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근 에세이] 바이러스 난민, 성 밖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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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 에세이] 바이러스 난민, 성 밖 사람들
  • 김택근
  • 승인 2020.06.23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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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노부부가 아들이 있는 서울로 떠났다. 아내는 눈물을 훔쳤고 남편은 연방 헛기침을 했다. 정든 집, 정든 땅을 돌아보고 또 돌아봤다. 마을 사람들은 노부부 뒷모습을 애처롭게 바라봤다. 누군가 말했다. “이제 자식들이 해준 밥 앉아서 드시겠네.” 그러나 그것이 빈말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시골 농민이 도회지 생활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게 눈물을 뿌리며 떠나간 노부부는 이듬해 여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봄이 되니 속이 울렁거려서 못 살겠더라고. 지금쯤 아지랑이가 올라오고 나물이 지천으로 솟아났을 것으로 생각하니…. 여름 돌아오니 앉아 있질 못하겠더라고. 나만 빼놓고 논둑에 모여서 들밥을 먹겠다 생각하니….” 

노부부는 다시 정든 땅으로 돌아와 땅을 팠다. 마을 사람들은 부부를 따뜻하게 품었다. 마치 며칠 동안 나들이 갔다 온 것처럼 자연스럽게 맞았다. 고향은 그런 곳이었다. 노부부에게 타향살이는 하루하루가 위태로웠을 것이다. 아무리 잘 모신다 해도 자식이 부모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부모를 시골에 두고 도시에서 살아가는 자식 또한 마음이 편치 않다. 온 가족이 모여 행복하게 웃으며 TV를 보고 있으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고향은 늙고 어머니는 더 늙었다. 정말 우리 부모들은 자식들과 섞여 살기가 쉽지 않다. 도시는 서로를 챙겨주는 공동체가 아니다. 혈연, 지연 공동체가 약자들에게 울타리가 되어주던 시대는 벌써 지났다. 또 엄청난 속도전에 나이 든 사람은 낙오될 수밖에 없다. 세계화, 디지털화, 가상세계화, 개인화 같은 개념들이 노인들을 외딴곳에 가둬놓고 있다. 

부모들의 경험과 생각이 이처럼 가볍게 무시된 적이 있었던가. 늙음이 이처럼 서러운 시대가 있었던가. 도시라는 성(城)에 들어가지 못하고 시골에서 노년을 보내는 사람들은 시대가 밀어낸 난민들이다. 자식들은 죄스러워 고개를 숙이고 있지만, 그들 또한 시대가 만들어낸 불효자일 뿐이다. 그런데 다시 하늘에서 공포가 떨어졌다. 바로 바이러스의 침공이다. 지구촌의 모든 감각과 상식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버렸다. 코로나19는 노인들에게 특히 치명률이 높다. 미증유의 재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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