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천년 넘게 웃으며 핀 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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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천년 넘게 웃으며 핀 꽃처럼
  • 최호승
  • 승인 2020.07.2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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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_방구석 산사 순례(2)_대흥사, 선암사
도량석이 어둠을 가르는 빛을 따라 움직였고, 범종은 지옥 중생을 깨웠다. 일어나 부처님 법을 들으라는 뜻이다. 

하늘 감춘 우거진 숲의 긴 터널을 나오자 일주문이었다. 찾은 도량은 두 곳이었다. 한 곳은 만년 동안 삼재가 범접할 수 없었고, 다른 곳은 몇 차례 재난을 온몸으로 견뎌야 했다. 두 곳은 다른 듯 닮아 있었다. 나무로 만든 법당은 세월 더께 간직하고 있었고, 이름 부르기도 벅찬 초목들이 가득했다. 뜨거운 여름 볕 피해 고목 아래 그늘에 앉으면 어디선가 바람이 불었고, 새소리가 심심한 적막에 악보를 그렸다. 같은 하늘 아래 천년 넘게 부처님 법을 펴오며 중생의 나고 죽음을 지켜본 산사. 세계유산 ‘한국의 산지승원’, 해남 대흥사와 순천 선암사다.

 

 • 해남 대흥사 • 

| 전쟁도 피하는 ‘웰컴 투 대흥사’

도량이 별나다. 도량 어디에 있어도 계곡 물소리가 들린다. 금당천이 절을 가로지르고, 이 계곡을 사이에 두고 북쪽과 남쪽으로 전각들이 자리했다. 보통 다른 절에서 보이는 가람 배치 형식의 틀을 벗어나 자유롭다. 큰 도량에 가면 쉽게 만날 수 있는 보호수도 의외다. 연리지(連理枝, 다른 나뭇가지가 서로 엉켜 자라는 나무)가 아니라 연리근(連理根, 뿌리와 뿌리가 붙은 나무)이다. 범종각 옆 돌계단에 있는 나무 의자에 앉으면 한참 시선을 붙든다. 

대흥사는 영화 <웰컴 투 동막골> 속 동막골 같은 공간이다. 신록과 완만한 두륜산의 곡선, 흙길, 고요함, 오가는 사람들 얼굴엔 미소가 걸렸다. 영화 초반 전쟁의 안전지대처럼 전쟁도 피해갔다. 임진왜란, 한국전쟁 등 전쟁의 상처가 없다. 이를 예견한 인물이 있었으니. 서산 대사다. 

아이러니다. 서산 대사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장이었다. 그래서일까. 서산 대사는 향로봉, 노승봉 등 두륜산의 8개 봉오리에 둘러싸인 대흥사가 천혜의 요새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그의 예언은 이렇다. “전쟁과 화재를 비롯한 삼재가 미치지 못할 곳으로[三災不入之處], 만 년 동안 훼손되지 않는 땅[萬年不毁之地]이다.” 서산 대사는 북녘 묘향산 보현사에서 입적하고도 백두대간 끝자락 대흥사에 의발(衣鉢, 가사와 발우)과 유품을 대흥사에 전했다. 스승이 입던 옷과 음식을 담아 먹었던 그릇을 전한다는 행위는 자신의 가르침을 전한다는 뜻이란다. 북녘에서 땅끝 해남까지 부처님 가르침이 널리 퍼지길 바라는 염원이리라. 승병장의 법과 유품이 있는 도량이니, 호국성지라는 말도 빈말이 아니다. 서산 대사를 기리는 사당인 표충사가 도량 안에 있다!

예전에 대흥사 이름이 ‘대둔사(大芚寺)’였다는데, 근래 다시 새싹(둔, 芚)이 크게 움트는 도량이라는 의미로 옛 명칭도 함께 쓴다니 땅끝에서 다시 부처님 가르침이 움텄으면 하는 바람이겠지. 서산 대사의 선견지명이 놀랍다. 

| 별은 목탁 소리에 반짝거리고

대흥사에서 하룻밤을 청했다. 오래된 대웅보전(보물 제1863호)을 보지 못해 아쉬운 맘을 밤에 묻었다. 보름이 지나지 않아 달이 밝아서인가, 도량석(道場釋, 도량을 청정히 하는 하루 중 첫 의식) 때문인가? 도량이 잠을 깼다. 계곡 물소리만 가득했던 도량에 목탁 소리와 새소리가 자리 하나를 차지했다. 숙소 심검당의 문 열고 새벽을 안에 들였다. 나갈 참이었다. 두륜산의 하늘은 어둠과 빛이 은밀하게 몸을 섞고 있었다. 스님들은 보수 중인 대웅보전 대신 임시법당에 들었고, 부처님께 삼배했다. 종송(鍾頌). 법당 안 작은 종은 깊이 잠든 중생을, 범종각의 범종은 지옥 중생을 깨웠다. 목탁 소리가 법당을 채웠고, 두륜산의 새벽 별이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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