰은 속세를 떠난 스님들의 고립된 수행지라 생각한다. 하지만 산세를 따라 ‘네발짐승(법고)’, ‘물속 생명(목어)’, ‘날짐승(운판)’, ‘지옥 중생(범종)’에게 널리 퍼져나가는 사물 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사찰이 꼭 속세에서 유리된 공간만은 아닌 것 같았다. 속세를 떠나 법이 머무는 절은 다시 그 법을 속세의 중생들에게 되돌려 주고 있으니 말이다. 소리의 파동이 가슴으로 전해지는 울림을 느끼며 대웅보전으로 갔다. 목탁과 염불 소리에 맞춰 절을 하며 속세에서 쌓인 복잡한 생각을 하나씩 내려놓았다.

| “절에 사는 새는 맑게 운다”

법주사 마지막 일정으로 템플스테이 연수국장 일오 스님과 세조길을 걸었다. 스님은 이번 ‘나의 법주사 문화유산답사기’의 고마운 안내자였다. 일오 스님은 과거 속리산 종주를 하다가 물이 없어 탈진해 쓰러질 뻔한 경험이 있었다. 그때 속리산 관음암 바위틈에서 한 방울씩 떨어지는 석간수를 마시고 겨우 기력을 회복했다고 한다. 그 맑고 시원한 감로수의 기억 때문에 법주사로 출가하게 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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