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봄을 사랑한다. 봄꽃은 내게 자석과도 같다. 산천에 꽃 피기 시작하면 나는 쇠붙이처럼 이끌려가 그들 앞에 선다. 다소곳이. 그리고 가만히 묵상 같은 혹은 다짐 같은 기도를 한다. ‘감사합니다. 제가 또 한 번의 봄을 만납니다. 이 봄과 기쁘게 보내겠습니다. 저 역시 꽃처럼 사랑을 나누며 살겠습니다.’ 봄날의 이 행동은 나만의 오래된 의례이기도 하다. 뒤이어 내 일상은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곳곳의 요청을 따라 숲을, 인문을 강의하는 일정이 꿀벌들의 그것처럼 부산해지곤 하는 것이 내 오랜 일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나는 그 사랑스러운 봄을 놓쳐버렸다. ‘코로나19’의 확산은 모든 모임을 멈추게 했다. 더욱이 전국을 오가며 대중을 만나는 강연자인 내 경우는 슈퍼 전파자가 될 위험이 있어 더욱 엄중했다. 일 없는 ‘집콕’의 연속이 시작되었다. 나는 생활인으로서 강연료를 주 수입원으로 삼아 삶을 이어가는 사람인데, 미리 잡혔던 강연 대다수가 취소 또는 무기한 연기되기 시작했다. 확진자가 폭증하고 개학의 시기를 가늠하기 어려워지자 상반기 일정의 90% 내외가 취소되기에 이르렀다. 봄이면 하루에도 몇 통씩 걸려와 강연 일정을 조율해야 할 전화도 적막한 침묵 속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정부의 표현처럼 ‘재난’이 맞았다. ‘코로나19’로 시작된 사태는 내게 봄이 오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게 할 만큼 절박하고 강력한 문제를 안겨주었다.
나는 눈부신 봄을 잃고 혹한에 갇힌 느낌이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삶은 지탱되고 계속되어야 하는 것! 나는 강연자로서의 호시절, 소홀했던 명이나물 농사에 다시 몰두하는 나날을 보내기 시작했다. ‘고맙구나, 명이야. 고마워. 고마워….’ 거친 환경 속에서도 매년 스스로 움 틔우고 자라나 꽃피우고 번식하기를 반복하고 있는 명이나물에게 고마운 마음을 연신 건네며 잎을 채취하여 판매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한 날, 한 부부가 내 명이나물 숲으로 걸어왔다.
그는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고 그의 부인은 미술학원을 운영하는 사람으로 우리는 1년 남짓 매달 이 숲에 모여 함께 공부해온 인연이었다. 그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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