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초대석] 검사 옷 벗고 호미를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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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초대석] 검사 옷 벗고 호미를 들다
  • 남형권
  • 승인 2020.02.19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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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 변호사 오원근

 

얼굴을 생각한다. 전직 검사 얼굴, 변호사 얼굴, 농부 얼굴, 작가 얼굴, 수행자 얼굴. 이 얼굴들은 각자 다른 얼굴이 아니다. 오원근이라는 한 사람 얼굴이다.

오원근 변호사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한쪽벽 책장에 법전을 중심으로 불교 서적, 시집 등다양한 책이 꽂혀있다. 그는 요즘 매일 아침 출근해 5분씩 시집을 낭독하는 시간이 무척 행복하 다고 말한다. 이전엔 『금강경』 해설서 『금강경오 가해』 (불광출판사) 를 매일 5분씩 수년에 걸쳐 반복해 읽기도 했다고 반긴다. 시간을 쪼개어 쓴다는 그는 바빠 보였다. 앞에 놓인 두꺼운 서류 뭉치와그 주변에 굴러다니는 사무용 골무들이 바쁜 변호사 일상을 대변해준다. 옷걸이에는 넥타이가 여러 개 걸려있고 그가 앉아있던 의자 옆엔 구두네 켤레가 나란히 놓여있다. 벽에 걸린 ‘정해진 법은 없다’라는 『금강경』 속 ‘無有定法 (무유정법) ’ 을 쓴 서예 작품이 눈에 띈다. 의자에 앉기 전 입구 쪽을 돌아보니 유리창에 여러 개 지도가 백두 대간을 따라 이어져 붙어있는데, 2~3년 안에 종주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틈틈이 지도를 따라 산에 오른다고 한다. 사무실을 채운 수많은 단서가 그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듯하다.

검사 그만두고 100일 출가 결심

국민참여재판 1호 검사인 그가 10여 년 재직했던 검찰을 떠나 귀농해 주중엔 변호사로 일하고 주말엔 오롯이 농사일에 전념하는 삶을 택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저는 자유와 자연스러움을 좋아합니다. 인권, 정의, 민주주의보다는 실적, 승진에 관심을 가지는 분위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내심 고향에 있는 검찰청에 내려가 일하다가 퇴직해 전관 예우 받으며 변호사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서 다니고 있었죠. 하지만 흠모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제가 몸담고 있던 검찰이 행한 모욕주기식 수사로 인해 돌아가시고 나니 안정적인 수입 이나 전관예우를 바라며 남아있는 게 너무 비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내면에 있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정말 원하는 삶을 살아보자 결심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열심히 살피는 불교 공부가 큰 도움이 됐고요.”

 

법조인으로서 그가 생각하는 ‘정의’ 역시 자연스러움이다. 법이라는 이름을 빌려도 자연스 럽지 못하다면 정의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아버지 행패를 견디다 못해 돌로 내리쳤다가 살인미 수에 그친 딸에게 검사가 기소유예 처분을 내린 일이 있었다. 그는 용기있는 결정이라고 생각했 다. 그 생각과 같은 법률신문 칼럼을 자신이 맡았던 비슷한 사건을 담당한 재판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자유, 그리고 자연스러움을 입에 담을 때유난히 그의 눈은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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