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비극(悲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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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비극(悲劇)
  • 강우방
  • 승인 2020.05.29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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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방의 자전적 에세이
사진1 『인문학의 꽃 미술사학 그 추체험의 방법론』

|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세계

지난 4월호에서 법당 공포(栱包)에 대해 밑그림 그려 채색해가며 그 실상을 자세히 분석하며 설명했다. 대부분의 독자는 그 글과 그림을 읽기는 했으나 이미까마득히 잊었을 것이다. 그 그림을 보고 따라서 그려보고 체험하려는 사람도 아마 없을 것이고 작품들을 금방 잊어버린다. 일반적으로 조형 예술품은 모두에게는 낯선 것이고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부처님상을 둘러싼 모든 조형 언어의 소리를 듣지 못하며 시선도 주지 않는다. 불단, 광배, 후불탱(後佛幀; 정幀은 그림 족자란 말인데 불가에서 탱이라 부르므로 학자들도 탱이라 부른다), 닫집, 단청, 대들보, 공포, 기둥, 창방 등 조형 언어가 발화(發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선이 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필자도 60세까지 그랬었으니까. 법당 공포 이야기는 현실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는 ‘영화(靈化)된 세계’다. 처음 듣는 세계일 것이다.

일본 학자가 복잡하고 무의미한 쓸데없는 구조라고 혐오하자 한국학자들도 따라서 혐오했던 불갑사 공포의 실상을 한국건축역사학회에서 발표했다. 건축학자들은 그동안 ‘공포의 윤곽’만 보고서에 그려놓고, 그런 모양으로 전체 조각적 형태를 만든 후 그 표면에 아무 의미 없는 장식 그림을 그렸다고 여기고 있었다. 발표 후 ‘그림을 조각으로 표현한 것이 공포’라는 주장은 화제가됐다.

‘영기문이 만물 생성의 근원’이며 ‘용과 봉황이 영기문에서 화생한다’는 의미를 이해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필자가 용과 봉황을 연구한 지 20년째다. 모두가 알고 있는 용과 봉황에 대한 지식, 그리고 모든 국내외 저서는 오류투성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아냈다.

필자가 이름 붙인, ‘영기문(靈氣文)’이란 것은 우주에 가득 찬 보이지 않는 기운을 조형화한 일체의 문양을 총괄한 개념이다. 그 가운데에는 당초문도 포함된다. 세계 모든 나라의 미술사학자와 학승이나 불교학자 등 모두가 말하는 당초문(唐草文)은 일본 고대 문헌에 나오는 것이라 한다. 곧 중국에서 들어온 문양으로 단지 덩굴무늬를 말하지만, 최근 한국에서 한국말로 ‘덩굴무늬’ 혹은 ‘넝쿨무늬’라 바꾸어 부르고 있을 뿐, 역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일본과 한국과 중국의 학자들은 물론 서양 학자들도 모르고 있다. 그저 단순히 장식했다는 생각에서 바라보니 당초문의 실상을 알 수 없다. 필자가 말하는 영기문에는 연화문이나 모란문 등도 포함되는데 이 뜻밖의 소리에 화를 내는 이들도 있다. 더구나 스님들에게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로 들릴 것이다. 그 이후 점점 강력하게 정립해온 ‘영기화생론(靈氣化生論)’은 그 체계가 방대해 이해가 그리 쉽지 않다.

우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른바 가치전도(價値顚倒) 속에서 사는 셈이다. 공포 발표 후 미친 듯이 전국의 사찰건축을 답사하며 조사했다. 사찰건축을 조사한다는 것은 건축은 물론 건축에 포함되는 단청-조각-회화(불화라 부르지 않고 그저 회화라 부르려 한다)-불단-촛대를 비롯한 공예품 등 건축 내부에 있는 일체의 조형을 조사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저 단순히 답사하며 감상문을 쓰는 것은 아니다.

사찰 순례라 하여 수많은 사람이 글을 쓰고 있으나 누가 써도 크게 다르지 않으며, 누가 써도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은 없다. 조형 예술품의 실상을 밝힌다는 것은 현실과는 전혀 다른 고차원의 세계에서 표현된 것이어서 소통의 단절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그로부터 3년 후 부산 동의대학에서 열린 한국건축역 사학회 춘계 학술대회에서 좀 더 정교하게 그리고 깊게 연구해 공포의 실상을 다시 발표했다. 당시는 완벽한 발표라고 자신했다. 그런데 건축학자들에게 더 난해하게 들렸음을 알았다. 그로부터 15년 후, 지난 호에서 다시 불갑사 공포를 다시 자세하게 분석하면서 더욱 깊은 인식에 도달하는 감격을 누렸다. 말하자면 넓고 깊은 새로운 차원의 세계에서만 공포의 조형이 보이는 것을 알았다. 그런 과정에서 나름의 새로운 인식론을 정립해 갔다.

우리는 제도권 교육을 거치면서 같은 교과서로 지식을 쌓아왔고, 공동의 상식을 가지고 있어 서로 소통이 가능하다. 공포도 마찬가지다. 공포의 진리를 깨달은 것을 기폭제로 법당이 조각-건축-단청-회화-공예 등을 갖추고 있음을 알고 일체를 함께 연구해 나가는 동안 건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외국 건축 안의 조형 예술품 일체도 밝힐 수 있었다. 우리가 상식이라고 알고 있는 것들에 얼마나 많은 오류가 있는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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