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먼저 일어나는 산사 중생 깨우는 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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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먼저 일어나는 산사 중생 깨우는 산사
  • 허진
  • 승인 2020.07.24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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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_방구석 산사 순례(1)_통도사, 부석사, 봉정사
봉정사 만세루에서 바라본 대웅전. 봉정사 대웅전은 조선초기의 가식 없는 수법, 견실한 공법을 그대로 엿볼 수 있는 건축물로 다포집 계통의 대표 건축물이다.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 저것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겁니까, 바람이 움직이는 겁니까?” 스승은 말했다.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네 마음뿐이다.”

- 『육조단경』 중에서 

고통도 행복도 모두 마음에서 온다. 산사는 예로부터 마음을 가라앉히는 수행 공간으로 기능해왔다. 이런 수행 전통이 천년 넘게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 이코모스(ICOMOS·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심사하는 세계유산위원회 자문기구)가 인정한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아닐까.

 

 • 양산 통도사 • 

| 법당에 불상 하나 없는 사찰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울산역에 내려 택시로 30분가량 이동했다. 일주문 앞 주차장까지 편하게 갈 수 있지만, 통도사까지 이어지는 아름다운 숲길을 놓칠 수 없어 매표소 앞에서 내렸다. ‘무풍한송로(舞風寒松路)’라는 이름답게 키 큰 소나무 수천 그루가 춤을 추듯 구불거리며 흙길을 감싸고 있었다. 초여름의 싱그러움을 만끽하며 느릿느릿 걸었다.

숲길에 속세의 먼지를 털었으니 경내로 들어갈 시간이다. 아래 계곡이 흐르는 반달 모양의 반월교를 건너 일주문과 천왕문, 그리고 크고 작은 전각들을 지나 대웅전에 이르렀다. 참배하러 대웅전에 들어가려는데 꽃문양 창살 하나가 눈에 띄었다. 오랜 세월 사람들 손때가 묻고, 자연스럽게 빛바랜 창살이 꽃처럼 아름다웠다.

대웅전 안에는 법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불상이 없었다. 부처님 진신사리(화장해 나온 뼈)가 모셔진 금강계단(金剛戒壇) 때문이다. 자장 율사가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얻은 진신사리를 금강계단에 봉안했고, ‘부처님=사리’라는 믿음으로 법당 안에 불상을 모시지 않는다고. 통도사가 불지종가(佛之宗家), 불교 종갓집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아쉽게도 금강계단은 쉽게 만날 수 없는 존재였다.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통도사는 매달 음력 1~3일, 보름 등 특정 시기에만 금강계단의 문을 연다. 평소에는 대웅전 창 너머로만 볼 수 있다. 삼배 올리고 일어나려는데, 궁금증이 일었다. 천년 넘은 도량의 금강계단이 저렇게 깨끗할 수 있을까. 청소도 안 한다는데…. 법신의 위력이란다. 날짐승이 날지 않고 배설물을 누지 않는다는 말까지 전해질 정도다.

| 꺼지지 않은 불교 종갓집의 법등

통도사는 천년 넘게 꺼지지 않은 법등으로 불교 종갓집이라는 별칭을 더 특별하게 만들었다. 유네스코가 인정한 탁월한 보편적 가치도 여기 있다. 대중들은 진신사리를 지키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다. 고려 시대엔 왜적이 사리를 훔치려고 하자 몸에 숨겨 수도 개경까지 피신했던 주지 월송 대사, 임진왜란 때 약탈당한 사리를 극적으로 갖고 탈출한 백옥 거사(白玉 居士), 사리함을 두 개로 나눠 한 개는 통도사 금강계단에, 남은 한 개는 태백산 정암사에 봉안케 한 사명 대사…. 『목은집』과 「사바교주계단원류강요록(娑婆敎主戒壇源流綱要錄)」, ‘석가여래 영골사리 부도비(靈骨舍利浮圖碑)’에 실린 이야기들이다. 

불교에 조금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익히 듣거나, 어디선가 한 번쯤 들었다 싶을 스님들도 통도사 스님이다. 사격을 일신한 성해 스님, 불교중앙학림 학장으로서 승가 교육에 앞장서고 상해임시정부 군자금을 지원했던 구하 스님, ‘영축산 도인’이던 경봉 스님 등등. 천혜의 자연을 지켜온 스님들은 한국불교의 법등은 물론 통도사의 법등 역시 꺼지지 않게 보살폈던 셈이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청량한 바람 한 줄기로 식혀본다. 코로나 여파로 줄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방문객이 적지 않다. 계곡물 흐르고 아름다운 꽃이 피며 푸른 나무가 우거진 정원 같은 산사. 거창한 마음 먹지 않아도 동네 마실 나가듯 놀러 갈 수 있는 산사. 진리로 향하는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니, 언제든 찾아와서 기도든 명상이든 산책이든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라고 말하는 듯하다. 일정 관계상 서둘러 둘러보느라 놓친 것들이 많다. 그 아쉬움이 언젠가 통도사로 다시 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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